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약 1300원)가 안 되는 돈으로 배를 채워주는 음식.” 최근 미국 대학생 매체 웨스턴프론트는 가격이 저렴한 인스턴트 라면이 대학생들이 즐겨찾는 식단으로 부상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매체가 대학생 30명에게 물었더니 93%가 “라면을 먹는다”고 답했다. 이 중 33%는 “라면을 한 달에 몇 번씩 먹는다”고 답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에 따른 생활비 위기가 세계인의 밥상이 바꾸고 있다. 웰빙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던 유기농 식단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단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 마트의 선반 위에 지난달 라면 제품들이 놓여 있다. 사진 웨스턴프론트 인스타그램 캡처
라면, 전 세계 역대 최다 소비
대표적인 식단이 인스턴트 라면이다. 세계인스턴트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50여 개국에서 소비한 인스턴트 라면은 역대 최다인 1212억 그릇에 달한다. 2018년 1036억2000만 그릇보다 약 17% 증가했다. 이를 두고 닛케이 비즈니스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이전에 라면을 먹지 않았던 중산층도 라면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옥 기자
2020년 1월부터 올 10월까지 식료품 가격이 25% 오른 미국의 경우 지난해 라면 매출이 전년에 비해 3.4%가량 상승했다. 라면 수요가 늘자 이달 일본 라면업체 닛신식품은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새 생산 공장을 짓고 캘리포니아·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기존 공장 규모를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라면 수요는 2018년 4억 인분에서 지난해 4억5000만 인분으로 늘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한 마트에서 지난 5월 한 시민이 물건을 사고 있다. AP=연합뉴스
1만원에 버거 먹기도 어렵자 통조림 인기
통조림도 인기를 얻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해산물 통조림 산업 매출이 2018년 23억 달러(약 3조원) 규모였으나 올 11월까지에만 27억 달러(3조5200억원)로 커졌다. 저렴하면서도 보존성이 높은 생선 통조림이 인기를 얻자 뉴욕ㆍ샌프란시스코ㆍ휴스턴의 일부 와인바들에선 통조림이 정식 메뉴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27일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닭 가슴살 907g은 2020년 1월 6.12달러(약 7900원)에서 지난달 8.44달러(약 1만900원)로, 우유는 같은 기간 3.25달러(약 4200원)에서 3.93달러(약 5000원)로 올랐다. 또 치즈버거의 평균 가격은 2019년 9.74달러(약 1만2000원)에서 올해 15.88달러(약 2만원)로 63% 급등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유기농·단백질 덜 먹고 즉석·가공식품 늘려
영국에서도 유기농 등 건강식을 즉석ㆍ가공식품으로 대체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BBC 굿푸드의 지난 8월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영국인 2013명 중 60%가 “식재료 가격 상승으로 식단을 바꿨다”고 답했다. 이 중 16%가 유기농 재료를 줄였으며, 12%가 단백질을 이전보다 덜 섭취한다고 밝혔다.
응답자 19%는 저렴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즉석ㆍ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는다고 했다. 영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올 10월까지 2년간 영국의 식품 가격은 28% 상승했다.
영국 알트링캠에 있는 마트에서 올 2월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인 38% "식품 가격 올라 하루 세끼 못 먹어"
영국처럼 식품 가격 상승률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푸드플레이션(foodflation) 현상이 나타나는 유럽 각국에선 생활비 절감을 위해 끼니를 거르는 풍조도 생겼다. 지난 9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공개한 유럽 10개국 1만 명 상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8%는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하루 세끼를 챙겨 먹지 못한다고 답했다. 30%는 배가 고파도 식사를 거른 적이 있다고 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물가상승에 외식과 간식 소비도 감소세다. 지난 16일 시장조사업체 닐슨IQ가 공개한 호주인 5000명 대상 조사 결과 응답자의 총 86%가 생활비 절감을 위해 더 저렴한 대체 식품을 사거나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포장 음식을 줄인다고 답했다.
또 60%는 초콜릿ㆍ견과류와 같은 간식을 이제 ‘사치품’으로 생각해 구입을 피한다고 했다. 퀸즐랜드에 사는 케리 무어(67)는 호주ABC뉴스에 “스테이크 대신 소시지를 먹고, 빵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