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의 고금리가 이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수많은 국가들이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만이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IMF는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상향했는데, 그외 선진국들은 유럽연합 0.8%, 일본 0.9%, 프랑스 0.7%, 한국 2.3% 정도다. 심지어 프랑스나 독일은 마이너스 성장 성적표를 받은 상황이다.
소위 ‘미국 풍요의 시대’로 불리는 1950년대로 복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초호황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지만 곳곳에서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강한 소비지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인데,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믿을 수 없는 경제 호황이 우려된다”는 말도 전했다. 이와 함께 외신들도 다가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연합뉴스
노동 생산성 확대로 호황 누리는 美, 부채도 급증하는 중
2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경제는 세계 1위, 이게 문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 경제 호황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짚었다. 기사에서 주목하고 있는 우려점은 늘어가는 미국의 부채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압력이다. 특히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는 주요 선진국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지속된 부자 및 기업의 감세, 학자금 빚 탕감,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부채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데 이 때문에 미국 출신 투자전문가 로버트 기요사키 등 일부는 “미국의 경제가 망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빅테크와 인공지능(AI) 투자를 통한 구조적 혁신과 노동자들의 생산성 확대 덕분이다. GDP를 기준으로 볼때 전세계에서 미국의 GDP 비중은 26.3%인데, 올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GDP가 차지하는 규모는 20년 만의 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대치 중인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커졌지만,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다. 중국 경제 규모는 미국 대비 2018년 67%에서 올해 64%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국의 부채는 수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세계 곳곳에서 선거가 있는 글로벌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전 세계적으로 정부 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주도한 것이 미국이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대규모 재정누수’가 발생해 정부지출이 GDP의 8.8%를 초과했다. 전년도 초과분인 4.1%의 두배가 된 것이다. IMF는 중기적으로 미국 예산 적자가 6%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 둔화가 어려워지고 다른 국가 정부의 금리와 차입 비용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물가 상승률은 아직도 연준 목표인 2%를 웃돌고 있고, 연준은 금리인하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국채를 대거 발행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IMF는 “미국의 느슨한 재정 정책으로 부채 부담이 악화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의 마지막 단계가 달성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글로벌 금리에 대한 파급 효과는 금융 여건을 더욱 긴축시켜 다른 국가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장기 국채 수익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인플레이션 상황과 통화정책 결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로 인해 다른 경제의 자금 조달 여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연합뉴스
누가 백악관에 들어서든, 보호무역주의 압박 받을 것...스태그플레이션 위험도
WSJ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세계 경제가 불안정해 질 수 있음도 지적했다. 과거 1971년 미국은 부채로 인해 달러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무역 적자가 발생하자 당시 미국 정부는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는 보호무역주의를 실행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국 관세인상을 계획하고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 복귀하면 추가 관세 부과와 달러 약세 압박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고금리의 긴축적 통화 정책과 느슨한 재정정책의 조합은 외국 자본을 빨아들이고 달러 가치를 밀어 올리며, 이는 신흥시장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덜 하고 중국은 더 많이 하는 것이 현재의 거시적 해결책이지만 양쪽 다 그럴 것 같지 않으며, 중국은 통화 가치를 조정할 의무를 느끼지 않기에 결국 보호무역주의 압력이 강화할 것이라고 WSJ는 덧붙였다.
이날 미국 상무부의 분기별 GDP 성장률 발표로 화두에 오른 스태그플레이션 역시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미국 경제의 우려 요소다. 다이먼 CEO는 지난 23일 뉴욕경제클럽 행사에서 낮은 실업률과 소비자 금융 등을 근거로 미국 경제가 탄탄하다는 진단을 내놓았지만, “국가부채 증가,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갈등으로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2022년 3분기(Q)에 2.7%를 시작으로 ▲2022년 4Q 2.6% ▲2023년 1Q 2.2% ▲2023년 2Q 2.1% ▲2023년 3Q 4.9% ▲2023년 4Q 3.4% 등 6분기 연속으로 2%를 넘는 성장세를 보여왔으나, 올해 1분기에 1.6%로 위축됐다. 1분기 성장률이 작년 4분기보다 둔화한 이유로 미국 상무부는 “개인 소비와 수출과 주(州) 정부와 지역 정부 지출 증가세가 감소했고, 연방정부의 지출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성장률은 둔화한 반면, 물가는 여전히 큰 폭으로 상승 중이다.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3.4% 증가하면서 작년 4분기의 1.8%를 크게 상회했는데, 작년 1분기 4.2% 증가 이후 가장 큰 상승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연준이 물가를 잡으려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 둔화를 꼭 우려할 필요는 없지만, 고금리가 물가를 낮추지 못하고 경제활동만 위축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1분기 GDP 성장률이 하회하고 인플레이션 지표 악화가 드러난 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더욱 늦춰질 것이란 전망에 미국 국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 때 5%를 돌파했다가 4.99%를 기록 중이며,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6.7bp올라 4.721%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