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우리 지구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토요일, 매경 글로벌경제부 기자들이 세계 구석구석의 일들을 전해드립니다. 재밌었던 소식, 읽어볼 만한 뉴스, 이전엔 몰랐던 뒷이야기까지 ‘★★ 글로벌’에서 만나보세요.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
‘87년생’ 세계 최연소 35세 정상
대선 5번 낙선 아버지 꿈 이뤄
지난 23일(현지시간) 역대 최연소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연합]
‘바나나 수출 재벌’로 유명한 30대 사업가가 역대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해 임기를 시작했다.
23일(현지시간)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취임 선서식 연설에서 “폭력 범죄와 싸우려면 실업과 싸워야 한다. 에콰도르에는 일자리가 필요하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긴급 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1987년 11월 30일생인 노보아 대통령은 에콰도르 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전 세계 현직 대통령 중에서도 최연소다. 에콰도르에선 1979년 하이메 롤도스 아길레라 전 대통령이 38세로 취임했던 적이 있다.
미국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최연소 국가 수장이었던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37세·1986년 2월생) 보다 노보아가 21개월 젊다.
그의 임기는 18개월, 2025년 5월까지다. 지난 10월 15일 실시된 에콰도르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노보아 대통령은 52.3%의 득표율로 좌파 성향 후보 루이자 곤잘레스(47.7%)를 따돌렸다.
이번 보궐선거는 지난 5월 부유한 은행가 출신인 기예르모 라소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의회로부터 탄핵되자,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면서 시작됐다.
이때 여론조사에서 노보아 대통령은 6위에 그쳤지만, 올해 8월 1차 대선 경선 투표를 며칠 앞두고 좌파 개혁주의자인 헤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가 폭력 조직에 의해 암살되면서 2위 후보로 급부상했다.
전 대통령 탄핵 시도 후 보궐선거 당선…1년6개월 짧은 임기가 한계
‘바나나 재벌 3세’로 유명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의 가족 회사 보니타 그룹을 성장시킨 바나나 수출 사업 [출처=보니타 바나나]
노보아 대통령은 ‘바나나 재벌 3세’로 알려진 알바로 노보아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금수저’ 출신 기업가라 할 만하다. 국제연합(UN) 통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국인 에콰도르는 전 세계 바나나 수출량의 약 26%를 차지하고 있다.
노보아는 에콰도르에서도 가장 큰 바나나 생산업체다. 노보아 가문의 회사 ‘노보아 그룹(Noboa Grupo)’은 바나나 브랜드 ‘보니타 바나나’로 유명하며 델몬트, 돌(Dole), 치키타, Fyffes 등 나머지 4대 회사와 함께 중남미 바나나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노보아 그룹의 토대를 일군 창업주는 할아버지인 루이스 노보아다. 노보아 그룹은 바나나 무역으로 출발해 현재 수십개국에서 128개 이상의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누가 봐도 금수저지만, 노보아 대통령은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그는 아버지의 회사로 합류하기 전 세운 이벤트 조직 회사 ‘DNA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운영하며 개인 자산이 100만달러도 안 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회사를 창업한 이후 그는 노보아 그룹 계열사 이사로 합류했다.
앞서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노보아 가문이 그룹 지주사격인 바하마 소재 회사(Fruit Shippers)에만 3억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알바로 노보아 전 의원이 밝힌 총 자산 규모만 해도 10억달러 이상이다.
친기업 성향에 마약 카르텔·빈곤 해결 공약…기성 정치 거리두기로 표심 잡아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의 아버지인 알바로 노보아 전 국회의원 [출처=알바로 노보아 엑스 계정]
노보아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의 아버지가 갈망했던 대통령 자리는 아들대에서 현실로 이뤄졌다. 그의 아버지인 알바로 노보아 전 국회의원은 1998년, 2002년, 2006년, 2009년, 2013년 등 무려 5번에 걸쳐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알바로 전 의원은 지난 2000년대 초반 에콰도르 바나나 농장에서 아동 중노동, 농장 노조 파업에 대한 폭력 진압과 2009년 여성 모델 성폭행 사건으로 정치적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정치 신인이던 2021년 노보아는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역대 최연소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 중도 좌파라고 주장하지만, 주요 공약인 스타트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외국인 투자 유치, 마약 밀매·카르텔 폭력 차단,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친기업적 정책으로 중도 우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좌파 지지기반이 강한 에콰도르에서 노보아 대통령은 아버지와도 정치적으로 선을 그어 왔다. 그의 아버지 알바로 노보아 전 의원은 좌파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 악마”라고 자주 비난했지만, 다니엘 노보아는 코레아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삼가면서 중도적인 입지를 유지했다.
강력하게 내세운 치안·범죄 공약들의 역할도 컸다. 노보아 대통령이 제안한 경찰 예산 확대를 비롯해 마약 카르텔이 지배하고 있는 항구와 교도소의 치안을 강화하기 위한 군대 배치 공약 등은 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앞선 정부 잇단 실정으로 마약카르텔이 점령…살인·폭력으로 얼룩져
지난 8월 에콰도르 대통령 보궐선거 1차 경선을 앞두고 범죄 조직에 의해 암살당한 반부패 개혁주의 성향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의 선거 유세 당시 모습. [사진=AFP연합]
과거 에콰도르는 인접국인 콜롬비아와 페루가 마약 카르텔과 관련 범죄로 혼란스러울 당시 상대적으로 치안이 나은 국가였지만, 2000년대 이후 달러화 채택, 2016년 이후 콜롬비아 내전 종식으로 혼란이 진정되면서 에콰도르는 마약 카르텔의 마약 해상 운송과 수출을 위한 주요 교두보로 전락해 버렸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2009년 마약 단속을 위해 운영되던 항구도시 만타의 미군 기지 임대 연장을 끝내고, 미국 국무부 국제마약국과 교류도 끊으면서 에콰도르가 마약 밀매 루트인 콜롬비아 국경지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됐다.
후임 대통령인 레닌 모레노 정부에서도 외채 상환과 긴축 예산으로 안보·치안 예산을 줄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폭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4600명으로 전년 대비 2배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3568명이 폭력 범죄로 사망했다.
엘 파이스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에콰도르는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사망자수가 40명을 넘길 전망이다. ‘전세계 마약범죄 허브’에 ‘세계에서 가장 폭력 범죄가 심각한 국가’라는 불명예까지 얻을 판이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