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 기습 공격이 드러낸 中東 불안정성
● 정치·경제·외교 모두 예측 어려워
● 분쟁 시발점이자 擴戰 뇌관, 이-팔 갈등
● 미국-이란 대결 = 향후 분쟁 핵심
2023년 10월 9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주택가에서 이스라엘인 아버지가 아들을 안은 채 대피하고 있다. [AP 뉴시스] |
2023년 10월 7일 새벽 6시 30분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이스라엘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다. 1000명 이상의 이스라엘 민간인 사망자가 단시간에 발생했다. 국제사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완벽한 ‘블랙스완(Black Swan·발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이었다. 하마스는 로켓 공격 등 재래식 방식과 인질 납치, 총살 영상 공개 등 비재래식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구사했다. 이스라엘 정보부조차 명확히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작전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중동 곳곳에 불안정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동, 참 아리송한 곳”
중동 지역을 체험한 대부분 사람들이 “중동은 참 아리송한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 중동에서 오랜 기간 비즈니스를 한 사람들은 “중동은 안 되는 것도 없고 잘 되는 것도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처음엔 일이 잘 되는 듯하다가도 삽시에 암초에 부딪힌 듯 꿈쩍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언어·문화가 낯선 곳에선 거주도 힘들지만 사업은 더 어렵다. 중동 특유의 느릿함, 상층부에 지나치게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가 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는 이유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 국가의 외교정책도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인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며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UAE는 미국 F-35 전투기 도입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 화웨이의 5G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원유 생산 감산 요청을 거부하며 외교 마찰을 일으켰다.
카타르는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의 지도자에게 안전 가옥을 제공해 영향력을 확보한다.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는 이스라엘인 인질 석방 협상을 중재하면서 외교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즉 위 3국의 특징은 대미 의존 외교에서 탈피해 외교 다변화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엔 유독 블랙스완이 많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발 사태가 발생하는 만큼 면밀한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꾸준하고 주의 깊게 정세를 관찰함으로써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전담팀을 꾸려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동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정성의 기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유대인과 아랍권 관계도 덩달아 나빠졌다. 1948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주변 아랍국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쭉 이스라엘과 아랍 세력은 ‘정적(政敵)’으로 지냈다. 1956년, 1967년, 1973년 무려 세 차례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역내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 됐다.
1956년 이스라엘은 영국·프랑스와 함께 이집트를 공격했고, 1967년엔 이집트·시리아를 선제공격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1979년 시작된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중동의 안정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셈이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이어졌다. 1967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과 가자 지구를 차지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마스는 2006년, 2008~2009년, 2012년, 2014년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했고, 이스라엘 격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 전역에 전쟁을 몰고 올 수 있는 뇌관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인 2023년 10월 7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가 텔아비브에서 내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신화 뉴시스] |
미국-이스라엘 vs 하마스-헤즈볼라 + 중·러 = 최악 시나리오
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국가는 이란이다. 이란은 오랜 기간 하마스를 지원했다. 이란은 주변 수니 걸프 국가인 사우디, UAE, 터키, 이집트 등과 경쟁하는 국가다. 특히 이들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혁명 수출’ 정책을 우려하며 이란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1981년엔 걸프협력회의(GCC)를 창설해 뭉쳤다.
결국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많은 것을 바꿔놓은 셈이다. 수니 아랍 국가들은 중동 내 가장 큰 이슬람 운동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을 두려워하게 됐다. 이란처럼 이슬람 혁명을 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란은 이라크와 8년간 오랜 전쟁을 경험하면서 외교 및 안보 정책에 큰 변화를 줬다. 권역 내에 자국의 뜻을 대변할 대리 조직을 구성하고 키웠다. 자국 영토 내에 적들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대리 조직을 통해 막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란이 세운 첫 번째 대리 조직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레바논에 창설한 ‘헤즈볼라’다. 레바논의 이슬람화, 팔레스타인 무슬림을 억압하는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이 주요 목표다. 이란은 1987년 창설된 팔레스타인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하마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독려하기도 했다. 또 2015년 이후엔 반정부 투쟁을 해온 시아파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을 늘리며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UAE와 대리전을 벌였다.
정리하면 수니 걸프 아랍국가 통치자들의 첫 번째 경계 대상은 이란이고, 두 번째는 이슬람 운동 조직이다. 2019년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이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정유시설을 타격한 세력의 배후에 후티 반군과 이란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2018년 핵협상을 일방적으로 탈퇴한 미국에 실망한 이란이 미국과 사우디를 압박해 난관을 타개하려는 심산으로 벌인 일임이 자명하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참상은 단순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분쟁이 아니다. 이란이 지원하는 다른 대리 조직, 즉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가 일제히 하마스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은 2개의 항모전단을 배치한 것도 모자라 핵잠수함까지 지중해로 이동시키고 있다.
아직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막강한 무기체계를 자랑하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미국의 대응 공격이 예상되며 확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스라엘 진영과 이란·러시아·중국과 연대하는 하마스-헤즈볼라 진영 간 전쟁으로 확전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다. 핵심은 미국과 이란의 대결이다. 한 국가를 안다고 하는 것은 역사·문화·정치·경제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고정관념을 깨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연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현지인과의 소통도 필수다. 현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해당 지역과 국가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왕도는 없다.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