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고가 시계 수출량 급감
3월 중국·홍콩 수출량 40%↓
LVMH도 1분기 매출 2% 감소
"중국 고객의 변화가 원인"
3월 13일 스위스 제네바에 새로 문을 연 디올 부티크에 전시된 레이디 디올 아트백/ 로이터연합뉴스
고가 시계를 쓸어담던 중국인들의 수요가 둔화되면서 스위스 시계의 월간 수출량이 2020년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다. 세계 1위 명품기업인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도 지갑을 닫은 중국인에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스위스시계산업연맹의 3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16% 감소한 20억 스위스프랑(약 22억 달러, 약 3조 250억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팬데믹 쇼크로 시장이 얼어붙었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스위스 시계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중국 출하량이 전년 동기대비 42% 급감한 탓이다. 홍콩 출하량도 44%가 줄었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본토벨의 애널리스트 장 필립 베르쉬는 “하락 추세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며 “중국 감소세는 정말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지역 재고가 과도하게 높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2021년부터 2023년 중반까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팬데믹 기간 동안 돈 쓸 곳이 없었던 소비자들이 넘쳐 나는 현금을 롤렉스나 파텍 필립 등 최고급 시계를 구매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또 봉쇄 기간 동안 생산을 중단한 시계 제조업체가 수요 대비 부족한 생산량을 만회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면서 수익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높은 이자율과 불안정한 경제 성장,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소비자들은 고가 시계에 대한 투자를 재고하게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실제 연맹은 최근 소매업체들이 주문을 철회하면서 3월 스위스에서 출하된 시계의 수가 25% 감소한 110만 대에 그쳤다고 밝혔다. 또 2021년 중국을 제치고 스위스 시계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미국으로의 출하량도 3월 6.5%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소비 위축이 도드라졌다. ‘
모든 가격대에서 판매는 줄었는데 고가 제품의 수요가 비교적 더 단단했다.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3000스위스프랑(약 455만원) 이상의 고가 시계 출하량은 금액 기준으로 약 10% 줄었다. 500프랑~3000프랑 사이의 시계 수출은 38% 감소했다. 가장 저렴한 200프랑 미만 시계 수출도 3월 대비 19% 급감했다.
롤렉스 홈페이지
중국발 수요 둔화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스위스 시계 업계뿐만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루이비통, 디올 등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는 올해 1~3월 매출이 206억 9400만 유로(약 30조 4000억원)로 집계돼 시장 전망치인 211억 유로를 밑돌았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서는 2% 감소한 수치지만 분기 기준 변동률로는 2021년 초 이후 가장 나쁘다. LVMH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1분기 18%, 2분기 21%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최대 사업부인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이 2% 줄었고 시계·주얼리 매출도 5% 감소했다. 와인·주류 부문은 16%로 가장 크게 감소했다.
최대 고객인 중국의 소비 둔화가 문제였다. 1분기 미국·유럽 매출은 2% 늘어나는 등 선방했지만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매출이 6% 줄면서 전체 매출을 끌어내린 것이다. 장 자크 귀오니 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핵심 브랜드인 디올과 루이비통 매출 증가율이 2% 수준에 정체돼 있다며 “작년과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 고객의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성장세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며 “고금리에 짓눌린 소비자들이 돌아오면 실적이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회복은 꽤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 소비 둔화와 맞물려 명품 산업의 전망은 당분간 밝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 8~10% 수준이었던 명품 시장 성장률이 올해는 1~4%까지 반토막 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