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보다 더 나쁜 일"…12명 사무실서 연 30억 챙긴 '한국사장'

by 민들레 posted Mar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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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다시 울리는 그놈목소리①]

중국서 조직 운영한 김인구씨(가명) 인터뷰

 

[편집자주] 한동안 감소 추세였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달 피해액이 500억원을 돌파하고 1인당 피해액은 3000만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서민 지원용 금융 상품까지 악용하는 등 신종 기법이 활개를 친다.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와 진화하는 범죄 행태를 살펴본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쇼박스


"저는 살인보다 더 나쁜 일을 했습니다."

김인구씨(33·가명)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총책이었다. 충북에 살던 그는 옆동네 형에게 '중국에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2015년 봄 중국 옌지시로 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갔다. 2019년 여름 한국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직원' 12명을 둔 보이스피싱 '콜센터' 사무실 사장님이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현재 자영업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털어놨다.

'韓中 협업'…12명 일하는 '사무실'서 年 30억원씩 챙겨

 

보이스피싱 조직도_/그래픽=김다나


중국 옌지에서 김씨는 '한국사장'으로 불렸다. 그는 '중국사장'과 동업하며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했다. 중국의 피싱 조직은 대다수가 한국사장과 중국사장이 동업하는 구조다. 한국사장은 한국인 직원을 모집하고 '콜센터' 운영을 총괄한다. 콜센터 직원은 금융기관 직원인 척 한국에 전화해 피해자를 속인다. 중국사장은 현지 인맥을 동원해 범죄에 필요한 대포폰, 대포통장, 환전책,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 등을 구해다 한국사장에게 넘겨준다.
 

보이스피싱 조직 역할별 업무/그래픽=김다나


한국사장은 수익을 분배하고 직원을 충원하는 등 사무실 운영을 맡는다. 김씨는 사무실 2곳을 운영하며 직원 12명을 고용했다. 중국사장이 고용한 사람들이 승합차를 이용해 직원숙소에서 사무실까지 직원을 실어 날랐다. 한국과 중국의 시차가 1시간인점을 감안해 은행 업무 시간인 (중국 시간) 오전7시에서부터 오후 3시까지 사무실을 운영했다.

김씨는 중국사장을 통해 대포통장을 제공하는 '장집'과 대포폰을 제공하는 '전화집' 등과 연락했다. 검찰 등을 사칭한 직원은 피해자에게 계좌번호를 제공하며 입금을 유도한다. 계좌번호는 장집이 제공한 대포통장을 활용한다. 현금 수거책을 만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장집에서는 인터넷에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올려 1~3차 수거책을 구한다. 3차 수거책이 한국 환전소에 수거한 피해금을 가져다 주면 중국환전소에선 이돈을 중국사장에게 전달한다.
 

김씨 보이스피싱 조직 수익·지출 구조/그래픽=김다나

 

항목별 지출 내역/그래픽=김다나


김씨 조직은 연간 30억원의 범죄피해금을 챙겼다. 중국사장은 매주 수익금을 콜센터 사무실로 가지고 와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스팸문자비 등 '공동경비'를 제외하고 김씨와 5대5로 나눴다.

직원들이 한국에 갔다 오고 싶다고 하면 왕복 항공도 지급했다. 주말엔 사무실별로 '회식'을 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한화 500만원을 썼다고 한다.

모든 콜센터 직원이 평범한 직장인처럼 자유롭게 지냈던 건 아니다. 어떤 조직은 관리책을 맡은 조직폭력배가 여성직원을 성폭행하거나 경쟁 사무실 직원을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 칭다오의 한 조직에선 관리책이 일을 그만두겠다는 한국인 직원을 둔기로 폭행해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상해를 입힌적도 있었다.

김씨는 "저희는 그만두고 한국에 가겠다는 직원들은 보내줬다"며 "많은 직원이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연락했기 때문에 직원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도 원할 때마다 한국을 오갔다.

김씨는 직원들에겐 '기본급' 없이 '성공보수'만 줬다. 범죄 피해금의 20%가 직원 몫이었다. 직원들이 가져간 돈은 월평균 500만원 수준. 가장 많이 버는 직원은 1달에 2000만원 이상 받기도 했다. 김씨는 "이 일은 주변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 직원을 늘리는 게 대부분"이라며 "어떤 조직은 교도소에서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이 한 팀을 꾸려서 70대 노인이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매년 5억원 이상을 벌었다. 수익은 대다수가 현금화해 방에 쌓아뒀다. 환전소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나중엔 머리가 커서 직접 중국사장과 연락해 자신이 사무실을 차리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중국사장도 수익분배를 유리하게 하려고 이런 한국인들을 고용해 새롭게 사무실을 차린다"고 했다.
 

영화 '시민 덕희' 스틸컷.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쇼박스


교민들 사이에선 '젊은 사업가'…중국 공안엔 매달 1000만원 뇌물김씨는 "중국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지 공안과 관계유지"라며 "고위직 공안에게 직접 뇌물을 줄 수 있는 줄을 댈 수 있어야 한다"고했다.

중국사장은 공안의 단속을 사전에 알려줬다. 한국에서 수사를 위해 경찰이 중국 현지에 도착하면 경찰관 이름을 포함한 명단까지 받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 조직이 검거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본보기용으로 잡힌 것으로 생각했다"며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검거될 거라는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사장의 '꽌시(인맥)'를 따라 김씨는 사무실을 연길, 베이징, 청도로 옮겨가며 운영했다. 중국사장이 해당 지역 공안국 고위 담당자와 연줄이 닿아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중국사장을 통해 해당 지역 고위직 공안 뇌물 비용으로 매달 1000만원을 썼다. 지역 공안들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원할 때마다 김씨를 불러 술값을 계산하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청도에선 500평 규모의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면서 교민들과 교류했다. 교민들은 그를 '젊은 사업가'로 생각했다. 한국과 중국 사장들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많은 돈을 쓰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음식점 등을 차려 운영한다.

김씨는 2019년 죄책감이 들어 사무실을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경찰은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한 후 추적 끝에 한국에서 있는 김씨를 2019년 여름 체포했다.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과거 범죄를 뉘우치며 "지금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라면 당신이 사기친 피해자에게 며칠 후에 한 번 전화를 해봐라. 그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