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방위군이 멕시코 국경을 경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자들이 철조망을 넘어가려고 시도하는 모습
캐나다 정부가 멕시코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비자 입국 정책을 철회합니다. AP통신은 28일(이하 현지시간) 캐나다 정부가 멕시코 여행객의 난민 신청 폭증에 대한 대책으로 멕시코 국민에 허용해왔던 무비자 입국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새 정책은 29일 밤 11시 30분부터 적용됩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엔리크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ㅣ8년 만에 철수한 무비자 정책
캐나다는 2016년부터 멕시코 국민에게 무비자 방문을 허용하고, 입국 조건을 대폭 완화했습니다. 무역 동반자로서 관계를 다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전자 여행 허가가 나오는데, 5달러만 내면 됩니다. 입국이 쉬워지면서, 무비자로 입국한 뒤 난민 신청을 하는 멕시코 국민이 폭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이민?난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캐나다에 입국해 난민을 신청한 멕시코인은 2만 5,000명이 넘습니다. 현재 심사 대기 중인 멕시코발 난민 신청 적체 건수는 2만 8,000건 이상입니다.
이번 조치는 난민 수용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멕시코발 난민 신청의 주요 경유지인 퀘벡주는 최근 연방 정부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수아 르고 퀘벡주 총리는 지난주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 이후 난민 신청자의 유입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캐나다 국경에서 망명 신청한 멕시코인 증가 추이 (월스트리트저널)
ㅣ"캐나다를 '뒷문'으로 악용"
중남미 출신 불법 이민 문제는 캐나다의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캐나다가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데 중간 경로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일찌감치 캐나다 정부에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라고 압박해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미 행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멕시코 국민이 캐나다를 '뒷문(back door)'으로 악용하고 있다"면서 이에 미국이 캐나다에 불만을 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니키 헤일리 미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는 지난해 12월 뉴햄프셔주를 방문해 "미국 남부 국경만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캐나다와 접한 북부 국경이 멕시코 이민 유입 우회경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미 국경순찰대에 따르면 미 북부 국경을 넘다가 붙잡힌 불법 이민자는 지난해에만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배 증가했습니다.
미국이 직면한 중요 문제에 대한 미국 국민의 답변 (갤럽)
ㅣ'이민자 나라'에서 '반이민' 외치는 대선 후보들
미국이 캐나다까지 압박해가며 불법 이민을 막는 건, 실제로 그 수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만 32만 2,000명이 미국으로 불법 입국했는데, 월간 단위로는 역대 최대치입니다.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갤럽이 지난 1~20일 조사해 27일에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민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28%로 가장 많았습니다. 갤럽 조사에서 이민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힌 건 2019년 7월 이후 처음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자연스레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 문제는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간의 국정 기조를 바꿔 이민정책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가 일주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5,000명을 초과하거나 일일 8,500명을 넘으면 국경을 폐쇄하는 방안까지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 센 수위의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거나 "국경은 우리를 파괴하는 대량살상무기가 됐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부른 바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남부 국경장벽을 강화하고, 불법 이주민을 추방하는 등 고강도의 반 이민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울 전망입니다.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