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펑펑 쓰던 중국 유학생들 ‘날벼락’…“학비 낼 돈도 없어요” 무슨 일

by 민들레 posted Feb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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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나간 中유학생수 2019년 70만명 넘어
개혁·개방 이후 경제 발전으로 매년 급증
부동산·증시 폭락에 ‘반짝 부자들’ 위기 직면
공부 못 마치고 본국으로 ‘유턴’ 사례 늘어
전문직 보수 줄자 ‘해외유학 필요없다’ 인식도


 

2023년 대학 학사모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중국인 마이클 베이가 약 2년 전 자국을 떠나 스코틀랜드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가족은 중국 선전시에서 호텔과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 등 비용은 부모님이 지원해줬기에 베이는 물가가 비싼 스코틀랜드에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중국 경제에 경기침체와 부동산 가격 폭락 등 위기가 겹치면서 그의 아버지가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베이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유학생활에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는 식료품 배달부터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베이는 “이 도시에서 내가 일해보지 않은 중식당은 없을 것”이라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한때 중국 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중국 내 중산층 이상 가정 사이에서는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실제로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중국인 학생 수는 매년 증가했습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해외에 나가 있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7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2000년에만 해도 3만9000명에 그쳤던 중국인 해외 유학생 수가 약 20년 만에 18배 가까이 급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해외 유학 중국인 수는 늘었지만 이들 대다수는 중국 경제에 경기침체 등 위기가 닥치면서 치솟은 해외 학교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특히 경제 호황기에 ‘반짝 부자’가 되면서 해외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자녀 유학을 많이 보냈던 중국 중산층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에밀리 슝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유학생활을 영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에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님 사업이 휘청이면서 유학 비용을 대기 힘든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슝은 “물론 말레이시아보다는 영국에서 유학하는 것이 훨씬 낫겠지만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 운동 등으로 피폐해진 중국 경제를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이끌면서 중국도 전 세계에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방 초반 약 20년 동안 해외에 직접 나갈 수 있었던 학생 대다수는 능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거나 중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유한 가정 출신 등 극소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급속 발전으로 중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2년 1150달러(약 153만원)에서 2022년 1만2740달러(약 1700만원)로 크게 늘면서 더 많은 중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베이징 싱크탱크인 중국세계화센터(CCG)의 마벨 루 마오 사무총장은 “이 때의 중국 중산층 부모는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몇 개 팔면 쉽게 자녀들을 해외로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 5월 열린 미국 위스콘신대 졸업식 [AP = 연합뉴스]

 

CCG에 따르면 과거 중국인 유학생 10명 중 9명은 지난 10년간 장학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비로 생활할 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중산층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중국 부동산 붕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증시의 폭락은 중국 중산층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위기를 직감한 해외 기업들이 중국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고 중국 현지 기업들이 수만명의 일자리를 줄이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장기간 이어진 중국 경제 불황은 해외 유학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마저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지만 최근에는 ‘열악한 환경을 버텨내며 해외 학위를 억지로 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높은 보수를 보장했던 전문직 수요가 중국 내에서 줄고 있는 현실도 해외 학위의 필요성을 없애고 있습니다. 중국 온라인 채용플랫폼 자오핀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중국 직장인 약 3분의 1이 지난해 급여가 전년 대비 줄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해외 유학을 도중에 중단하는 중국인 수도 늘고 있습니다. 미 뉴욕 교육 컨설팅 기업 치어스유는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부터 중국인 유학생들의 경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밝혔습니다. 치어스유에서 상담을 받은 적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 중 10%는 경제 사정을 이유로 중단 등 유학 계획을 도중에 바꿨다고 응답했습니다. 중국인 유학생 슝은 “저도 유학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만약 부모님이 학비를 대주실 수 없다면 중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유학생들이 경제적 곤경에 취해도 중국 중산층이 부동산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대체재가 없는 현실이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반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수십년간의 급속 성장은 많은 중국 가정에 ‘부 축적’에 대한 환상을 안겨줬지만 진정한 부유층으로 거듭나기 위한 ‘재산 다변화’에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야센 황 미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는 “진정한 부자들은 의지할 곳이 많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필수품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은 중산층의 수준이 결정한다”고 전했습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