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심한 가해자, 피해자 입원 병원 찾아가 범행[사건속 오늘]
신변 보호 요청 무시한 경찰…질책받자 "할 수 있는 조치 다 해"
(YTN 뉴스 갈무리)
2014년 2월 27일.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듯 추위가 누그러지지 않던 겨울밤이었다. A 양(당시 16세)은 오후 9시 25분께 박모(당시 32세)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날 오후 6시쯤 A 양은 며칠째 계속되는 하복부 통증과 발열로 괴로워하다 전주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A 양과 아버지는 입원 수속을 밟고 병실로 올라갔다. 때마침 입원 소식을 들은 딸의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A 양 아버지는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집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 양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박 씨였다. 박 씨는 A 양에게 병원 로비로 내려오라고 지시했다. A 양이 내려오자 잠시 대화를 나누던 박 씨는 가지고 온 흉기를 꺼내 A 양의 목과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의료진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A 양을 급히 옮겨 긴급 수술을 진행했으나 과다 출혈로 끝내 사망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현장을 떠났던 박 씨는 범행 1시간 뒤 완산구의 한 아파트 19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 투신한 박 씨, 조직 폭력배 출신…폭행 등 범죄 전력 40회
A 양은 사건 발생 3주 전인 8일 지인으로부터 박 씨를 소개받은 후 그의 자택에서 동거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노래방, 유흥업소 등에 도우미를 제공하는 보도방 운영자였다. 더 놀라운 건 박 씨의 범죄 이력이다. 조직 폭력배 출신인 박 씨는 범죄 전력이 40회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알게 된 A 양이 자신과 거리를 두자, 박 씨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만남을 거부하는 A 양을 납치해 자기 집에 2주 동안 감금하고 몹쓸 짓을 저질렀다. A 양이 탈출해 집으로 돌아가자 더욱 심하게 괴롭혔다. A 양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자신을 만나달라며 요구하며 행패를 부렸다.
(E채널 '용감한 기자들' 갈무리)
사건 전날인 26일 A 양의 아버지는 "(딸이) 박 씨에게 시달리고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A 양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을 돕는 원스톱 지원센터 상담을 통해 박 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A 양은 박 씨를 신고한 지 3시간 뒤인 오전 5시 30분께 한 주점 앞에서 박 씨에게 또다시 납치됐다가 박 씨가 깊이 잠든 틈을 타 차에서 빠져나왔다. 당시에도 A 양은 경찰 신고 후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았고, 신고 다음 날 저녁에는 치료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박 씨는 A 양을 찾아다니다 A 양의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병원을 찾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A 양에게 신고를 취소하고 합의해달라고 협박하다가 A 양이 거부하자 칼을 꺼내 들어 목숨을 빼앗았다.
◇ 경찰, 피해자 보호 조치 미흡 지적에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사건 발생 전 A 양의 아버지는 경찰에 박 씨의 전과 사실을 알리며 여러 차례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경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 양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신고할 때부터 보호해달라고 했다. 무섭다, 두렵다고 하는데도 그놈은 조사하지도 않고 피해자들한테만 어떻게 됐냐고 묻고 잡을 생각을 안 했다"고 토로했다.
(YTN 뉴스 갈무리)
박 씨는 2013년 10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약 5개월 만에 A 양의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박 씨가 A 양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을 때에도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박 씨의 신원 확인이나 신병 확보도 하지 않고 내보냈다.
경찰은 사건 전날 A 양이 또다시 납치되자 뒤늦게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박 씨의 집과 그가 차를 맡긴 정비소에서 잠복근무를 했지만 병원에서 발생한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언론도 경찰의 대응을 질책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납치 감금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피해자를 모두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긴급한 사안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판단하는 거다. 우리 경찰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