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능과 야만의 끝판, 올해 최소 두 번 세계가 요동친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by 민들레 posted Ja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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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44개국 최고수반 선출...1월 13일 대만, 11월 5일 미국 선거 주목
 

▲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즈미이브에서 구조대원들과 주민들이 러시아 공습의 잔해를 치우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지역 관리들이 밝혔다.
ⓒ 연합뉴스


2024년에는 전 세계 44개 국가에서 국가수반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43개 국가에서 전국 규모의 상·하원 총선이 열리고 국민투표도 6개국에서 예정돼 있다. 양적으로는 예년에 비해 약간 많은 정도지만 투표 결과에 따라 국내는 물론 국제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선거들이 올해 유독 많다.

그 가운데에는 정상적 절차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올해 3월 31일 대선과 총선이 예정돼 있는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 우크라이나 법에 따르면 계엄령 중에는 선거를 치를 수 없어, 이를 해제하지 않는 한 올해 선거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선거를 치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국토의 5분의 1이 러시아의 통제 하에 있고, 수백만의 국민이 해외로 이주했다. 투표소로 이용될 공간들도 상당수 파괴된 마당에 대선을 치를 명분도, 실리도 적다. 전쟁 피로에 따른 서방 국가들의 압력이 변수지만, 이들이 우크라이나 선거를 무리하게 관철시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경우는 2021년 7월 31일 예정이었던 대선, 총선이 지금까지 연기돼 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분리 고립돼 있는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가 각각 두 지역을 독점 지배하면서 양측 간 모든 정치적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올해 끝난다면 그 결과에 따라 선거가 열릴 수도 있다.

휴전 후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총선관리 과도정부를 구성해 조기 총선을 치르자는 중재안이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하마스가 제거되고 배제된 총선을 기대하기엔 전쟁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민간인의 더 큰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선거 향방이 큰 지각 변동을 몰고 올 수 있지만 결과가 사실상 정해진 경우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내부 공식적으로는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 중이다. 따라서 선거는 정상적으로 3월 17일 열린다. 하지만 선거라기보다 대관식에 가까운 러시아 대선 결과가 궁금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현재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11명 가운데 6일 기준으로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후보는 푸틴을 제외하고 2명뿐이다. 두 명 모두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심지어 자유민주당 슬루츠키 후보는 출마의 변으로 '푸틴의 표를 빼앗지 않을 것'을 밝히고 있다. 결국 어떤 의미로든 러시아 선거는 올해 눈에 띄는 선거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한 선거 가운데 하나인 대만 총통 선거
 

▲  지난 6일(현지시간)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한 건물에 집권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의 선거 포스터가 붙어있다.
ⓒ 연합뉴스


올해 가장 먼저 대선을 치른 나라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마셜제도다. 지난 2일 선거가 열려 새 대통령 힐다 하이네가 당선됐고 이튿날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하이네 대통령은 이미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마셜제도 첫 여성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 4년 만에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미국 핵실험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역사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사라지는 위험을 안고 있는 마셜제도는 환경 문제에 민감하다. 환경외교에 사활을 걸 만큼 대외관계가 중요함에도 중국이 아닌 대만과 수교를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이네 대통령 당선 직후 국가 정상 가운데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낼 만큼 대만으로서는 중요한 우방 국가일 수밖에 없다.

오는 13일 열리는 대만 총통 선거는 2024년 지구촌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선거 가운데 하나다. 현 집권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중국국민당의 허우유이,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세 후보의 각축이 선거 결과 예상을 불허할 만큼 뜨겁다. 야권 단일화 실패 이후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유리한 듯했으나 공표금지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는 민진당-국민당 후보 간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한 '대만 독립파' 라이칭더 후보는 중도층 공략을 위해 자신이 당선돼도 독립을 선언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반대로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로 나선 허우유이 후보는 원래 대만독립뿐 아니라 양안통일(중국과 통일)도 반대하는 입장의 인물이다. 따라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급격한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대만 국민의 선택이 어디로 향했는가 하는 문제는 미국과 중국 외교당국이 갖는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 대선의 향방이 어디로 향하든 대중 노선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중국은 양안 간 거리 좁히기를 서두르기 위해 국민당의 승리를 바랄 것이다.

반대로 민진당이 재집권하면 대만 국민을 향한 중국의 무력시위는 불 보듯 뻔하다. 무력 침공 가능성도 계속 흘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점차 커지는 서방 국가들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아시아 확장 의도 등은 대만을 신냉전의 전초기지화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대만인들은 최근 수년 홍콩의 중국화가 초래한 결과를 보고도 국민당 정권을 바랄까? 혹은 동유럽, 서아시아에 이어 또 하나의 글로벌 분쟁지역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민진당 정권을 바랄까? 며칠 후면 우리는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24년 국제정치의 큰 향방을 가늠하게 될 것이다.

현직과 전직 대통령 간 리턴 매치 유력한 미국 대선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극우 공화당 세력이 남북전쟁의 원인을 오도하는 등 "역사를 훔치려 한다"고 비판했다.
ⓒ 연합뉴스


2024년 '선거의 해'가 사실상 대만 총통 선거로 시작된다면 그 대미를 장식할 선거는 역시 미국 대선이다. 11월 5일 하루에 미국은 대통령과 연방 하원의원 전체, 그리고 연방 상원의원 33명을 선출한다. 현재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11월 5일 선거 이후 상원도 공화당이 다수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전대미문의 리턴 매치가 가장 유력한 가운데, 공화당의 예비후보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현재 2위 자리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다투고 있지만 두 후보는 '실버 크로스'(2, 3위 순위가 바뀌는 일)의 교차점에 있는 듯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니키 헤일리 전 대사 간의 격차는 여론조사에 따라 편차가 크다. 분명한 것은 30%포인트대 이상의 격차가 최근 들어 10%포인트대 후반으로, 조사에 따라 한 자리 수 격차까지 좁혀졌다는 점이다. 본격적 당내 경선이 시작되는 오는 15일부터 공화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이 어디로 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친 공화당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지만 중도 확장성에 한계를 보인다. 이에 헤일리 전 대사를 대체재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 공화당의 온건파 세력이다. 그들은 거친 언행과 사법 리스크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본선 경쟁력을 의심한다. 실제 헤일리 전 대사가 본선 경쟁력에서 더 우위에 있다는 분석들도 나온다.

그렇다고 헤일리 전 대사가 이념적 온건파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유엔대사 시절 미국은 유엔인권위원회를 탈퇴했고 이란핵합의(JCPOA)도 탈퇴했다. 파리협정 탈퇴에도 그는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주이스라엘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안에도 찬성했다. 세금 인하와 정년 최소 연령 폐지, 예산 감축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트럼프 충격' 이후 착시현상이 빚어낸 결과가 니키 헤일리의 중도 확장성이다. 사실 헤일리 전 대사뿐 아니라 디샌티스 주지사 역시 이념적으로는 온건파와 거리가 멀다. 다만 최근 수년 사이 탈윤리적 야만성이 정치적 해방으로 둔갑해 정치판을 폭력과 살기가 난무하는 광란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전 세계적 현상이 유권자들을 마비시키고 있을 뿐이다.
 

▲  2021년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밖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그들에게 정치적 탄압으로 해석된다.

선거에서 진 것은 그들에게 전쟁에서 진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빼앗아야 한다. 그런 집단 정신착란이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그런 그들이기 때문에 헤일리 전 대사와 같은 명백한 우익 인사도 중도 확장성을 가진 인물로 떠오르는 것이다.  

무력과 폭력을 멈추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것이 민주주의이고 선거다. 야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가겠다며 만든 사회적 장치인 것이다. 선거는 이질적 정체성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 거행하는 거대한 의례 행위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선거는 다시 폭력의 근원이자 목적이 되고 있다. 폭력을 막기 위해 고안한 선거에 이기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저능하고 야만적인 인류의 모습으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11월 5일, 우리는 미국 대선에서 이러한 저능하고 야만적인 인류의 끝판을 보게 될 수도, 또는 그 저능과 야만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희망적 단서를 찾을 수도, 그렇지 않으면 위기의식 자체를 잊고, 야만이 일상이 되는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 대선 이전에도 전 세계에는 인류의 지성을 시험해 볼 선거들이 여럿 있다.

과연 우리는 호모 이디오투스(Homo idiotus, 광적인 바보 같은 인간)일까? 유독 선거가 많은 2024년, 우리는 스스로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를 가졌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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