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디바 VS 애국 가수… 후보 입장곡으로 본 美대선

by 민들레 posted Aug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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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비욘세의 ‘프리덤’
트럼프는 그린우드의 ‘갓 블레스 더 USA’
각 후보 철학, 캠페인 방향성 녹아 있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뉴스1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뉴스1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2일. 나흘 일정의 대미를 장식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 앞서 그래미상 32회 수상에 빛나는 ‘섹시 디바’ 비욘세(43)가 깜짝 등장할 것이란 얘기가 소셜미디어에서 돌기 시작했다. 연예 매체 TMZ를 시작으로 CNN·로이터 등 유력 언론들이 이를 받아 보도하고, 전당대회 중간 비욘세의 노래가 배경음악(BGM)으로 깔리며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의 심증은 확신으로 굳어갔다. 하지만 비욘세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11월 대선까지 남은 70여 일 동안 각종 유세와 방송에서 비욘세의 노래는 지겹게 듣게 될 전망이다. 해리스가 선택한 본인의 입장곡이기 때문이다.
 

해리스 | 흑인의 인권·자유 노래한 비욘세

 

가수 비욘세. /로이터·뉴스1

가수 비욘세. /로이터·뉴스1
“난 혼자서 사슬을 끊고/ 내 자유가 지옥에서 썩게 두지 않을 거야 / 나는 계속 달릴 거야 / 승자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니까.”


해리스의 요청에 비욘세가 흔쾌히 사용을 허락한 노래 ‘프리덤(Freedom)’은 2016년 발표한 6집 앨범 ‘레모네이드’에 수록된 곡이다. 4분 50초짜리 블루스·가스펠·알앤비(R&B) 장르의 노래로 흑인 래퍼인 켄드릭 라마가 피처링을 했다. 이 노래는 경찰 폭력 등 인종차별 사건으로 사망한 흑인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고, 나아가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 타파를 얘기한다. 2020년 5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아폴리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지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전국적인 시위가 일었는데, 이 때 거리에서 비욘세의 프리덤이 울려 퍼졌다. 이런 이유로 “역대 비욘세의 노래 중 가장 정치적으로 노골적이다”(뉴욕타임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노래 제목인 ‘자유’는 해리스 캠페인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이 지난해 4월 재선 캠페인에 나선 뒤 후보 사퇴 이전까지 100개의 유세에서 민주주의를 386번, 자유는 175번 언급했지만 해리스는 9번의 유세에서 자유를 60회, 민주주의는 10회 정도만 거론했다”고 분석했다. 해리스는 특히 여성이 임신·출산 등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생식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생식의 자유(Reproductive freedom)”라고도 부르는데, 이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다줄 핵심 정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흑인의 인권과 자유를 말하는 곡의 내용이 해리스 캠페인 기조와도 일치해 적합한 선곡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상 첫 여성·흑인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가 경합주에서 이기기 위해선 흑인 유권자들이 최대한 많이 투표장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20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자유(Freedom)'라 적힌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자유(Freedom)'라 적힌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비욘세가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에 대한 명시적 지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두텁고 본인의 노래가 유세곡으로 쓰일 수 있도록 허락해 사실상의 지지로 해석됐다. 남은 대선 기간 비욘세가 유세 무대에 ‘깜짝 등장’ 하느냐를 놓고도 관심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욘세는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때 국가를 불렀다. 2016년 대선에선 남편 제이지와 함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선거 유세에 참석한 적이 있다.
 

트럼프 | 미국인의 자부심 노래한 그린우드

 

가수 리 그린우드가 지난달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가수 리 그린우드가 지난달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나는 미국인이어서 자랑스럽네 / 적어도 여기서 자유롭다는 걸 알고 있으니 / 이 권리를 나에게 주기 위해 먼저 희생한 이들을 잊지 않겠네.”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유세 무대에 오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래는 컨트리 음악 싱어인 리 그린우드(82)의 ‘갓 블레스 더 USA’다. 1984년 공개돼 올해로 40년이 된 이 노래는 특유의 애국적인 가사와 멜로디 때문에 1991년 걸프전, 2011년 9·11 테러 등 미 현대사의 주요 변곡점 때마다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9·11 테러 직후 뉴욕 양키스 홈구장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4차전 때 성조기를 몸에 두른 그린우드가 만원 관중의 기립 속 이 노래를 부른 건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노래는 미네소타, 테네시, 텍사스, 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의 각 주(州)와 도시를 호명하며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얘기한다.

그린우드의 노래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애국·보훈의 가치를 특히 강조했던 공화당 출신 대통령 후보들이 캠페인 유세곡으로 즐겨 사용했다. 이 노래는 2016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슬로건을 내건 트럼프가 선거에서 틀면서 다시 폭발적 인기를 누리게 된다. 3년 전 2021년 나온 ‘리마스터’ 버전의 유튜브 조회수가 1500만회가 넘어가는 등, 그린우드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로 선거자금 부족에 허덕였을 땐 두 사람이 협업해 59.99달러짜리 ‘갓 블레스 더 USA 바이블(성경)’을 출시해 매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가수 리 그린우드가 지난 2001년 9·11 테러 후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MLB

가수 리 그린우드가 지난 2001년 9·11 테러 후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MLB


전면에 나서지 않는 비욘세와 달리 그린우드는 트럼프를 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지난달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피격 사건 직후 모습을 드러내는 트럼프의 ‘귀환’에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오른쪽 귀에 하얀색 붕대를 감고 트럼프가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 “나는 미국인이어서 자랑스럽다”는 그린우드의 노래가 입혀지면서 컨벤션 효과가 극대화됐다. 그린우드는 “트럼프는 용기와 힘이 있고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를 주저앉힐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린우드는 2017년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때도 참석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