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란 계시 기리며 한 달간 낮동안 금식·금욕하는 성스러운 의식
하마스, 라마단 기간 알아크사 집결 촉구…“순교자들 기릴 것”
지난 10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카라치의 한 시장에서 한 상인이 이슬람교도들의 성월인 라마단을 앞두고 길가에서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EPA]
이슬람의 금식성월 라마단이 11일 이슬람권 대부분에서 시작됐다.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날 저녁 메카에서 초승달이 관측됐다면서 11일이 이슬람력(히즈라력)의 9번째 달, 즉 라마단의 첫날이라고 밝혔다. 곧이어 시리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등도 같은 날 금식성월이 시작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니파 이슬람권은 보통 종주국 사우디의 공식 발표를 기준으로 라마단을 지킨다. 이란을 위시한 시아파는 보통 수니파보다 하루 늦게 라마단이 시작한다. 이번에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오는 12일부터가 라마단이라고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아시아 국가도 10일 저녁 초승달 관측에 실패해 12일이 라마단의 첫날이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가 경전 쿠란을 계시받은 일을 기리는 신성한 달로 여겨진다. 29일 안팎인 라마단엔 일출부터 일몰 시까지 음식은 물론 물도 입에 대지 않는다. 흡연과 성관계뿐 아니라 껌 씹기까지 자제하는 금욕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 5번의 기도를 여느 때보다 엄격히 지킨다. 쿠란 읽기와 자선, 선행도 더욱 힘쓴다.
이 기간 관광, 사업차 이슬람권을 방문한다면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외부에서 식음을 삼가야 한다. 식당 역시 대부분 주간에 한 달간 문을 닫거나 검은 커튼으로 출입문과 창문을 가리고 샌드위치와 같은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만 제한적으로 영업한다.
대신 해가 지면 가족과 지인, 어려운 이웃 등을 초청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이 같이 금식을 깨는 식사를 이프타르라고 한다. 이프타르가 끝나면 심야까지 외출하기도 한다. 기업과 부유한 개인이 라마단 텐트를 거리에 세워 이프타르를 기부하기도 한다.
부국이 많은 걸프 지역에서는 ‘라마단 특수’를 노려 고급 호텔에서 고가의 이프타르 패키지를 내놓고, 쇼핑몰에선 라마단에 맞춘 대대적인 특별 세일을 시작한다. 이 때문에 금욕과 절제의 기간인 라마단이 상업화돼 종교적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무더운 달’을 뜻하지만, 이슬람력이 음력인 만큼 그레고리력으로 치면 매년 약 열흘씩 당겨져 겨울에 맞이할 수도 있다. 낮이 짧은 겨울철 라마단엔 금식 시간 역시 짧지만, 여름철이라면 중동에선 금식 시간이 하루 중 16시간 이상으로 길어진다.
한 달간의 금식이 종료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약 사흘간 ‘이드 알피트르’ 휴일을 보낸다.
올해 라마단은 축제와 감사가 아닌 전쟁과 긴장 속에 시작됐다. 5개월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는 결국 휴전 재개 없이 라마단을 맞게 됐다.
그러나 라마단이 자칫 확전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신들은 통상 라마단 기간 거리 곳곳에 내걸리던 축제 장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 전했다.
동예루살렘 지역사회 지도자 아마르 시데르는 “올해 우리 아이들과 장로들 그리고 순교자의 피를 기리기 위해 구도심을 장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고조되는 곳은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이다. 하마스는 이날 성명에서 라마단 기간 팔레스타인 안팎의 모든 전선에서의 대결과 시위, 알아크사를 향한 집결을 촉구했다. 이에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회의를 열고 라마단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이스라엘은 성지 알아크사 사원 주변 골목에 수천 명의 경찰을 배치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약 14만㎡ 크기의 성지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모두가 성스럽게 여기는 곳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면서 내건 작전명이 ‘알아크사의 홍수’였다.
무슬림은 라마단에 성소 알아크사 사원에서 기도하는 일을 매우 성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이곳에 대규모로 모일 가능성이 큰 만큼 신앙적으로 고양된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군경과 유혈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특히 무함마드가 쿠란을 계시받은 ‘권능의 밤’ 기간인 라마단 마지막 열흘에 철야 기도를 위해 알아크사에 오려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더 많아지게 되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가자지구 주민들은 연중 가장 축복해야 할 라마단을 전쟁의 공포와 기아 속에 보내야 할 처지다.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