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6개월에 접어드는 가운데, 개전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 및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 조기 총선 실시 등을 요구했다.
31일(이하 현지시각) <AP> 통신은 "수만 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예루살렘 중심부에 모여 10월 전쟁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며 의회 건물인 크네세트 주변에서 약 10만 명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주최 측은 시위를 며칠 동안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에는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가족들이 참여해 네타냐후 총리 및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스라엘 인질들은 지난해 11월 약 일주일 간 휴전 당시 일부 풀려난 것을 제외하고 여전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억류된 상황이다. 통신은 "인질의 가족들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네타냐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촌은 살해당하고 아내는 인질로 억류돼 있다 풀려난 보아즈 아질리 씨는 이날 시위에 참석해 "인질들이 협상을 진전시키느라 바쁘기 때문에 어떤 인질도 이 정부와 함께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인질 협상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네타냐후(총리)는 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통신은 "그동안 많은 인질 가족들은 지도부에 적대감을 주고 인질들의 곤경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네타냐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자제해왔다"며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고 이날 반정부 시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위대는 사법부 무력화를 골자로 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정비' 계획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정치적 분열이 커졌다는 점,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과 관계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점 등을 비난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 개인에 대한 부패 혐의도 이스라엘 내부의 분노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고 신학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 신학생들에 대한 문제도 네타냐후에 대한 비판을 키우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금 지급을 4월 1일 자로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시한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 면제돼왔던 이들에 대해 병역 의무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샤스당, 토라유대주의연합(UTJ) 등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과 손을 잡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아들인 야이르 네타냐후가 전쟁 시작 전에 출국해 현재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머물고 있다는 점도 시위대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신은 이러한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 초점을 맞춰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비평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이스라엘 내부의 불만이 커지면서 실제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네타냐후 총리와 연합 세력의 재집권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신은 이들이 경쟁자들에 비해 뒤쳐지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 3월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개전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스트를 중심으로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2026년 전까지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탈장 수술을 받기 전 진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인질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면서도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선거를 다시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6~8개월 동안 마비시키고 인질 석방 협상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피난민 100만 명 이상이 밀집해 있는 라파에 대한 공격 의지를 재확인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라파에 들어가지 않고 승리는 없다"며 미국의 압력이 자신을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중심부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 앞 마당을 공격해 최소 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WHO는 지난 3월 18일 이스라엘이 알 시파 병원을 포위한 상황에서 공격을 실시하면서 지금까지 21명의 환자가 사망했으며, 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신은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다른 무장세력들이 의료시설과 그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가자 보건당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병원을 공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가자지구 주민들은 병원이 공습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피신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후 인명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해 10월 7일부터 31일까지 팔레스타인인 3만 278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7만 5298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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