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톺아보기-114
[매경DB]
통계조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중엔 유독 세간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컨데, 한국의 경우 주가 장단기 추이, 부동산 가격 추이, 정당 또는 대통령 지지율 추이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나 정치 관련 통계수치와 달리, 순전히 원초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도 있습니다. 나라 혹은 지역별 평균 키 또는 성기 사이즈를 비교한 통계가 대표적 예입니다.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운영중인 일본인 통계 전문가 혼카와 유타카씨에 따르면 수많은 통계들 중 나라별 신장과 그곳 크기를 비교하는 통계에 대해서는 어디서나 관심도가 높습니다. 그는 “신장과 성기 사이즈 비교 통계는 항상 열람 순위 열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20세기 들어 키 가장 많이 큰 나라들...한국 175cm vs 일본 172cm
[그래픽=유제민]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3국은 여러 지표들이 자주 비교되곤 하는데 신장도 그중 하나 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1896년과 1996년 사이 100년간 만18세 성인의 평균 키를 비교했을때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에서 증가세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이후 유례없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던 한국과 일본은 모두 15cm가량 평균 신장이 커졌고, 이 기간동안 전세계에서 키가 가장 많이 자란 나라 순위 5위 안에 들었습니다.
배경으로는 흔히 영양상태 개선이 첫째로 꼽힙니다.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섭취하게 된 음식 양은 물론 육류, 우유 등 단백질 섭취가 늘고 생활환경도 개선되면서 평균 신장이 커졌다는 설명입니다. 북한만 하더라도 분단 이전 남한과 거의 차이가 없었던 평균 신장이 지금은 10cm가 훨씬 넘게 작아지고 말았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한중일 3개국 중에선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이 항상 가장 작게 나타납니다. ‘NCD-RisC(세계보건과학자네트워크)’ 와 ‘Our World in Data’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평균 신장은 남녀 각각 175cm, 163cm 인데 반해, 일본은 172cm, 158cm로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일제시대와 1950년경에는 식민지 착취와 전쟁 여파로 빈곤에 시달렸던 한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평균 신장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과 비등했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675년 육식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약 1200년 뒤인 1872년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야 육식금지가 해제됐다.
또한 특이하게도 일본은 19세기 에도시대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이보다 1만년 전 선사시대때 보다도 작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역시 영양섭취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섬나라 일본인들은 지리적 특성상 고기보다 해산물 섭취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서기 675년 텐무 덴노가 ‘육식 금지령’을 내리면서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더욱 급감하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겁니다.
최근 30년간 키가 되레 줄어든 日...“유전적 한계 도달했나”
[ANN 뉴스 영상 캡처]
한국인들과 달리 현재 일본인들의 키가 거의 30년 가까이 정체돼 있고, 오히려 과거보다 다소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17세 남자 고등학생의 평균키는 170.8cm로 27년 전 170.9cm보다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닛케이는 일본에서 2.5kg 미만의 저체중 출생아들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일본은 1980년대 임신중독증 예방에 체중제한이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돼 화제를 모았고, 1999년에는 산부인과학회가 체질량지수(BMI)가 18~24인 여성은 임신중 몸무게를 다른 나라들 보다 적게 7~10㎏ 이내로 늘리길 권장했습니다.
이 같은 권장 사항은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개정되긴 했지만, 지난 수십년 간 일본의 저체중아 증가에 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외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저체중 출생아들은 성인이 됐을때 키가 작은 경향이 나타납니다. 모리사키 나호 국립성육의료연구센터 사회의학연구부장은 “2014년생의 경우 1980년생 보다 성인이 됐을때 평균적으로 남성 1.5cm, 여성은 0.6cm 작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스위스 사진사 로시에가 1859년에 찍은 에도시대 일본인 사진.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은 남성 155cm, 여성 143cm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이미 유전적으로 키가 클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 국립이화학연구소는 지난 2019년 자국민 19만명의 게놈을 해석한 결과, 키를 자라게 하는 유전자 변이가 도태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바바 히사오 국립과학박물관명예 연구원도 “현재 일본인의 평균신장은 유전적으로 최대치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현대 일본인은 조몬+야요이 혼혈...북방대륙계 DNA 형질 덜해
현대 일본인의 원형은 야요이 도래인(渡來人)과 조몬이 섞인 혼혈이라는 게 정설이다.
동남아에서 오키나와를 거쳐 약 1만 2000년 전 일본 열도에 정착하고 있던 조몬인은 남방계로 체격이 작았습니다. 반면 2400여 년전 한반도에서 이주한 야요이인들은 북방계로 체격이 상대적으로 더 컸습니다. 도쿄대 연구원 히라모토 요시스케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조몬인의 평균 신장은 약 159cm, 야요이인은 약 162cm 였습니다.
일본은 지리적 특성상 민족구성이 한국보다 다양하나, 현대 일본인들의 원형은 일본 열도에 살던 원주민(조몬인)과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야요이인)의 혈통이 섞인 혼혈이라는게 정설입니다. 지난 2012년 일본 종합연구대학원대학이 내놓은 DNA 분석 결과도 이 가설을 뒷받침한 바 있습니다. 2003년에는 돗토리대 의학부 연구팀이 야요이인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DNA와 일치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죠.
[사진=위키피디아]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들의 평균신장이 작은 이유를 유전적으로 북방대륙계 DNA 형질이 한국이나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에서 찾기도 합니다. 한국인도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척 보기에도 일본인들보다 북방계 DNA 형질이 뚜렷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대륙계가 많은 네덜란드나 독일의 평균신장이 남방계가 많은 프랑스 보다 더 큰 이유와 같습니다.
유전학자들은 일본에서 야요이 유전자가 조몬 유전자를 압도했다고 결론짓고 있는데, 현재 일본에서 야요이계와 조몬계 비율은 8대2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곳 사이즈는 日>韓>中 순...신장 등 체격에 비례하진 않아
[그래픽=유제민]
보통 신장 및 체격조건(BMI)이 좋을수록, 성기 사이즈도 비례해서 클 것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WorldData.info’ 통계에 따르면 어느정도 경향성은 있으나 비례관계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키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평균신장이 가장 큰 네덜란드인들의 사이즈가 세계에서 가장 커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죠. 키가 가장 큰 나라들은 북유럽 등 유럽 지역에 몰려 있지만, 성기 사이즈 세계 랭킹 1~3위는 에콰도르, 카메룬, 볼리비아 등으로 모두 아프리카 또는 남미 국가들 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끼리 비교했을때도 체격조건을 따라간다면 평균적으로 가장 왜소한 일본인들의 사이즈가 가장 작아야겠지만, 오히려 셋 중에서는 일본인들의 사이즈가 가장 크게 나타납니다. 물론 그래봤자 세나라 사이즈 모두 전세계적으로는 하위권 입니다.
흔히 ‘흑인은 대물이 많다’ 라는 속설이 있는데 실제로 이들의 사이즈는 평균적으로 아시아계 보다 현격히 큽니다. 영국비뇨기학저널이 발표한 연구에서도 성기 사이즈는 아프리카쪽이 가장 컸고 유럽,북아메리카,아시안 순이었습니다.
이처럼 인종간 사이즈 차이가 나는건 1차적으로 유전자 차이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흑인과 동북아시아계 남성을 비교한다면 성 염색체인 Y염색체 그룹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흑인은 Y염색체 그룹이 A, B, E 등 3개로 분류된다면 아시아계는 C, D, O가 많습니다. 또, 동북아시아계 유전자에는 고대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1%~4%는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흑인은 전혀 물려받고 있지 않습니다.
신장과 성기 사이즈 차이 설명하는 베르그만의 법칙&알렌의 법칙
베르그만의 법칙에 따르면, 같은 생물종 사이에서도 기후와 환경에 따라 몸집 차이가 난다. 열대에 서식하는 말레이 곰은 100~140cm, 온대 서식 반달가슴곰은 120~180cm, 북극곰은 200~250cm에 달한다.
기후 등 환경 차이도 중요합니다. 베르그만의 법칙(Bergmann’s Rule)에 따르면 항온동물은 기온이 낮은 지방에 살수록 체구가 커지는 경향이 있고 기온이 높은 지방에 살수록 작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열 손실을 최소화 하기위해 몸집을 키우게 되고, 더운 곳에서는 열을 방출하기 위해 몸집을 줄인다는 학설인데 이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반구 추운 기후의 나라들은 신장이 크고, 적도 부근 더운 나라들의 신장은 작은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륙성 기후인 한국, 중국과 달리 해양성 기후에 위도도 낮은 일본은 홋카이도 정도를 빼면 한 겨울에도 웬만해선 영하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고위도에 서식할수록 귀가 짧아지는 토끼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베르그만의 법칙이 기후에 따른 체격차이를 설명하고 있다면 알렌의 법칙(Allen‘s rule)은 성기 사이즈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이 학설에 따르면 신장과 달리 몸의 말단부분은 기온이 낮을수록 열 손실을 막기 위해 짧아집니다. 반대로 기온이 높을수록 열 배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말단 부분이 길어지게 되죠.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로 수만년에 걸쳐 이동한 인류가 빙하기 혹한에 적응하는 과정서 눈이 작아지고 피부색이 변화했듯이 귀,코, 그리고 성기 등 몸에서 돌출된 부분이 작아졌다는 겁니다. 즉, 일본인들은 같은 아시아계 이지만 한국, 중국인들 보다 더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사이즈가 덜 줄어들었다는 해석입니다.
사실 사이즈가 작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학설상 극한 상황에 생존하는 과정서 얻어진 진화된 신체구조로 나름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률은 매우 낮겠지만 지구 온난화로 미래에 빙하기가 다시 찾아올 경우 사이즈에서 본 손해를 생존력에서 어느정도 벌충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세상사 무엇이든 잃는게 있으면 얻는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베르그만의 법칙과 알렌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학설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맞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이즈 차이에는 기후 이외에 유전자, 그리고 식습관과 비만도 등 다른 환경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학계에서 지금까지 제기된 가설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