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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서식하는 ‘주기 매미’. 13년이나 17년이라는 긴 생애주기를 가진다. photo WP

미국에서 서식하는 ‘주기 매미’. 13년이나 17년이라는 긴 생애주기를 가진다. photo WP



미국에서 지난 4월 말부터 올여름까지 최대 규모의 매미 떼가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곤충학자들은 221년 만에 찾아오는 약 1000조마리의 매미가 미국 중부와 동남부 등 16개 주를 뒤덮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1803년 이후 처음, 소음이 문제

매미는 보통 땅속에서 애벌레로 5~17년의 세월을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땅 위로 올라온 매미는 여름 한철 힘껏 울어댄다. 짝짓기를 위해서다. 수컷 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복부에 발달한 발음기관으로 소리를 내서 운다. 암컷은 소리를 내는 기관이 없어 울지 못한다.

땅 위의 매미는 2~3주 동안 짧게 살다 생을 마감한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고, 암컷은 나뭇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그 속에 알을 낳고 죽는다. 부화한 알은 땅에 내려와 구멍을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 먹으며 애벌레로 지낸다.

지구에는 3000여종의 매미가 있다. 수명은 종마다 다르지만 보통 땅속에 있는 기간까지 합해서 5년, 7년, 13년, 17년 등의 소수(素數) 주기로 살아간다. 소수는 어떤 수를 나눌 때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눠지지 않는 수를 말한다. 한국에는 참매미·말매미 등 12종의 매미가 사는데 생애주기가 보통 5년이다. 이렇게 주기가 짧은 매미는 같은 종이라도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종종 2년·4년 등 정해진 주기가 아닐 때 땅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국에서 매년 여름마다 수컷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다.

미국의 매미는 다르다. 대부분의 매미가 13년이나 17년이라는 긴 생애주기를 가진다. 17년 매미는 중부 지역, 13년 매미는 동남부 지역에서 서식하는데 엄격하게 주기를 지키며 땅 위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 그래서 이 매미들을 '주기 매미(periodical cicada)'라고 부른다.

곤충학자들은 올여름 13년·17년 주기 매미들이 한꺼번에 지상으로 나와 활동할 것으로 예고했다. 이들의 생애주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13년·17년 매미의 동시 출현 주기는 13과 17의 최소공배수인 221년으로, 1803년 이후 처음 동시 출현이다.

이번에 출현하는 매미는 총 7종이다. 적게는 수백조 마리에서 많게는 1000조마리의 매미가 나타날 것으로 곤충학자들은 예상한다. 먼저 13년 주기 매미들이 동남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곧이어 17년 주기 매미들이 중부 지역에서 등장한다. 위스콘신주, 조지아주, 일리노이주 등 16개 주에 걸쳐 1에이커(약 4047㎡)당 평균 100만마리의 매미가 뒤덮을 전망이다. 일리노이주 일부 지역에서는 두 주기의 매미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소음이다. 한국에 많은 참매미와 말매미의 울음소리는 70~90dB(데시벨) 정도다. 반면 미국의 주기 매미는 일반 매미에 비해 덩치는 작지만 울음소리가 우렁차 110㏈에 달한다. 마치 제트기가 옆에 있는 듯한 수준이다. 코네티컷대의 곤충학자 존 쿨리는 이번 매미 떼의 출현 현상을 매미와 아마겟돈을 합친 '매미겟돈'이라고 부르고, 규모가 너무 커서 고통스러울 만큼 소음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1년 워싱턴 덜레스국제공항에서는 백악관 취재단 전세기가 날아든 매미 떼로 인해 장비 일부에 문제가 생겨 이륙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출현한 매미 떼를 살충제로 죽이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권고하고 있다. 매미는 인체나 농작물에 직접 해를 주지 않는 데다 죽어서 땅에 스며들었을 땐 좋은 거름이 되는 익충이기 때문이다. 곤충학자들은 221년 만에 찾아오는 초대형 매미 떼를 귀중한 연구 기회로 본다. 13년 주기 매미와 17년 주기 매미 종 사이의 번식을 통해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을지 등 각종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매미는 왜 5년, 7년, 13년, 17년이라는 소수 주기로 살아갈까. 천적으로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매미의 천적은 너무나 많다. 새, 다람쥐, 거북, 거미, 고양이, 개 심지어 물고기까지 매미를 잡아먹는다. 이들 천적에 맞선 대응은 천적과 마주칠 기회가 적은 해를 생애주기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미의 주기가 짝수인 6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주기가 2년·3년인 천적들과는 6년마다 만나게 되고, 주기가 4년인 천적들과는 12년마다 만나게 된다. 심지어 12년째에는 2년, 3년, 4년 주기의 천적을 동시에 만난다.
 

숲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미국 ‘주기 매미’들의 겉껍질. photo 뉴시스

숲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미국 ‘주기 매미’들의 겉껍질. photo 뉴시스



살기 위해 택한 소수의 법칙

매미의 주기가 소수인 5년이라면 어떨까. 주기가 2년인 천적과는 10년, 3년인 천적과는 15년, 4년인 천적과는 20년마다 만나게 된다. 천적과 만나게 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곤충학자들은 매미의 주기가 처음엔 3년으로 짧았다가 천적과 만나자 5년, 7년으로 늘렸고, 그것도 부족해지자 17년으로 늘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7년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된다면 19년 매미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천적의 수명이 몇 년이건 간에 소수로 이루어진 성장 사이클이 안전장치인 셈이다.

소수 매미들은 한 지역에서 한꺼번에 수십억 마리가 떼로 올라오는 인해전술을 쓴다. 비록 천적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수십억 마리를 한 번에 다 잡아먹을 수 없을 거라는 계산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 모든 매미가 물밀듯 동시에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13년·17년 매미는 정확히 주기를 채운다는 것이다. 빨리 자란 애벌레라도 절대 먼저 땅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다. 이에 대해 곤충학자들은 13년·17년 주기 매미의 체내에 환경적 신호를 통해 세월의 흐름을 기록하는 분자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예컨대 나무는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떨어지고 자랄 때 수액의 구성이 바뀌는데, 주기 매미의 애벌레가 나무뿌리 즙을 먹을 때 수액의 구성 성분으로 시간 흐름에 대한 단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계절 주기가 17번째 반복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지역에 사는 매미가 어떻게 모두 같은 시간에 땅 위로 올라올 수 있을까. 이들은 땅속 20㎝ 토양의 온도가 18도가 되면 지표면으로 이동한다. 매미가 일정한 체온에 도달해야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17년 주기 매미라도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매미와 일리노이에 있는 매미가 다른 시간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인해 이 시기가 앞당겨지는 추세라는 게 곤충학자들의 설명이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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