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8일 모스크바 선거운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오늘 특히 우리 전사들에게 감사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7일 밤(현지시각) 대선 압승이 확정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감사 인사부터 챙겼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선거 압승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확인받았다고 내세우며 전쟁 규모를 키워갈 것으로 보이며, 우크라이나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 군대가 말 그대로 적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대선 기간 국경지대 등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군 드론 공격 등과 관련해선 “우리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현재 우크라이나 정권의 영토에 특정 완충지대(sanitary zone)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시선도 최근 우크라이나가 수세라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달 18일 동부 전선의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발표한 뒤, 동부 및 남부 전선에서도 우세한 화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고 있다. 토니 라다크 영국군 합참의장은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군은 일러도 늦여름, 가장 가능성이 크기로는 내년까지는 새로운 반격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후 비관론은 몇 걸음 더 나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미국 당국자들과 회담 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는 이번 봄과 여름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해, 여름 전 서방의 획기적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보렐 대표를 수행한 유럽연합의 한 관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결과 없는 게임은 없다”며 “몇달 안에 우크라이나는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황은 2022년 11월초 러시아가 점령지인 남부와 동부에서 3중 방어선을 구축하고 굳히기에 들어가면서부터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조짐이 나타났다. 러시아는 당시 점령지에서 방어전으로 전환하고 ‘소모전 전략’으로 들어갔다. 병력과 무기에서 우세인 러시아가 열세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방어전을 펼친다는 것은 상대의 전력을 더욱 고갈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러시아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6월초부터 서방의 지원으로 반격공세를 펼쳤으나, 별다른 전선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포탄 등 무기 부족을 드러내며 반전을 끌어내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의 5선 확정과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을 종합해보면, 향후 전황이 러시아 쪽으로 더욱 기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반격공세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1%도 탈환하지 못했고, 새해 들어서는 아우디이우카 함락을 계기로 동부 및 남부 전선에서 퇴각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동북부에서는 쿠퍈스크 방향으로, 동부에서는 리만 및 아우디이우카에서, 남부에서는 로보티네 쪽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참호를 파고 러시아 공세를 막는 데 전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짚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아우디이우카나 바흐무트 같은 군사 요충지가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러시아의 진공을 막을 거점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병력과 무기에서 열세를 넘어서 심각한 부족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연 300만발의 포탄을 생산하는 반면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포탄은 연간 120만발에 불과하다고 시엔엔(CNN)이 지난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고위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하루에 1만발의 포탄을 사용하는데, 우크라이나는 2천발 남짓이다. 미군은 오는 2025년말까지 월 10만발로 포탄 생산량을 늘리려 하나,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서방이 오는 7월 초부터 F-16 전투기를 배치한다 해도 전세를 뒤집기 어렵다고 본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반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해 말 러시아는 전쟁 전보다 탄약은 17.5배, 드론은 17배, 탱크는 5배나 많이 생산한다고 주장했다. 핀란드 중앙은행도 러시아에서 군사 관련 광학 제품과 조립금속 등이 두 배나 늘었다고 인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부족한 병력 보충 쪽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병역법을 개정해 27살 이상만 징집 가능한 규정을 25살로 낮춘다. 평균 40살대인 전선의 현역병 나이를 낮추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되면 현재 30만명인 병력 수준이 50만명으로 증가할 방침이다. 하지만 가용 인적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해 현재 병력 규모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5선 확정 뒤 러시아가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서방은 내다보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가 추가 동원령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22년 9월께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원령을 내려 30만명을 모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징집 상한 연령을 27살에서 30살로 올려, 징병 가능 인원을 늘렸다. 러시아 당국은 추가 동원령을 부인하고 있으나 러시아 내부의 불안은 잦아들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지막 변수는 최근 들어 잦아지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및 점령지 공격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대선 직전인 지난 12일 모스크바 등 대도시 인근에 드론 공습을 가하는 한편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정유시설 등을 공격해 피해를 입혔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장은 지난 11일 미국이 직면한 세계적 위협에 대한 공개 평가회에서 “추가적인 지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2025년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라며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깊숙이 침투하고, 러시아 북해함대도 공격해 러시아에 대가를 계속 치르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6개월 동안 러시아 전함 6개를 격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번스 국장은 “2024년에 추가 지원이 없다면, 더 많은 아우디이우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