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달린건 사람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이것’은 절대 안먹는 이유

by 민들레 posted Feb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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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5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시장 모습. [연합뉴스 ]

 

“다리 4개 달린건 책상과 의자, 다리 2개 달린건 사람,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

중국은 프랑스와 함께 요리로 양대산맥을 이루는 음식 대국입니다. 드넓은 땅덩이 만큼 지역마다 특색있는 식문화 덕에 위와 같은 우스갯소리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죠.

특히 광둥성은 중국내에서도 “먹는 건 광둥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식재료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대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가 방중했을때 대접받은 것으로 알려진 제비집 요리도 그중 하나 입니다.

광둥성 광저우시에 있는 동물시장에선 코브라, 너구리, 여우, 고양이 등 식용으로 판매되는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더 신선하다는 인식때문에 과거엔 야생동물도 심심치 않게 거래됐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2002년 ‘사스’ 발원지로 지목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국에서도 절대 먹지 않으려 하는 동물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국인들이 상찬해 마지않는 팬더(자이언트 판다)입니다.
 

中 “정부수립후 팬더 밀렵범, 사형 벗어난 적 없어”

 

지난 2015년 중국 윈난성 판다 밀렵꾼들로부터 압수된 팬더 가죽. [신화=연합뉴스]

 

팬더의 중국어 명칭은 곰과 고양이를 닮았다 해서 ‘따슝마오’(大熊猫)지만, 실제로 이 명칭 대신 중국인들은 문자 그대로 국보, 즉 ‘궈바오’(國寶)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팬더는 1973년 80개국이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약속한 ‘워싱턴 협약(CITES)’ 으로 학술 및 연구를 제외한 상업용 목적으로의 수출입이 공식적으로 금지 됐습니다. 중국 당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지금까지 “살인범이 사형을 감면받는 경우는 있어도 팬더 밀렵범들 중 사형 운명에서 벗어난 예는 한번도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이 당시부터 팬더를 엄격히 보호했던 건 아닙니다. 중국이 팬더 밀렵을 사형 수준으로 엄벌한 건 1989년 전후 팬더를 ‘일급 중점 보호 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 사살, 매매를 전면 금지하는 등 CITES 이행을 위한 내부 체제를 마련했을때 부터입니다. 따라서 1990년 이전에는 중벌을 받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 지방관리들이 팬더를 밀렵했다 발각됐는데 고작 2년 복역후 풀려난 사례들이 회자되고 죠. 1988년에는 200명이 넘는 밀렵꾼이 체포됐고 150장에 달하는 팬더 모피가 압수됐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팬더 1마리를 밀렵하면 20명 이상의 농민이 1년을 먹고살만한 돈을 손에 쥘 수 있었기 때문에 밀렵 근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도 한 동안 팬더 고기, 모피 등이 암시장에 심심치 않게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더 단속이 강화되면서 팬더를 잡았다가는 무조건 중형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결과적으로 2016년 팬더의 보존 상태는 기존 ‘멸종 위기종’에서 ‘취약종’으로 한 단계 완화될 정도로 상황이 개선됐습니다. 즉, 아무리 특이한 야생동물 잡아먹기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팬더를 사냥했다간 무조건 중형, 자칫 사형에 처해질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팬더만은 먹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럼에도 비교적 최근인 2015년 윈난성에서 팬더를 사냥해 고기와 모피를 밀매한 일당 10명이 체포된 적도 있어 밀렵이 완전 근절됐다고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90여년 전엔 외부 사람들에게 팬더 사냥 허용하기도

 

1929년 중국에서 팬더를 사냥한 뒤 기념촬영중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와 커밋 루즈벨트. [사진=시카고 필드 박물관]

 

사실 90여년 전 팬더는 특이한 외모덕에 사냥붐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 사냥감 이었습니다. 1930년경 미국과 영국에서는 팬더 사냥이 큰 주목을 받았는데, 1929년 미국 켈리-루즈벨트 탐험대가 외부인들로서는 처음 중국 팬더를 사냥했던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가문의 아들 두명이 이끌던 이 탐험대는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지원으로 1928년부터 1929년에 걸쳐 버마(현 미얀마)에서 중국 윈난성, 쓰촨성으로 이어지는 탐험을 떠났습니다. 이들 형제가 중국을 탐험하려했던 목적이 바로 팬더 사냥이었습니다.

당시 탐험대와 중국 외교부 사이 서신 내용에 “팬더 사냥이 목적” 이라고 명시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생태 연구를 위한 여행” 신청에 중국 외교부는 “사냥을 통한 표본 채집”을 허가한다는 증서를 발급했습니다.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통일정부가 구성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인지 팬더에 대해 지금처럼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이때는 미국이 국민당 정부와의 관계 구축에 나서면서 양국 간 친분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했죠.

이때 장제스 정부는 쓰촨 성 일대를 관할하던 유력 군지도자들에게 루즈벨트 탐험대의 안전을 지켜줄 것을 통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탐험대에게 사실상 팬더 사냥을 허가해줬던 겁니다.
 

‘강건한 기독교 운동’과 맞물려 발생한 팬더 사냥 붐

 

1869년 5월 10일 유타 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 완공을 기념한사진. [사진=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루즈벨트 탐험대가 지나갔던 행로는 5000km에 달하는데다 대부분 산악지역으로 매우 험준했습니다. 이동수단도 도보에 기껏해야 조랑말이 전부였기에 정신 및 육체적으로 도전이 요구되는 강행군이었죠. 탐험 도중 열병 등으로 목숨을 잃는 대원도 나왔습니다.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오지에 들어가 팬더 사냥을 계획했던 이유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연관이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미국에서도 19세기 중반 대륙 횡단철도가 건설되면서 공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빠르게 편리해져가는 한편으로 일각에선 이전에 없던 위기의식이 생겨났습니다. 미국 주류 백인 남성 사회에서 지나친 문명화가 자신들 집단 전체의 활력을 잃게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된 것입니다.

도시 근로자들 사이 신경쇠약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급증했고, 백인 여성들의 출산율은 떨어지는 한편 아시아 등지에서의 이민은 늘었습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경제 불안과 직업 경쟁이 치열해졌고, 인종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주류인 백인의 소수화에 대한 불안감이 나타난 겁니다.
 

챗GPT가 19세기 ‘Muscular Christianity’를 형상화해 만든 이미지.

 

이같은 불안감과 결부돼 “기독교 남성이라면 건강하고 남자답게 보여야 한다”는 관념이 생겨났고, 여기서 신체 단련을 중시하는 ‘강건한 기독교 운동’(Muscular Christianity)이 전개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유행했던 것이 바로 ‘대형 동물 사냥’ 이었습니다. 사냥도 일종의 운동이기에 실제로 신체 단련에 도움이 됐는데, 열렬한 사냥 애호가 였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 운동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특히 기독교 문명 밖에 서식하는 대형 동물은 야만적인 미지의 땅을 개척했다는 증거로 내세울수 있는 일종의 트로피와 같았습니다. 당시 백인들의 눈에는 아프리카, 남미 이상으로 이색적인 중국내 오지를 들어가야 접할 수 있는 팬더는 그야말로 욕심나는 사냥감 이었습니다. 1930년 4월 20일자 뉴욕타임스(NYT)는 “모든 동물중 가장 희귀하다”며 박제된 팬더 사진을 소개하는 등 관련 소식은 당시 미국 신문지면을 가득 장식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 사회에서 높아진 팬더 사냥 열기는 영국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그 후 수년여에 걸쳐 중국에서 다수의 팬더들이 외부 사냥꾼들에 희생됐습니다. 팬더에게는 최대 수난의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죠.
 

임대료·유지비 수십억원인데도 인기...최근 ‘징벌적 팬더 외교’ 논란도

 

푸바오 사육사 토크 콘서트에서 기념 촬영하는 강철원 사육사(왼쪽)와 송영관 사육사.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용인 에버랜드에서 국내 첫 자연번식으로 태어나 화제가 됐던 팬더 ‘푸바오’가 4월초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워싱턴 협약’(CITES)으로 해외에서 태어난 모든 팬더는 짝짓기가 가능해지는 만 4세 이전에 원서식지인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중국측은 현재 기증 대신 장기 임대로만 팬더를 반출하고 있는데, 명목상 ‘팬더 보호 기금’인 임대료를 받습니다. 보통 15년 단위로 임대하고 임대료는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한국의 경우 한쌍에 연간 100만달러 (약 13억원)를 내고 있습니다. 대여중 새끼를 낳으면 40만 달러(약 5억원)를 추가로 내야 합니다. 여기에 팬더는 먹이, 사육 환경 등 필요한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유지비가 코끼리 포함 다른 동물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비싼 유지비 이상으로 높은 인기로 관람객들을 끌어모으는 경향이 있어 재정 여유가 있는 동물원들은 기꺼이 팬더 임대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반환되는 팬더들을 싣고 중국으로 출발하는 화물기. [연합뉴스]

 

비용 이외에 정치적 논란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팬더를 외교적 도구로 활용하려해 왔습니다. 상대국과의 친선을 위해 팬더를 대여해줬다가도, 상대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되찾아가는 식입니다.

소위 ‘팬더 외교’로 불리는 이 외교술에 대해 최근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분위기 입니다. 특히 서방 등과의 관계 악화에 빌려줬던 팬더를 속속 되찾아가면서 ‘징벌적 팬더 외교’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한때 10마리 이상 있었던 팬더는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측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서 내년에는 1마리도 안 남게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신장-위구르 인권문제 등을 희석시키는데 팬더의 이미지가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가간 우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팬더가 점점 더 외교적 분쟁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반영한 단면으로, 향후 팬더 외교의 폐막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