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사뭇 송크람 지역의 매끌롱 마켓.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으로 통한다. 복잡하고 비좁은 시장 한가운데로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태국 방콕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해외 여행지 중 하나다. 왕궁‧차이나타운‧카오산로드 등의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정만이 방콕 여행의 정수는 아니다. 이틀도 필요 없이, 한나절만 투자하면 전혀 낯선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 쪽배로 빼곡한 운하의 절경이 방콕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다.
열차가 왜 시장서 나와
열차는 느긋한 속도로 매끌롱 시장을 빠져나간다. 열차가 지나면 인증사진을 담으려는 관광객들이 철로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재래시장은 사람을 끄는 매우 강력한 힘이 있다. 다소 촌스럽고, 부산스럽긴 해도 현지의 삶과 문화를 생생히 접할 수 있다. 특별히 살 게 있는 게 아니어도 둘러보는 재미가 크다. 태국처럼 길거리 음식, 야시장 등의 전통시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방콕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서쪽 방향으로 약 80㎞)의 사뭇 송크람에는 그야말로 이색적인 재래시장이 있다. 매끌롱강 하구에 자리한 ‘매끌롱 마켓(딸랏 롬 훕)’인데,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으로 통한다.
인스타그램에서 'maeklong'을 태그한 수많은 인증사진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남대문시장의 갈치골목, 부산의 자갈치시장 한가운데 열차가 지난다고 상상하면 가늠이 될까. 인스타그램에 ‘maeklong’을 검색하면, 복잡하고 비좁은 시장 한가운데로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찍은 4만 개 이상의 인증사진을 찾을 수 있다. 함께한 가이드빠야펀은 “전 세계인이 모이는데, 한국에만 아직 인기가 덜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시장의 역사는 대략 100년을 헤아린다. 1905년 철도가 들어섰는데, 철길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자, 뱃길로만 생선을 내다팔던 장사꾼들이 철길에 하나둘 눌러앉기 시작했단다. 증기 기관차가 디젤 기관차로 바뀌고, 생선가게 사이사이로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을 뿐, 시장의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300m 철길을 따라 300개 이상의 상점과 좌판이 빈틈없이 도열해 있다.
“3분 후 열차가 지납니다.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시장 상점과 기차의 거리는 불과 1m 안팎이다. 달리는 속도가 느리지만 안전사고를 주의해야 한다.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 시장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상인들이 철길을 가로막고 있던 차양과 좌판을 일제히 거두면, 카메라를 든 관광객이 철길로 쏟아져 나와 열차를 맞는다. 열차와 시장 그리고 사람 사이의 거리는 불과 1m 안팎이다.
시속 5㎞도 못 미치는 속도지만 다들 숨 죽여 열차가 지나기를 기다린다. 열차가 지나면 꽁무니에 바짝 붙어 기념사진을 담는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방구차(소독차)를 쫓던 우리네 어린 시절이 문득 스친다. 정체모를 비린내와 매연, 인파가 뒤섞인 묘한 활기로 시장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매일 네 차례 이러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쪽배는 낭만을 싣고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의 풍경. 좁은 운하 위로 시장 상인과 관광객을 태운 쪽배가 쉴 새 없이 오간다.
수많은 강과 운하를 거느린 태국에는 수상 시장이 유독 발달했는데, 그중 가장 이름난 것이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이다. 매끌롱 마켓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미로 같은 운하를 따라 수상 가옥이 끝없이 이어지고, 폭이 10m가 채 안 되는 물길 위로 조각배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형형색색의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실은 청과상, 고기와 야채를 구워 꼬치를 만드는 물 위의 요리사, 연신 진귀한 기념품을 꺼내 보이는 상인 등 쪽배 위에 풍경이 다채롭다. 많은 미디어가 이 진경을 탐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와 ‘방콕 데인저러스(2008)’이다. 두 영화 모두 비좁은 수상 시장을 배경으로 긴박한 추격 장면을 담아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의 상인들. 능청스럽고도 노련한 솜씨로 관광객을 유혹해낸다. 과일·맥주·간식·기념품 등 안 파는 것이 없다.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를 저어 이동하는 날렵한 모양의 쪽배 ‘르어 파이’를 타고 뱃길을 누비는 것이다. 물 위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 목 좋은 자리도 없고, 남보다 곱절 이상 큰 대형마트도 없고, 줄 서는 맛집도 없다. 호객과 흥정하는 분주함만 있는 세상. 그렇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적당한 속도로 흘러간다.
지난달 27일 라마2세공원과 매끌롱강 일대에서 러이 끄라통(Loy Krathong) 축제가 열렸다. 강에 유등을 띄워 소원을 비는 행사다.
지난달 27일 밤 매끌롱강의 임파와 수상시장에 갔다가 ‘러이 끄라통(매년 음력 12월 보름 개최)’ 축제를 체험했다. 바나나 잎으로 만든 끄라통(작은 배)를 강물에 띄우는 행사다. 빠야펀은 “축제날 매끌롱 강 위로 10만 개 이상의 끄라통이 뜬다”면서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흘러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일러줬다.
소원이 깃든 터인지, 끄라통을 단장하는 열기도 치열하다. 특히 커플용 유등을 띄우는 연인과 어린이들의 끄라통이 유독 화려했다. 매끌롱강 야간 보트를 타고 멀찍이 나아가 끄라통을 띄웠다. 강변에 닿아 보트의 조명을 내리자 반딧불이 떼로 주변이 반짝반짝 빛났다. 쪽배 위에서 가장 한가롭고 낭만적인 태국을 만났다.
직접 만든 끄라통을 꺼내 보이는 태국 소녀들. 끄라통은 바나나잎으로 장식하고 초나 향을 꽃는 것이 기본이다.
여행정보
안락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 플랫배드. 사진 에어에시아
한국에서 방콕까지는 6시간 거리다. 에어아시아의 경우 주 10회 운항하던 인천~방콕 직항 노선을 10월부터 주 14회(하루 두 차례)로 증편해 운영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이지만 만 10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저소음 구역, 비즈니스 클래스 개념의 플랫베드 좌석도 이용할 수 있다. 태국은 건기에 해당하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여행 최적기로 통한다. 해가 지면 기온이 20도 정도까지 떨어져 비교적 선선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현지 여행사나 온라인 여행사릍 통해 방콕을 출발해 메끌롱 마켓과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등을 두루 둘러보는 반일 투어 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