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미국 대선 돋보기
⑤ 바이든 정권의 네타냐후 고민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찰스 슈머 미국 상원의원이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필자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1985년, 뉴욕에서 망명 생활을 해온 김대중 선생이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자는 김대중 선생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미국 연방의원들을 접촉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당시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솔러즈 의원실을 드나들었다. 당시 한국 상황과 김대중 선생과 관련한 자료를 솔러즈 의원 사무실에 전달하는 일이 필자의 역할이었다. 그때 변호사이면서 솔러즈 의원의 인권 관련 의제를 담당하는 유대계 보좌관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뉴욕주 하원의원을 거쳐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고, 1998년엔 3선의 공화당 거물인 앨 더마토 의원을 누르고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17년엔 민주당 상원 대표가 되었고 2019년엔 미국 연방 상원의 다수당 대표가 되었다. 그가 바로 현재 미 연방의회의 1인자인 찰스 슈머 상원의원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으로는 미국 정치 역사상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필자가 해온 한인 정치 참여 운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각) 슈머 상원의원이 미국 상원에서 워싱턴의 금기를 깨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 문제가 정치권의 매우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던 상황에서다. 워싱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유대계 정치인 중에서 슈머만큼 전체 유대인의 정치적 지지와 후원을 받아온 인물은 없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지난달 17일 오후, 뉴욕 브루클린의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 도서관의 작은 학생용 책상 앞에 슈머 의원이 앉았다. 미 정치권을 요동치게 한 사흘 전 작심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그는 이 신문의 저명한 정치 전문기자인 애니 카니를 자신이 50여년 전에 다녔던 모교인 이곳으로 오게 했다. 그는 고교 시절 이 도서관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참혹한 역사에 대해 수많은 책을 읽었고, 이스라엘 건국의 의미를 알아차렸으며, 유대인이란 정체성의 특별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그늘 아래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자란 자신이 왜 그렇게 정치적으로 위험한 연설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슈머 의원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할 의무를 느꼈다고 했다. 연설을 결심하면서 “이것이 나에게 정치적으로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지만,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것이 내 의무라 생각했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 반대하는 연설을 하게 된 것은 “유대인 신앙과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옹호해야 한다고 느끼는 도덕적 의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44분 길이의 연설을 완성하는 데 2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10개의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고, 원래는 네타냐후 총리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가자지구에 대한 정책 변화 필요성만 언급하려 했다가 그러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네타냐후 총리 교체를 주장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네타냐후 리더십으로는 이스라엘이 전세계에서,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버림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 걱정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연설은 순식간에 뜨거운 정치적 논쟁에 불을 붙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원들에게 점점 더 큰 부담이 되고, 그래서 당내 정치적 분열이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는 순간에 그의 연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 7명이 숨지게 했고, 이에 이란은 이스라엘에 300개가 넘는 드론(무인기)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보복 공격을 해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 반격하겠다는 이스라엘을 자제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슈머 의원은 미국에서 대통령 다음의 최고위 선출직인 상원 다수당 대표다. 아마도 전세계 유대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일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를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워싱턴 정치권을 움직이는 큰손들이 아직 네타냐후 총리의 편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유대인 사회 주류에서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은 유대국가의 존립을 위협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슈머 의원의 연설은 미국 민주당이 네타냐후 총리를 부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네타냐후 총리를 떨쳐내고 새로운 방향을 찾을 것을 촉구한 것이기도 하다. 이 연설에 부응해서 바이든 대통령과 친이스라엘 진보 세력들이 슈머 의원의 뒤를 따른다면 이 파장은 쓰나미(지진해일)로 변할 수 있다. 슈머 의원의 연설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난 4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당장 민간인 보호 조처에 나서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금도 이 연설을 둘러싸고 미 정치권에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슈머 의원의 연설에 대해 가장 빠르게 반응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투표하는 유대인은 자신의 종교를 싫어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갈라치기 발언을 이어 갔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그가 좋은 연설을 했다”고 했다. 유대계 민주당원들은 슈머 의원이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고 환영했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바이든 행정부가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 진보 세력으로부터 강한 비판과 압력을 받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수만명이 사망했고, 수없이 많은 어린이가 희생당하고 있으며, 구호단체 활동가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슈머 의원의 네타냐후 퇴진 요구 연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지지해온 진보 세력의 불만은 매우 크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엠제트(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 세력은 올해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무슬림 유권자가 가장 많은 미시간주에서는 20만명 넘는 지지자가 바이든으로부터 이탈했다. 지난 2일 위스콘신주 예비선거에서는 4만여명이 이탈했다. 위스콘신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2만여표 차이로 트럼프를 겨우 이겼던 곳이다.
2020년 6월10일 예루살렘에 있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의회 산하단체 건물 외벽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AFP 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으로 지지층이 이탈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도 생명이다’ 운동의 선두에는 청년 유대인들이 많이 서 있다. 이들은 2020년 대선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M) 운동을 이끌었던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슈머의 연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유대계 단체인 ‘지금이 아니면’(IfNotNow)의 로런 모너스 정책국장은 “슈머가 연설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유혈 사태를 끝내고 싶다고 했지만,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스라엘에 140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무조건 지원하는 것도 그가 주도했다”며 “만일 진심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간인의 생명에 관심이 있고 인질들을 석방시키고 싶다면, 무기 지원에 반대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해야 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과 인종차별 체제를 해체하라고 발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슈머의 연설은 공화당과 우파 유대인들로부터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민주당 내 좌파들로부터는 ‘크게 부족하다’는 회의적 평가를 받는다. 오랜 기간 유대계의 큰 지지와 지원을 받아온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