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연구팀 "약초 씹어 얼굴 상처 발라…5일 후 아물고 한 달 내 완치"
"약초 이용한 치료행동, 인간·유인원 공통조상 기원 가능성"
인도네시아 야생 수마트라 오랑우탄(Pongo abelii)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민간 의료에서 다양한 질병을 치료에 사용되는 약초를 먹고, 씹어 으깬 약초를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약초로 얼굴 상처 치료하기 전(왼쪽)과 후의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 남부 국립공원에 사는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Rakus)는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아카르 쿠닝(Akar Kuning)이라는 약초를 먹고, 씹어 으깬 것을 상처에 발라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치료 5일 후부터 아물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완치됐다. [Scientific Reports/Isabelle Laumer et a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MPIAB) 이자벨 로머 박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수컷 수마트라 오랑우탄이 약초를 먹고, 씹어서 으깬 약초를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는 야생 동물이 약효가 있는 식물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행동에 대한 첫 보고라며 이는 약초를 이용한 적극적인 치료 행동이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자가 치료는 발생 예측이 어려워 체계적 연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 중남미,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유인원, 오랑우탄, 흰손긴팔원숭이 등이 잎 전체를 삼키거나 씹어서 바르는 행동이 관찰된 사례는 다수 보고됐다.
특히 독일 오스나브뤼크대학 연구팀은 2019년 아프리카 가봉 로앙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가 작은 벌레를 잡아 자기 상처와 동료의 상처에 문질러 치료하는 장면을 포착, 2022년 2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약초 '아카르 쿠닝'과 상처 치료하는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
[Scientific Reports/Isabelle Laumer et a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마트라섬 아체 남부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해온 연구팀은 2022년 6월 라쿠스(Rakus)라는 오랑우탄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약초를 먹고, 씹어서 으깬 즙을 상처에 반복해 바르는 모습을 처음 포착했다. 라쿠스는 2009년 처음 관찰된 오랑우탄으로 1980년대 후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눈 아래 뺨이 깊이 파이는 상처를 입은 라쿠스는 3일 뒤부터 아카르 쿠닝(학명 Fibraurea tinctoria)이라는 약초의 줄기와 잎을 씹어서 나온 즙을 상처에 7분 동안 반복해서 발랐다.
그런 다음 잎을 씹어 상처 부위가 덮이도록 바르고 30분 이상 이 약초를 먹었다. 이후 관찰 결과 며칠 동안 상처 부위의 감염 징후는 없었으며, 치료 5일 후부터 상처가 아물고 한 달 안에 완전히 치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초 치료로 상처가 아물어가는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
[Scientific Reports/Isabelle Laumer et a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동남아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덩굴식물인 아카르 쿠닝은 항균, 항염증, 항진균,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약초로, 진통·해열·이뇨 효과가 있어 전통 의학에서 이질, 당뇨병, 말라리아 등 치료에 사용된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아카르 쿠닝을 다른 신체 부위에는 바르지 않고 30여분에 걸쳐 상처에만 반복해서 바른 것으로 미뤄볼 때 의도적으로 약초를 이용해 얼굴 상처를 치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라쿠스가 상처를 치료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지, 아니면 이 행동을 다른 오랑우탄에게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연구는 이런 적극적인 치료 행동이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