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좀 보내줘요, 여기 전쟁터로”...군인들도 시민들도 ‘카페인 사랑’ 뜨겁네

by 민들레 posted May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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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800일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
전방 군인들 “커피 좀 보내달라” 요청
심신 안정·각성 효과로 전투력도 상승
시민들도 커피를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
커피 소비량도 2년새 104t 가량 증가해


 

우크라이나 방공부대 소속 군인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방공부대 소속 군인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전쟁은 사람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총알이 빗발치고 언제 적의 미사일이 내가 자고 있는 막사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장에 나가 있는 군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전 군인들이 마약류를 사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이 피로를 줄여주고 장시간 전투를 가능하게 도와주는 암페타민의 일종인 페르비틴을 투약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군 역시 전투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벤제드린 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2년 2월 발발 이후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도 앞선 사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기간 계속되는 전쟁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군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에 전방에 나가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최근 자국 시민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약류는 아닙니다. 바로 천연 각성제로 알려져 있는 카페인을 대량 함유하고 있는 커피입니다.

전장으로 커피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무력침공이 시작된 이후 며칠 뒤부터 우크라이나 커피숍들은 자국 군인들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부대에서 지급되는 에너지드링크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커피 원두 한 봉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른 한 군인은 전쟁 전 본인이 사용하던 커피 그라인더를 전방으로 가져가 틈틈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매달 우크라이나군에 수만 봉지의 커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받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전방에서 군용 철제컵에 직접 내린 커피를 담아 마시는 영상을 SNS 등에 올리면서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수요 증가는 비단 군인들 사이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 사이에서도 커피를 찾은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마케팅 연구그룹 ‘프로컨설팅’ 집계 결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운영 중인 커피숍 수는 러시아 침공 이후에도 계속 증가해 현재 약 2500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한 커피 대형체인의 경우 여전히 키이우에서만 약 70개의 커피숍을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커피숍이 늘면서 전쟁 중이지만 커피 소비량도 덩달아 뛰었습니다. 국제커피기구(ICO) 등에 따르면 전쟁 초기인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커피 소비량은 1379t이었지만 약 2년 뒤인 올해 1분기에는 1483t으로 104t 늘었습니다. 이를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약 7.6% 증가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불에 타는 건물을 피해 뛰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불에 타는 건물을 피해 뛰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커피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인기가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와 인접해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통적으로 차(Tea)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가 우세했습니다. 17세기부터 중국과 교역을 시작한 러시아가 차를 대량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인접국인 우크라이나도 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차는 당시 커피와 비교했을 때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더 저렴해 서민들의 접근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차를 비롯한 다른 음료 수입이 어려워지자 커피가 대체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커피 사랑이 최근 더 뜨거워진 이유는 커피가 단순 음료를 넘어 하나의 저항이자 회복력의 상징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쉬는 시간 커피를 마시며 피로를 풀거나 집중력을 높이고, 시민들은 커피숍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파편이 무너져내린 건물 안에서 커피를 내리면서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우크라이나 시민은 “우리가 이처럼 여전히 커피를 만들고 있는데 어떻게 러시아가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고 NYT에 전했습니다.

이처럼 커피를 찾는 우크라이나 시민이 늘면서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고 해도 경쟁이 심해지면서 커피의 높은 완성도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 거리에서만 6개 이상의 커피숍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손님을 받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커피숍들은 품질 좋은 원두를 공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커피 추출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품질 낮은 커피를 빠르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 형식이었다면, 지금은 품질을 높여 소비자 만족도 잡겠다는 전략입니다.

우크라이나 커피숍들은 새로운 손님 유치를 위한 신메뉴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블샷 에스프레소에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섞는 ‘카푸오렌지’라는 음료가 키이우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커피 추출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무산소탱크에서 커피를 발효시킨 뒤 음료에 과일향을 더하는 가공법을 통한 ‘무산소 발효커피’가 우크라이나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커피가 ‘종전과 평화의 시간’도 앞당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