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자산 부풀리기’ 민사 소송… 트럼프, 항소했지만 보증금 내야
법원은 1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사기 등 혐의로 벌금 약 4700억원을 선고했다. 트럼프는 17일 필라델피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최대 스니커즈쇼인 ‘스니커콘(Sneaker Con)’에 참석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운동화 ‘트럼프 스니커즈’를 판매한다고 알렸다. 가격은 399달러(약 53만원)다./연합뉴스
“피고들은 죄책감과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아서 엔고론 판사)”
1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의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은행 대출을 더 받기 위해 트럼프그룹의 자산 가치를 부풀린 혐의를 인정한다며 3억5500만달러(약 4700억원)의 벌금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법원은 트럼프가 금융 사기로 얻은 이익에 대한 이자까지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실제 내야 할 돈은 4억50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아들 두 명에게도 같은 혐의로 각각 400만달러, 트럼프의 전 최고재무책임자에게는 1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재판 과정에서 트럼프와 수차례 충돌했던 엔고론 판사는 이날 92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트럼프 측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엔고론은 “피고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악은 보지 않고, 악은 듣지 않고, 악은 말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취한다”면서 일본의 ‘세 원숭이’ 격률을 인용하기도 했다.
앞서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2022년 9월 트럼프 측의 혐의에 대해 맨해튼 지법에 민사소송을 냈다. 트럼프 측이 사업을 위한 대출 과정에서 은행과 보험사에서 유리한 거래 조건을 얻기 위해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트럼프의 1·6 의회 난입 사태 선동과 조지아주 선거 결과 번복 시도 등 현재 진행 중인 형사소송 4건과는 별개의 소송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7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스니커스(운동화) 박람회에서 '트럼프 스니커스'를 든 채 발언하고 있다. 금색에 성조기 장식이 박힌 이 운동화는 '네버 서렌더(Never surrender·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하이톱(발목이 긴 운동화)'이란 이름으로 한 웹사이트를 통해 한 켤레당 399달러(약 53만원)에 판매됐다. /AP 연합뉴스
11월 대선 출마가 유력한 트럼프는 법원에서 연이어 거액의 벌금과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면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다. 트럼프가 소송과 관련해 내야 할 돈은 이날 판결을 포함해 최소 5억달러가 넘는다. 트럼프는 지난해 칼럼니스트 진 캐럴에 대한 성폭행과 명예훼손으로 500만달러의 손해배상 평결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추가 명예훼손으로 8330만달러 손해배상 평결을 받았다.
트럼프는 이날 금융 사기 판결과 관련해 ‘항소 전략’을 펴고 있다. 상급법원에서 쟁점을 다시 다퉈보고, 벌금액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 AP는 “고액 벌금 판결이 항소심에서 감액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항소를 하기 위해서는 향후 30일 이내에 납부할 돈을 마련하거나 보증금을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가 스스로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분석된다. 현지 언론에서는 트럼프의 현금 및 현금 등가물이 3억5000만달러 정도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보증 회사가 트럼프를 위해 보증을 서주면, 항소가 끝날 때까지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NYT는 “현재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보증 회사와 접촉 중”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극렬 지지층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는 막대한 법률 비용을 대신 마련하기 위한 펀드 모금을 시작했다.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은 17일 “모금 목표액은 트럼프의 벌금액인 3억5500만달러로 현재 400여 명의 지지자가 18만5000달러 이상 모금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