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美 3천억원 들인 임시부두 무용지물…지중해 거센 파도 고려 않고 급히 건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계획으로 2억3000만 달러(약 3160억 원)를 들여 건설한 가자지구 구호를 위한 임시 부두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가자지구에서 5살 미만 어린이 8000명 이상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또 다시 변경을 제안하며 휴전 협상은 표류 중이다.
12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중순 개장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손과 폐쇄, 재운영을 반복한 미국 설치 가자지구 임시 부두의 실패가 예견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 발표 뒤 급하게 건설된 부두가 지중해의 거친 파도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으며 파도는 여름에 더 거세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방부 당국자들이 개인적으로 부두가 지난달 말 가동 열흘 만에 첫 파손된 것을 불가피한 상황으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 발표 뒤 두 달 만인 지난달 17일부터 운영된 가자지구 임시 부두는 열흘 남짓 운영 뒤 파손돼 지난달 28일부터 수리에 들어가 이달 7일 수리를 마쳤지만 9일 바다 상태가 나빠 또 다시 폐쇄됐고 11일 재개돼 운영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 뒤 시작된 이스라엘 봉쇄로 가자지구에 육로를 통한 구호품 반입이 제한되자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가자지구 해안에 임시 부두를 건설해 해상으로 구호품을 전달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자지구 뿐 아니라 미군이 항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해안 지역에 군수품 등 보급을 위해 설치해 온 임시 항구(JLOTS·합동 해안양륙 군수지원)가 애초에 파도가 완만한 수준인 해상상태 3단계(sea state 3)를 넘기면 운영이 어려운 상태가 되는데 지중해는 종종 더 큰 파도와 심한 바람이 부는 해상상태 4단계에 진입한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미 국방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국방부가 바이든 대통령의 임시 부두 건설 발표 계획을 발표 며칠 전에야 알게 됐고 곧 부두 건설을 위해 1000명의 병력이 파견됐지만 이 때까지도 국방 당국자들이 구호품 검사가 어디서 이뤄지는지를 포함해 계획의 세부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부두가 설치되기 며칠 전까지도 임시 부두에 도달하기 전 구호품이 모이고 이스라엘의 검사가 이뤄지는 지점인 키프로스에 지속적인 구호품 전달 흐름을 보장할 방법을 포함해 핵심 세부 사항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일부 미 국방 당국자들이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렇게 급박한 일정으로 미군, 이스라엘군, 키프로스 정부, 미 국제개발처(USAID) 및 다른 당사자들이 서로 잘 협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키프로스 해운 업계 관계자들이 "우리는 날씨, 연중 바람과 파도의 리듬을 알고 있다"며 임시 부두 운영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매체는 미 국방부가 임시 부두가 3달간 운영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배정했지만 운영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은 부두가 또 다른 여러 번의 수리 없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부두가 결국 영구적으로 폐쇄되면 지중해를 통한 구호품이 가자지구 북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아슈도드 항구를 통해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매체는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지구의 기아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구호품 전달 주요 통로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검문소의 가자지구 쪽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라파 지상 공격을 시작하면서 구호품 전달이 대폭 줄었다.
12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로 반입된 구호품 규모는 지난달 대폭 감소했고 이달에는 더욱 줄었다. 지난 3월엔 총 반입된 구호 트럭 수가 약 5000대, 4월엔 5700대였던 데 반해 5월엔 3000대 수준으로 주저 앉았다. 일평균 반입 대수도 4월에 169대였던 것이 5월엔 97대, 6월 1~6일엔 80대로 줄었다. 전쟁 전 가자지구엔 일평균 500대 가량의 구호 트럭이 들어갔다. 5월 반입된 구호품 중 미국이 건설한 임시 부두를 통한 물량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도주의적 단체들이 육로를 통한 전달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12일 언론 브리핑에서 가자지구의 5살 미만 어린이 8000명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며 이 중 1600명은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다.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미국 주도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기대를 모았던 휴전 협상은 아직 표류 중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제안한 휴전안에 대해 "어젯밤 (하마스의) 응답을 받았다"며 "하마스는 상정된 안에 대해 많은 변경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 쪽이 제안한 내용과 거의 동일한 휴전안에 하마스가 "즉시 '예'라고 답할 수 있었지만 대신 거의 2주간 시간을 끌었고 이전에 그들이 받아들였던 입장을 넘어서는 다수의 변경을 제안했다"고 비판하며 해당 변경 사항 중 "일부는 실행 가능하지만 일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13일 하마스의 한 고위 지도자는 <로이터>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중요한 수정 사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가 인질과 교환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명단에 장기형을 받은 수감자들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마스 변경안의 세부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1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마스 지도자들이 아랍 중재자들에게 이스라엘군이 휴전 협상 체결 뒤 첫 주 말까지 이집트와의 국경 인근에서 철수하고 휴전 2단계에서 추가 인질을 석방하기 전에 가자지구에서 완전 철수 및 영구 휴전을 발표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등 더 강경한 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관리가 성명을 통해 하마스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변수들을 모두 변경했다"며 이는 논의 중인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휴전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 쪽은 관련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12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 이후 전쟁으로 인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3만7202명으로 늘었다.
▲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