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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지배하고 있지만, 그나마 한국의 젊은 남녀들은 일본의 같은 세대보다는 연애에 적극적인 편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험한 세태 속에서도 열심히 소개팅을 하고, 누군가에게 끈질기게 소개팅을 권하고, 용감하게 연애 전선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인만추’가 자리 잡은 한국의 연애 사정

한국에서 연애 중이거나 혹은 결혼에 골인한 커플들에게 어떻게 서로 사귀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꽤 높은 확률로 ‘소개팅에서 만났다’는 답을 듣는다. 소개팅이라면 교제를 전제로 서로 모르는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 달리 말하자면 한국식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를 말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소개팅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인상착의로 상대를 찾아내는 말 그대로 ‘블라인드(눈을 가린)’ 데이트였지만, 지금은 주선자가 서로 채팅 앱 아이디를 알려주어 다리를 놓아주는 방식이 대세라고 한다. 소개팅 남녀가 만나기 전에 미리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직접 데이트를 계획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사진을 교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니, 예전처럼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스릴은 없겠다 싶다.

요즘 젊은이들의 교제 취향을 일컫는, ‘자만추’ 혹은 ‘인만추’라는 말이 있다. 자만추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의 줄임말이다. 학교나 직장, 동호회 등 일상생활 속에서 호감을 느낀 상대와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반면, 인만추는 ‘인위적인 만남을 추구한다’의 줄임말이다. 미팅, 소개팅, 데이팅 앱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연애의 기회를 모색한다는 뜻이다. 인위적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연애에 좀더 진지하게 임하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친구나 지인에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관심이 없다는 당사자에게 끈질기게 소개팅을 권유하는 열혈 주선자도 있고, 커플 성사율이 높아 소개 의뢰를 자주 받는 소개팅 주선의 ‘고수’도 있다. 한국의 연애 문화는 역시 인만추 중심인가 싶다.

◇ 일본은 ‘자만추’ 지향, 난도가 높아 포기하는 경향도

한편, 일본에서 친구나 지인에게 “연애를 하고 싶으니 좋은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면 상대방이 당황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콕 찍어서 그 사람과의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겠지만, 교제를 전제로 블라인드 데이트를 주선하는 일은 일본에서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팅과 유사한 형태의 그룹 블라인드 데이트는 일본에도 있다. 우리말로는 ‘합동 술자리’ 정도로 번역되는 ‘고콘 (合コン)’이라는 모임인데, 싱글인 미혼남녀가 술을 곁들여 친목을 위한 회식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호주머니 사정이 빡빡한 대학생들보다는 어느 정도 술값, 밥값을 지출할 여유가 있는 젊은 직장인들의 사교 문화다. 고콘에서의 만남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일대일 만남이 아닌 만큼 여러 참가자들 속에서 매력을 발산하고 상대방의 주목을 끄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지 고콘에서 만나서 가볍게 한두 번 데이트했다는 남녀는 보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연애로 발전한 사례는 못 보았다.

사실 내 주변의 일본 지인들은 100% 자만추다. 학교 선후배로 알게 되어 결혼에 골인한 부부, 직장 일로 알게 된 지인과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 함께 동호회 이벤트를 준비하다가 사랑에 빠진 국제 커플 등 상황은 다양하지만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물론 친구, 지인, 제자 등 지극히 개인적 인맥 속에서 취재한 사례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 사회의 일반적 연애 사정이라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개팅 같은 관행이 없는 일본에서는, 진지한 연애는 대체로 자만추로 성사되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겠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인만추의 관행이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결혼을 목표로 교제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을 ‘결혼 활동’이라고 하는데, 결혼의 ‘혼(婚, 일본어로는 ‘콘’)’과 활동의 ‘활(活, 일본어로는 ‘카츠’)’을 붙여 ‘콘카츠(婚活)’라고 흔히 부른다. 취업활동—예컨대, 자격증을 따거나 입사시험 준비를 하는 등—처럼, 결혼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교제 상대를 찾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는 뜻이다. 데이트 상대를 매치해주는 앱을 활용해 블라인드 데이트에 나서거나, 보통 ‘콘카츠 파티’라고 하는 남녀 소개 모임에 참가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결혼상담소’(한국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상대를 소개받는 경우도 꽤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나 집안 어르신 등이 앞장서서 중매에 나서는, 맞선과 유사한 ‘오미아이(お見合い)’도 있다. 하지만 콘카츠의 대전제는 연애가 아니라 결혼이다.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누군가와 연애는 하고 싶은 마음으로 콘카츠 시장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절실하지 않으나 외로운 싱글들에게 남겨진 솔루션은 자만추뿐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선후배나 직장 동료 등과 친밀해질 수 있는 ‘플러팅’ 기술을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 연심을 품은 상대와 연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백’이라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길에서 한눈에 반한 상대에게 대뜸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도 난도가 상당히 높다. 일본에서 연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초식남(연애에 소극적인 남성)’이나 ‘건어물녀(연애 세포가 건어물처럼 바싹 마른 여성)’가 많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난도는 높지만 성공 확률은 낮은 연애 ‘사업’보다는, 개인적인 취미나 소소한 행복을 혼자 추구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선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연애하는 젊은이여,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라

연애는 남다른 애정을 쏟고 싶은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매우 특별한 사회 관계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만성병을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건강한 연애만큼 좋은 처방이 있겠는가 싶다. 한편으로는 애정과 신뢰에서 오는 행복함을 선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을 통해 인간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연애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사적인 차원의 일인 만큼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현대인의 행복지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는 과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권장’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자면 한국의 소개팅은 외로운 사람들이 연애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나서 돕는, 꽤 효과적인 사회 장치다. 당사자의 취향과 성격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두 팔 걷고 나서 어울리는 상대를 주선한다. 친밀한 인적 네트워크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만큼, 결혼정보회사보다 좋은 사람을 소개받을 확률도 높다. 만약 커플이 성사된다면 주선자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니, 이래저래 ‘윈윈’ 모델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연애가 젊은이들만의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출생률 저하와 인구 감소 등의 문제를 직면한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으로 젊은 세대가 연애에 소극적이고 결과적으로 비혼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를 동시에 바라보는 입장에서, 한국의 젊은 남녀들은 그래도 연애에 적극적인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험한 세태 속에서도 열심히 소개팅을 하고, 누군가에게 끈질기게 소개팅을 권하고, 용감하게 연애 전선에 나서고 있다. 그들에게 이런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젊은이들이여,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라”는 꼰대의 설교는 무시해도 좋다. 그렇게 열심히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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