1949년도 '탑건' 출신… 흑인이라서 차별받아
6·25전쟁 당시 한국 상공 비행한 첫 흑인 조종사
미국에서 올해 100세가 된 6·25전쟁 참전용사가 대령으로 1계급 특진을 해 화제다. 1965년 중령을 끝으로 제대한 뒤 꼭 38년 만이다.
14일 미 공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한 베테랑 조종사 출신 제임스 하비가 최근 대령으로 명예진급(honorary promotion)을 했다. 1923년 7월 태어나 올해 100세가 된 하비를 위해 공군이 특별히 마련한 선물이다.
미국 공군에서 중령으로 전역한 6·25전쟁 참전용사 제임스 하비(100)가 대령으로 명예진급함에 따라 가족들이 그의 어깨에 대령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미 공군 홈페이지 |
명예진급 의식은 하비가 현재 거주하는 콜로라도주(州) 덴버에서 열렸다. 미 연방의회 상원에서 콜로라도를 대표하는 마이클 베닛 의원(민주당)이 번쩍번쩍 빛나는 독수리 모양의 대령 계급장을 하비에게 전달했다. 베닛 상원의원은 “나는 하비 중령님의 명예진급을 지지한다”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민권 증진을 위한 그의 공헌을 인정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하비가 군에 입대한 것은 2차대전 도중인 1943년 1월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육군 항공대에 지망했으나 흑인이란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육군 항공대는 2차대전 이후 육군에서 독립해 공군이 되었다.
그냥 육군 부대에 정비병으로 배치된 하비는 조종사의 꿈을 놓지 않았다.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하고 군용기 조종사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군은 흑인도 소정의 교육을 마치면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다만 흑인 조종사는 백인들과 섞이지 못하고 흑인으로만 구성된 부대에서 복무해야 했다. 흑인 조종사 양성을 위한 비행 교육기관이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흑인 조종사들에겐 ‘터스키기 항공 부대원’(Tuskegee Airmen)이란 별칭이 붙었다.
6·25전쟁 참전용사 제임스 하비(100)가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뽑는 일명 ‘탑건’ 선발 대회의 1949년도 우승자임을 나타내는 모자를 쓰고 있다. 미 공군 홈페이지 |
하비는 1944년 10월 터스키기에서 비행 교육을 마치고 정식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다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차대전이 끝남에 따라 하비는 실전에 참여할 기회를 얻진 못했다.
전후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며 하비도 육군에서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49년 흔히 ‘탑건’(Top Gun)으로 불리는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 선발 대회가 열렸다. 하비는 그의 흑인 동료들과 이 대회에 출전해 사실상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였다. 공군은 누가 우승했는지 밝히길 거부했다. 44년이 지난 1993년에야 하비의 팀이 챔피언이었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하비는 일본에 있었다. 그 때문에 하비는 미 공군의 흑인 조종사들 가운데 최초로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이가 되었다. 6·25전쟁 기간 그는 각종 임무를 띠고 총 140회 출격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숱한 전공을 세워 여러 훈장도 받았다. 1965년 중령을 끝으로 제대한 하비는 기업인으로 변신했다가 57세이던 1980년 은퇴하고 콜로라도주 덴버에 정착했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