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가담 13명 학위 취소에 반발
총장이 졸업장 수여 시작하자
팔레스타인 국기 흔들며 자리 떠
23일 미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학위 수여를 거부하자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며 졸업식장을 떠나고 있다./EPA 연합뉴스
23일(현지 시각) 오전 미국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 교정에서 열린 제373회 졸업식. 9262명의 학생이 검은색과 붉은색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채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앨런 가버 임시 총장이 졸업장을 수여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수백 명이 벌떡 일어나 우르르 식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품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꺼내 흔들고 케피예(무슬림 남성들의 스카프)를 어깨에 두른 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교문을 나와 학교 주위를 행진했다. “가자를 위하여” “순교자들을 위하여”라고 쓰인 팻말을 손에 든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커진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졸업 시즌을 맞은 미 대학가에서 반(反)이스라엘 시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시위는 강력한 공권력 투입으로 이달 초부터 잠잠해졌지만 학생들은 졸업식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집단 퇴장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시위는 컬럼비아대에서 하버드·예일·MIT 등 동부 명문대뿐 아니라 서부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와 남부 텍사스대 등 미 전역으로 번져나가며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비판하는 쪽으로 전개돼왔다. 컬럼비아대에서는 시위대가 건물을 장악했고, UCLA에서는 양측 시위대가 무력 충돌하는 등 점차 폭력성을 띠면서 비판을 받았다.
하버드대 학생 신문인 하버드크림슨 등에 따르면 이날 학생들이 반발한 이유는 학교 측이 시위 가담 학생 중 13명에 대해 학위를 수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난 14일 캠퍼스 내 야영을 종료하기로 합의하면서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 최대 22명을 복귀시키는 조건을 달았는데, 학교 측이 이를 어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버드대 이사회는 “13명은 시위 기간에 대학 정책을 위반했고 학교 규정에 따르면 학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13명의 학생 중 졸업식에 참석한 에릭 토레스 곤살레스는 보스턴글로브에 “학위를 바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하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이날 학부생 대표 연사로 나선 슈루티 쿠마르는 “표현의 자유가 처벌 대상이 됐다”며 학교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졸업식에서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12일 듀크대에서는 이스라엘을 옹호해온 유명 코미디언 제리 사인필드가 연사로 등장하자 학생들이 야유하며 퇴장했다. 럿거스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위스콘신-매디슨대 등 미 전역의 대학 졸업식에서 유행처럼 번진 상황이다.
이날 미 하원 교육 및 노동위원회에는 대학 총장들이 불려 나와 시위 대응에 대해 의원들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특히 노스웨스턴대와 럿거스대는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는 선에서 상황을 종결했다는 데 대해 집중 포화를 받았다. 공화당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뉴욕)은 마이클 쉴 노스웨스턴대 총장에게 “대학이 시위대와 맺은 합의는 친(親)하마스적이고 반이스라엘적”이라면서 “반유대주의 대응에 대한 성적표에서 낙제점을 받았다”고 몰아붙였다. UCLA에 대해서도 “학교 측이 제때 공권력을 투입하지 못해 결국 사고가 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학교에서는 이달 초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반이스라엘 진영에 난입해 바리케이드 철거를 시도하는 과정에 폭력 사태가 벌어져 경찰이 고무탄 등으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