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칠면조를 먹습니다.
칠면조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 중에서 항상 센터(중앙)를 차지합니다.
풍요의 상징이자 감사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1년 내내 돼지와 소에게 밀리던 칠면조가 한번 반짝하는 순간. 이 순간을 위해 칠면조는 길러집니다.
추수감사절, 이것은 하지만 칠면조에게 죽음의 날일 뿐입니다.
색다른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LA 근교에 있는 한 농장을 찾았습니다.
수십 명이 찾아와 농장을 둘러보고 동물들에게 먹이를 먹이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스누크 씨 부부가 칠면조에게 먹일 음식을 마련했고 칠면조들이 그 음식들을 먹고 있다.
농장주인인 스누크 씨 부부가 우리 안에 상을 마련해 놓고 무언가를 차리고 있었습니다.
싱싱한 블루베리와 토마토, 미니 당근과 석류, 그리고 음료수와 파이까지 세심하게 마련했는데요.
이후 우리 안에 있던 조그만 창고가 열리자 오늘의 주인공, 칠면조가 등장했습니다.
각각 브리짓, 브라우니, 해링턴, 그웬존, 펄이라는 이름을 가진 5마리의 칠면조는 순식간에 음식들을 먹어치웠는데, 지켜보는 이들이 다들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이 행사는 추수감사절에 매번 잡아먹히는 칠면조를, '먹는 게 아니라 대접하자'는 취지로 비건(Vegan, 완전 채식주의자)들이 참여한 행사였습니다.
1인당 100달러(13만 원가량)라는 많은 돈을 내고 농장을 방문해 동물들에게 먹이를 준 뒤 행사를 관람하고 간단하게 채식으로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행사에서 모인 돈은 동물 복지를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별도로 35달러(4만 5천 원)를 내면 상징적으로 칠면조를 입양할 수 있고, 150달러(20만 원)를 내면 칠면조 가족 전체의 후견인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영국인 재클린 씨가 자신이 비건이 된 이유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비건 7년 차로 이 행사에 참여한 영국인 재클린 씨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경험이었다며 참여 소감을 밝혔는데요.
자신이 운영하는 영국 런던의 농장도 이 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해 생명 존중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하게 됐고 주변에도 이 행사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행사에는 모두 60여 명이 등록했는데, 소셜미디어를 보고 '칠면조를 먹는 대신 함께 즐기자'는 취지에 공감해 단걸음에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현지 시각 23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랜초파크에서 비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비슷한 시간 LA 시내에 있는 랜초파크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도 비건(Vegan, 완전 채식주의자)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성찬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비건 몇 명이 1998년 만나서 행사를 기획하게 됐고 5년 뒤인 2003년 이곳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파티가 올해로 20주년을 맞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는 이제 수백 명이 참여하는 지역의 대표적인 비건 행사가 됐다고 합니다.
비건들은 자신의 비건 레시피(채식 조리법)를 공유하기도 하고 환경과 기후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타악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샐러드나 가공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
미국에는 최소 3백만 명이 넘는 비건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1%가 비건이라고 답했고 4%가 채식주의 식단을 따른다고 답했습니다.
대부분 반려견이나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자신이 먹는 고기에 대해 거부하게 됐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엄청난 탄소를 생산하는 낙농 산업에 대한 대안으로서 비건이 됐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비건이어서 그 영향을 받아 비건이 된 경우도 있는 등 비건이 된 계기는 정말 다양합니다.
이런 이들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좀 유별난 사람 또는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은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행복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행사였습니다.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