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發 외식비 고공행진에 ‘뭇매’
쿼터파운더 치즈밀 1만6400원 등
주요 제품 10년새 최대 168% 올라
“더는 서민 한끼 아냐” 소비자 뿔나
2분기 실적 하락… 외식업계들 고심
“소비 위축 땐 경제 연착륙 빨간불”
한쪽선 고가품 소비 늘어 양극화 심화
“수년 동안 사악한 패스트푸드 조직은 소위 ‘가치 있는 메뉴’(저렴한 메뉴)에서도 햄버거 가격을 인상하고 품질은 낮췄다. 하지만, 버거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미국의 한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은 최근 홈페이지에 자사 캐릭터가 악명 높은 햄버거를 ‘처단’하는 내용의 아케이드 게임을 출시했다. 1980년대 고전 게임 형식을 빌려온 게임은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고객에게 자사의 햄버거를 평생 무료로 제공하는 상품을 걸었는데 기대 이상의 화제를 끌었다. 미국의 유통 관련 매체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 특히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점의 가격 인상에 대한 분노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5달러 메뉴 출시에도 고전하는 맥도널드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북쪽 출입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17번가 맥도널드 매장에서 만난 직장인 켄은 맥도널드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켄은 추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가격은 올랐고 품질은 떨어졌다”면서 “맥도널드는 더이상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워싱턴 인근 유니언스테이션 역사 안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만난 앨리엇은 “맥도널드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계산하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예전에는 일주일에 3∼4번씩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었다면 최근에는 1∼2번밖에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표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널드는 소비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됐다. 최근 5달러 세트를 내놓으며 소비자 달래기에 나섰지만 좀처럼 회복이 쉽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국의 역대급 인플레이션 상황을 겪으면서 패스트푸드 가격이 크게 상승했는데 그 중심에 맥도널드가 있다는 지적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다.
미국의 금융정보 제공업체 파이낸스버즈는 맥도널드 주요 제품의 가격을 10년 전인 2014년과 비교했는데 맥더블 샌드위치의 평균 가격은 2014년 1달러19센트(약 1600원)에서 현재는 3달러19센트(4400원)로 168% 상승했고, 감자튀김 중간 사이즈는 2014년 1달러59센트(2200원)에서 현재 3달러79센트(5200원)로 138% 상승했으며 쿼터파운더 치즈밀은 5달러39센트(7400원)에서 11달러99센트(1만6400원)로 122%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 온라인매체 액시오스의 최근 브랜드 평가에서 맥도널드는 브랜드 순위가 10단계나 급락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맥도널드의 대표 메뉴인 빅맥 가격이 2019년 이후에만 두 배로 뛰었다는 주장이 쏟아지기도 했다.
맥도널드 미국 지사장인 조 엘링거는 지난 5월 공개서한에서 “최근 맥도널드가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가격을 크게 인상했다는 소셜 게시물과 출처가 불분명한 보도가 퍼지고 있다”면서 “2019년 미국 내 빅맥의 평균 가격은 4달러39센트(6000원)였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과 그 이후 몇 년간 공급망 비용, 임금 및 기타 인플레이션 압력의 역사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현재 평균 가격은 5달러29센트(7200원)다. 이는 100% 상승이 아닌 21% 상승한 수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맥도널드는 그러나 소비자들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6월부터 약 한 달 동안 5달러 세트 프로모션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프로모션 기간을 8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맥도널드는 지난달 29일 실적 발표에서 올해 4∼6월 글로벌 동일매장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 감소했다고 밝혔다. 동일매장 매출 감소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 4분기 이후 3년6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계 부딪힌 식품소비… 외식업계 고심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고, 특히 식품 가격, 외식비 등이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하면서 미국의 소비자들과 외식업계 모두 고심에 빠졌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6월 식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식비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4.1%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인 식품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2022년 8월 식품 가격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11.8% 상승하며 급격한 상승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크게 둔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이 누적되면서 식품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저가품 소비가 늘고 업체들은 앞다투어 저렴한 메뉴를 내놓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맥도널드의 5달러 세트 메뉴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는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커피를 50% 할인하는 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크루아상과 커피 등을 세트 메뉴로 묶어 할인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타코벨은 3달러 미만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미국 중·저소득층 가정의 유동성 자원이 현저히 줄어들고, 경제의 중추인 소비 지출에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의 함자 압델라만, 루이스 올리베이라, 애덤 셔피로 이코노미스트는 “소득 하위 80% 가구의 현금자산 쿠션 축소와 신용 스트레스의 증가로 향후 소비 지출 증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지출이 타격을 받을 경우 미국 경제 연착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고가품 소비는 증가… 양극화 경제 심화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저가품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명품을 포함한 고가품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조사도 나온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의 ‘미국 럭셔리 트렌드 리포트 2024’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내 명품 구매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로 2021년 14%에서 8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개월 동안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응답자도 15%로 2021년 조사 9%보다 6%포인트나 늘었다. 지난 12개월 동안 명품을 구매했다고 응답한 응답자 가운데 43%는 명품 구매에 1000달러 이상을 지출했다고 응답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미국 시카고무역관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 조사를 인용, 2023년 미국 고가품 시장 규모는 899억달러(123조원) 규모이고, 향후 연평균 6.5%씩 성장해 2030년에는 약 1401억달러(192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미 CNN은 지난 5월에 이미 미국 경제에서 소비 양극화가 두드러진다며 ‘양분’(Bifurcation)이라는 단어가 월스트리트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가용 현금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낮은 상태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고소득층은 여전히 외식·여가에 돈을 쓰고 고가의 제품을 사는 등 소비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