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로 하우스’ 마엔차의 역발상
지난 8일 오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인구 2928명의 작은 마을 마엔차(Maenza)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일행이 방문했다. 마엔차는 기차역에서 차로 40분, 관광객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해발 358m 산기슭 마을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산골 마엔차(Maenza) 전경. 마엔차시(市)는 늘어나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유로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전날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이탈리아 공공 행정 포럼에 참석한 이 장관이 이 시골 마을을 찾은 이유는 ‘1유로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클라우디오 스페르두티(Claudio Sperduti) 마엔차 시장은 마을의 한 폐가를 소개하며 “이 집이 단돈 1유로에 이탈리아의 한 건축가에게 팔렸다. 건축가가 리모델링해 전망 좋은 2층 집으로 바꿔 살 계획”이라며 “우리 시(市)엔 이런 1유로 빈집 매물이 벌써 15건이나 나왔다. 10년만 지나면 황폐해진 마을이 몰라보게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1유로 프로젝트’는 마을의 폐가를 정비해 줄 사람을 찾아 지자체가 부동산 중개 역할을 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처치 곤란한 빈집을 팔고 싶은 주인과, 싼 가격에 시골 주택을 사고 싶은 사람을 맺어 주는 것이다. 2004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가 추진 중이다.
조건은 간단하다. 버려진 집을 자기 돈으로 리모델링만 하면 1유로에 살 수 있다. 계약 때 담보로 5000유로(약 720만원)를 내야 하지만 3년 안에 리모델링을 마치면 보증금은 되돌려받는다. 1유로 빈집은 경쟁률 100대1을 보일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매입하는 사람만 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집을 파는 사람은 빈집 때문에 내는 다주택자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달리 실거주 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집에 대해 재산세를 평균 1% 이상 부과하는데, 이 때문에 도시로 이주한 뒤 골칫덩이 고향집을 처분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날 이상민 장관은 “우리나라도 이탈리아처럼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남긴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탈리아의 ‘1유로 주택’ 사례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와 다른 방식으로 빈집 재생 사업을 해 왔다. 지자체가 집주인에게 빈집을 빌려 개조한 뒤, 귀농·귀촌인들에게 빌려 주는 방식이다. 전남 강진군과 해남군, 경남 남해군 등 일부 지자체는 빈집을 정비하고 임대해 도시인 유입을 유도했지만 사업 규모는 크지 않다.
행안부는 이런 지자체 사업에 올해 5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전국 13만2000채 정도로 추산되는 빈집 가운데 46%(6만1000채)가 인구 감소 지역에 있다.
이제 행안부는 빈집 임대를 넘어 매매를 유도하는 쪽으로도 방향을 잡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인구 감소 지역에 있는 주택을 사면 세금 부담을 확 줄여준다는 것이다. 1주택자가 인구 감소 지역의 주택 1채를 더 살 경우, 가격·규모와 상관없이 기존 주택에 대한 재산세율 인하(-0.05%포인트) 특례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에서 ‘1가구 1주택’ 세제 혜택을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매매가 안 되는 빈집은 철거를 유도하기 위해 지방세법도 개정했다. 빈집을 철거하면 그 자리에 남은 토지에 대한 재산세를 내야 하는데, 재산세가 주택세보다 비싸 빈집을 처분하지 않고 놔두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부터 빈집 철거로 생긴 토지에 대한 주택세액 적용 기간을 종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정부 관계자는 “종전 대책을 뛰어넘는 방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