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재산' 노린 아내와 내연남, 니코틴 원액으로 남편 살해 '자축 여행'

by 민들레 posted Apr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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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남편 죽자 서둘러 장례…부검도 반대[사건속 오늘]
화장→재산 상속→보험금 수령…4달 지나 범행 전모 발각

 

니코틴 용액.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니코틴 용액.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2016년 4월 22일, 건강했던 짠돌이 남편이 아내와 만난 지 6주년을 기념하던 날 '니코틴 중독'으로 숨을 거뒀다.

아내는 숨진 남편을 옆에 두고 '3일장 발인'을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은 '모든 걸 해결해 줍니다'라고 광고한 상조 회사였다.

남편은 생전 "난 연고가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죽으면 아무도 부르지 말고 화장하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남편의 극단적 선택을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아내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2017년, 2021년 모방범죄를 일으킨 국내 최초 니코틴 살인사건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억 재산' 남편 숨지자, 아내는 장례지도사부터 찾았다

숨진 남편 오 모 씨(당시 53)는 2009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두 딸을 키우는 '돌싱' 송 모 씨(당시 47)를 만났다. 외동에 직계 가족이 전혀 없었던 오 씨는 송 씨와 딸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줬다.

오 씨는 송 씨가 진 빚 7000만원을 갚아줬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큰딸을 수술시켜 줬으며 작은딸은 대학에 보내줬다. 1년간의 열애 끝에 오 씨는 남양주의 30평대 아파트에서 송 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오 씨는 충남 천안의 한 공장에서 직장 생활을 해 송 씨와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는 300만원 남짓의 월급을 항상 송 씨에게 줬고, 송 씨로부터 매주 용돈 5만원씩 받으며 생활했다. 특히 오 씨는 아주 검소하게 생활해 1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부부는 동거 6년 만인 2016년 2월,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사건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월 22일, 부부의 6주년 기념 외식 날 발생했다. 부부가 갈빗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시각은 오후 7시30분쯤이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기분 좋게 잠든 남편은 3시간 뒤 숨을 거뒀다. 누군가 집에 출입한 흔적도, 남편이 저항한 흔적도, 외상도 전혀 없었다.

송 씨는 상조 회사에 "남편이 죽었는데 어떻게 장례를 치르냐"고 문의했다. 장례지도사는 먼저 경찰에 신고할 것을 조언했고, 송 씨는 그제야 경찰에 "남편이 숨졌다"고 신고했다.
 

('김복준의 사건의뢰')

('김복준의 사건의뢰')

◇사인은 단순 심장마비?…졸피뎀·니코틴 치사량 나왔다

오 씨의 사인은 '관상동맥 경화에 의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추정됐고, 의사는 독극물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찰은 매달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던 오 씨가 심장 문제로 숨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송 씨에게 부검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송 씨는 부검을 강하게 반대했고, 경찰은 송 씨를 설득하면서 검찰에 따로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그렇게 오 씨 사망 이틀 후 부검이 실시됐다.

5월 중순이 돼서야 나온 부검 결과에서 오 씨의 사인은 '니코틴 중독에 의한 사망'이었다.

오 씨의 혈액에서 리터(L)당 1.95㎎의 니코틴이 나왔고, 수면제로 사용되는 향정신성 의약품 '졸피뎀'도 다량 검출됐다. 사망 58시간 이후 부검이 이뤄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망 당시 오 씨의 혈중 니코틴 농도는 7.58㎎/L로 추정됐다.

그러나 오 씨는 비흡연자였으며, 3년 치 건강검진에서도 니코틴 수치는 모두 '음성'이었다. 단순 사망으로 종결될 뻔했던 사건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강력 사건으로 전환됐다.

◇집 팔고 퇴직금·보험금 수령한 아내…남편은 화장당했다

송 씨는 남편의 시신을 인도받자마자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주변에 부고도 알리지 않은 채 곧바로 화장 절차를 밟았다.

이어 오 씨가 사망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본격적으로 그의 재산 처분에 나섰다. 먼저 오 씨 명의의 아파트 2채를 자기 명의로 이전한 뒤 팔아버렸고, 5월 2일엔 이삿짐센터를 불러 가구 등을 폐기 처분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5월 9일, 오 씨 명의의 금융계좌를 다 해지해 2억2000만원을 수령했다. 이튿날에는 오 씨 직장을 찾아가 퇴직금 4700만원을 받아 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 달 11일부터 13일까지 오 씨 명의로 가입된 보험을 전부 정리했다. 특히 송 씨는 사망보험금 5700만원 수령을 시도했으나, 보험회사 측에서 경찰이 수사 중인 것을 알고 지급을 보류했다.

송 씨는 경찰에게 의심받는 줄도 모른 채 남편의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 장례, 화장, 상속 등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과학수사대 스모킹건')

('과학수사대 스모킹건')

◇CCTV서 포착된 공범은 내연남?'퓨어 니코틴' 구매했다

송 씨는 계획범죄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경찰이 증거를 찾는데 몰두한 이때 한 남성이 등장했다.

송 씨가 오 씨 퇴직금을 받기 위해 직장에 찾아갔던 모습이 주차장 CCTV에 포착됐다. 송 씨는 조수석에서 내렸고, 운전석에 앉은 인물은 황 모 씨(46)였다.

황 씨는 모든 곳에 있었다. 말 그대로 공범이었다. 송 씨에게 상조회사 연락처를 알려주고, 오 씨의 아파트 가구들을 모두 폐기한 사람이 바로 황 씨였다. 심지어 오 씨와 송 씨의 혼인신고서에 등장하는 '증인'도 황 씨였다.

아울러 혼인신고서에 적힌 오 씨의 필체는 오 씨의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송 씨와 황 씨가 혼인신고서를 위조 작성한 뒤 오 씨 사망 두 달여 전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오 씨 사망 일주일 전 황 씨가 미국 사이트를 통해 퓨어 니코틴 원액을 구매, 송 씨 집으로 배송한 기록이 나왔다. 또 '니코틴 살인 방법' '치사량' '장례 절차' 등 단어를 검색한 흔적도 있었다.

조사 결과, 송 씨와 황 씨는 2015년 5월부터 내연 관계를 이어왔다. 송 씨가 2014년 딸과 함께 마카오로 여행 갔다가 가이드로 일하는 황 씨와 눈이 맞은 것이다.

송 씨는 경찰 조사에서 "황 씨는 사업파트너"라고 주장했으나, 황 씨는 무직이었고 오히려 마카오, 강원랜드 등에서 도박 빚을 진 신용불량 채무자였다.

송 씨는 정리한 오 씨 재산 중 1억500만원을 황 씨에게 줬고, 황 씨는 이 돈으로 자신의 빚을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송 씨는 남양주 집에서 15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아파트 하나를 임대했는데, 이곳에서 황 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송 씨는 황 씨와 '주중 부부'로 두 집 살림하고 있었다.

송 씨는 남편 오 씨가 없을 때 황 씨와 두 차례 해외여행에 다녀오기도 했다. 송 씨의 딸들도 황 씨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두 사람은 오 씨의 정보를 주고받을 때 추적을 피하기 위해 텔레그램을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오 씨 사망 넉 달 만인 8월 21일, 송 씨와 황 씨는 '살인 및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과학수사대 스모킹건')

('과학수사대 스모킹건')

◇"직접 증거 없다" 혐의 부인…결국 무기징역 선고

구속 직전에도 송 씨와 황 씨는 치밀했다. 이들은 재산을 처분한 뒤 해외로 달아날 계획이었다. 완전 범죄를 성공했다고 자축한 두 사람은 해외로 떠나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송 씨는 남은 재산을 처분하겠다며 한국에 잠시 귀국했고, 이때 경찰이 송 씨를 상대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도주를 막고 체포에 나섰다.

도피가 무산된 송 씨는 8월 17일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방문을 닫고 버티면서 카톡으로 황 씨에게 "경찰이 외국 못 나가게 했다", "경찰이 우리 집에 온다니까 나한테 연락하지 마라" 등 메시지를 보냈다. 황 씨는 송 씨에게 "경찰이 찾아오면 묵비권 행사하고 개인적인 건 답변 못 하겠다고 버텨라. 될 수 있으면 두루뭉술하게 짧게 대답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황 씨는 송 씨가 재산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경찰 조사받는다"는 핑계를 댔다고 의심했다. 송 씨가 못미더웠던 황 씨는 한국에 귀국했다가 체포됐다.

황 씨는 니코틴 구매에 대해 "전자담배 때문에 샀다"고 주장했다. 송 씨는 "남편 오 씨는 나한테 있어 은인이다. 은인을 어떻게 죽이냐"며 억울함을 연기했다.

두 사람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자, 경찰은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정황 증거들로만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문제는 '오 씨 몸에 니코틴을 어떻게 투입했는지'였다.

송 씨와 황 씨는 검찰 공소장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살인의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노려 법정에서 입을 다물고 버텼다. 두 사람은 국내외 도박장 인근에서 환전 사업을 하는 동업자 관계라면서 송 씨가 황 씨에게 보낸 1억500만원은 '홍콩달러 매입 자금'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의도적 계획 살인을 인정, 두 사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송 씨가 황 씨에게 건넨 돈이 황 씨가 갚아야 할 빚과 정확하게 액수가 같고, 숨진 오 씨의 핸드폰에서 니코틴이나 극단 선택을 검색한 기록도 전혀 없었으며, 수면제가 고농도로 검출된 상태에서 오 씨가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하려면 제3의 인물이 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항소, 2심, 상고를 거친 끝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은 두 사람에게 1심과 2심의 형을 그대로 확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이마저도 기각돼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