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쓴 백린탄은 미국산”…아랍권 반발

by 민들레 posted Dec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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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살상 아닌 연막용” 주장에 WP “밤 시간에 사용”
미, 유엔 휴전안 거부 이어 궁지…“중·러 입지 커져”

 

투하되는 ‘악마의 무기’ 이스라엘군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마르자윤 마을에 백린탄으로 추정되는 포탄을 투하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 초기였던 지난 10월 레바논을 공격할 당시 사용했던 백린탄이 미국산이라는 주장이 11일(현지시간) 제기됐다. 백린탄은 무자비한 살상력 때문에 국제법상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무기다. 미국은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이스라엘에 제공한 백린탄이 이번 전쟁에 활용됐다는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큰 반발에 직면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자사 기자가 레바논 남부 두하이라에서 155㎜ 백린탄 3발의 잔해를 발견했고, 잔해 표면에 적힌 일련번호 등을 확인한 결과 이 포탄들이 1989년과 1992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와 아칸소주에서 생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WP는 “무기 전문가에 따르면 포탄에 찍힌 WP라는 글자는 백린(white phosphorus)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10월10일부터 16일까지 두하이라를 공격할 때 백린탄을 투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공습으로 주택과 자동차가 불에 타고 민간인 9명이 호흡곤란으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백린탄 사용은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았다. 백린탄은 불꽃이 몸에 닿으면 살과 뼈가 모두 타들어 가고 호흡기와 장기 손상을 일으켜 일명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특히 특정 목표물을 겨냥해 타격하는 방식이 아닌 공중에서 폭발해 투하 지점 근처에 광범위하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민간인 피해를 야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국제인도법은 백린탄을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백린탄 사용은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에 따라 규제되는데, 이스라엘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지금까지 하마스를 돕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백린탄 투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상이 아닌 연막 용도로만 사용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WP는 “이스라엘군은 백린탄을 대체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무기인 M150 포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격을 퍼부은 시간이 밤이었고, 당시 레바논 남부엔 연막으로 가려야 할 이스라엘 병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군의 설명이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산 백린탄이 이번 전쟁에 사용됐다는 보도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보도를 봤고 확실히 우려하고 있다”며 “더 많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스라엘 측에) 질문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백린탄은 어두운 곳을 밝히고 병력 움직임을 숨기기 위한 연막을 만들 때 사용되는 등의 합법적인 군사적 용도가 있다”며 “우리는 전쟁법을 준수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백린탄 같은 무기를 다른 나라에 제공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교 명절 하누카(빛의 축제) 기념행사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몰아낼 때까지 군사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아랍권은 지난 8일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백린탄 제공 의혹까지 제기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포럼에서 갈립 달라이 중동국제문제협의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에서 더 많은 입지를 확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평가했다. 오마르 라흐만 연구원도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미움받는 국가가 되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며 “미국이 공을 들이던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수립을 위해 미국 정부가 애써왔다”면서도 “현재 많은 중동 국가는 오히려 사우디와 이란이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지난 3월 중국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바 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