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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갈림길에 선 홍콩① 통제-손실-탈출의 악순환

 

[편집자주] 빠르게 중국화 하는 홍콩의 모습은 자유가 사라진 시장경제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가 블록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산업과 금융 양측면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할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아시아의 용' 홍콩은 왜 '아시아의 금융허브 유적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됐을까. 홍콩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홍콩 빅토리아 항구 인근 산책로를 걷는 시민들. 2023.06.28. /로이터=뉴스1

 

#. 홍콩특별행정구 재무장관 폴 찬(Paul Chan)은 지난 연말 현지 언론에 "2023년 홍콩 재정적자가 1000억홍콩달러(약 17조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전망은 더 어둡다. KPMG는 홍콩 재정적자를 1300억홍콩달러(약 22조원)로 추산했다. 2022년 홍콩 총 세수가 3602억홍콩달러(약 61.5조원)였음을 감안하면 홍콩 적자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된다.

중국 언론 차이신은 홍콩의 세수에 토지 판매·임대수익을 더한 총 국가재정 보유액이 올 3월 기준 7050억홍콩달러(약 120조원)으로 2020년 3월 1조1000억홍콩달러(약 188조원) 대비 36% 증발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시점에 비해서도 16%나 줄어든 규모다. 자유도시이자 문화와 경제의 도시,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이제는 '가난한 홍콩'이 된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가난한 홍콩…부동산 못 팔자 세제 개편 카드까지'금융 허브'라는 홍콩의 타이틀은 낮은 세율과 간단한 과세 구조 덕분에 붙여졌다. 홍콩의 조세구조는 소득세(이윤세)와 급여세, 인지세 세 항목이 전체 세수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단출하다. 그나마도 특례가 많다. 2억4000만홍콩달러(약 410억원) 이상을 홍콩에 직접투자하면 소득세가 아예 면제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법인세 최고 세율은 10%대 중반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창궐 당시 한 홍콩인 모녀가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그래도 홍콩의 재정은 윤택했다. 기업들은 홍콩에 터를 잡고 홍콩 증시에 상륙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들이 홍콩 정부로부터 토지를 비싼 값에 매입·임대하면서 홍콩의 곳간은 늘 그득 들어찼다. 중국 정부 규제의 그림자가 홍콩을 덮치기 이전 얘기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고 외국인 처벌이 시작되면서 홍콩은 자유와 가장 거리가 먼 도시가 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탈출하고 증시라는 엔진도 꺼져간다.

재정의 근간인 부동산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홍콩 부동산 가격은 지난 1월까지 9개월 연속 하락했다. 수요가 끊기자 홍콩개발국은 올 1분기 토지 판매를 하지 않기로 했다. 홍콩 부동산 판매가 중단된 건 13년 만에 처음이다. 현지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부동산 대출잔액이 평가액을 넘어선 사건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대책이 뒤늦게 나오고 있지만 부실 도화선엔 이미 불이 붙었다.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회의 라이퉁궈 의원은 최근 현지언론에 "사치품에 대해 초사치세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소비세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등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 찬 장관이 "추가 과세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결국 세제개편은 현실이 됐다. 홍콩은 지난 28일 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15%에서 16%로 1%포인트 인상했다. 무려 20년 만의 소득세 인상이다.

세금을 늘려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건 일면 간단해 보이지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자유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홍콩의 경제엔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홍콩의 영광을 조금씩 뺏어가고 있는 싱가포르는 오히려 더 퍼줄 준비를 마쳤다. 올해 예산 중 총 13억 싱가포르달러를 기업 지원에 책정했는데 상황에 따라 법인세를 무려 50% 환급하기로 했다.

탈출 또 탈출…"홍콩에 남은 건 노인과 본토인뿐"

 

홍콩 당국이 2014년 12월 11일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 지역의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며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이날은 홍콩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발한 지 75일째 되는 날이다 /로이터=뉴스1

 

통제와 이에 따른 손실 다음은 탈출이다. 지난 2021년 기준 홍콩의 해외 금융인력 취업비자 수는 2019년 대비 무려 50%나 줄었다. 홍콩에 터를 잡고 살던 연구인력과 교육인력 등 고급인력들도 연이어 홍콩을 등지고 있다. 2022~23학년도 홍콩 내 8대 공립대에서 학교를 떠난 교수 등 연구인력 수는 380명으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이직률(7.6%)을 기록했다.

전문직을 포함한 홍콩 토박이들의 이탈도 줄을 잇는다. 지난해 9~11월 홍콩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홍콩 주민 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민의 38%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홍콩을 떠나겠다"고 답했다. 2022년 9월 실시한 조사에선 같은 질문에 29%가 같은 답을 했었다. 실제 홍콩 인구는 2019년 748만여명에서 2020년 747만여명으로 줄었고, 2021년엔 741만여명으로 다시 줄었다.

지난해부터는 인구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본토인 이주 정책 탓이다. 홍콩 토박이와 외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본토인이 채운다. 남은 토박이들은 대부분 고령자다. 2022년 말 기준 65세 이상 홍콩인은 약 8만8000여명으로 5년 전 7만9100명에 비해 11% 늘었다. 경제활동 인구는 빠져나가고 빈자리는 고령자들과 본토 출신 중국인들이 메우고 있다는 의미다.

한 글로벌 IB 관계자는 "머지 않은 시점에 홍콩엔 본토인과 노인들만 남을 거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있다"며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해 다시 전향적인 자치를 인정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만큼 홍콩 상황이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보다 극단적인 전망도 있다. 예일대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교수는 지난 1월 FT(파이낸셜타임스)에 게재한 '문제적' 칼럼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중국 경제의 부진, 미중 갈등 등 세 가지 요인에 힘입어 홍콩의 경제는 몰락하고 있다"며 "인정하기 싫지만 홍콩은 이제 끝났다(Hong Kong is now over)"고 지적했다. 이 칼럼은 이후 중화권 언론에서 반박 칼럼이 이어지는 등 논란의 불을 붙였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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