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구소련 출신 ‘수학 천재’
러의 사용자 정보 공개 거부 후
텔레그램 창업하고 암호화 강조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40)가 24일(현지 시각) 오후 8시께 프랑스 파리 외곽의 부르제 공항에서 긴급 체포되면서 ‘러시아의 저커버그’라 불리던 두로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두로프의 수식어는 많다. 마크 저커버그 미국 페이스북 창업자에 빗대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린 것은 물론 ‘프로그래밍 천재’, ‘억만장자 기업가’라고 불리기도 하며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아 ‘은둔의 CEO’로도 여겨진다. 텔레그램이 익명성을 보장하기에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크렘린의 꼭두각시’라는 별명이 동시에 붙었다. 또한 15년 전부터 모스크바 병원에 정자를 기증해 12개국에서 100여 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둔 이력이 있어 ‘정자 기증의 왕’으로도 불린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공동창업자 겸 CEO가 2016년 2월 2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기조연설을 하던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구소련 출신, 어린 시절 형과 ‘수학 천재’로 불려
두로프는 1984년 10월 소련 레닌그라드(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4살 때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두로프의 가족은 라틴어 학자였던 아버지(발레리 두로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대에서 일하라는 제안을 받자,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로 돌아왔다. 두로프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언어학 학위를 받았다.
두로프는 형(니콜라이)이 있다. 둘은 어릴 때부터 수학 천재로 불린 것으로 알려진다. 두로프는 올해 4월 미국 언론인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형이 어렸을 때 이탈리아 TV에 나가 실시간으로 3차 방정식을 풀었고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여러 번 땄다”며 “우리 둘 다 코딩과 디자인 작업에 매우 열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두로프는 가족과 러시아로 돌아올 때 이탈리아에서 IBM 컴퓨터를 가져왔다. CNN은 “1990년대 초반에 러시아에서 스스로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족 중 하나였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두로프는 대학 졸업생이었던 2006년 소셜미디어 프콘탁테(VK·Vkontakte)’를 만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재학시절 한 친구가 페이스북 초기 버전을 보여준 것이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VK는 러시아에서 ‘페이스북’으로 불렸고, 이때부터 두로프는 ‘러시아의 저커버그’라는 별명을 얻었다. VK 출시 이후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와 척을 졌다. 2013년 시위대가 VK를 이용해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VK에 반(反)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사용자 정보를 넘기라고 요청했으나, 텔레그램은 이를 거부했다.
두로프는 “우리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고, 러시아 정부와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두로프는 2014년 4월, VK CEO에서 사임하고 그해 VK 보유 주식 전부를 수백만 달러에 매각한 다음 러시아를 떠나 독일로 갔다. 현재 VK는 러시아 통제 속에 있다. 이에 대해 두로프는 “나는 누구의 명령도 받고 싶지 않다”며 “(VK 지분 매각은)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고, 내 인생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형과 2013년 텔레그램 만들어, 전 세계 10억 명 사용 중
텔레그램은 두로프가 2013년 8월, 형 니콜라이와 만든 메신저 서비스다. 텔레그램은 개인정보보호, 종단 간 암호화를 내세우면서 전 세계에서 1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엑스(X·옛 트위터) 사용자보다 많다.
문제는 텔레그램이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범죄자들이 모여드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공격을 계획한 테러리스트도 텔레그램을 활용했고 홍콩, 이란, 벨로로시 등 전 세계 시위대 역시 텔레그램을 쓴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은 성범죄와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성관계 영상을 찍도록 협박한 2018년 ‘n번방 사건’도 텔레그램에서 유포됐다.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로고. / 조선비즈DB
하지만 두로프는 텔레그램의 최고 가치가 개인정보보호에 있다고 과거부터 밝혀왔다. NYT에 따르면 두로프는 2015년 “프라이버시는 테러와 같은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글을 텔레그램에 올렸다. 또한 2018년에는 인스타그램에 사막에서 말 위에 탄 사진과 함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로프는 2016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은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메신저 서비스로 정부의 침투를 가능하게 하는 뒷문을 만든다면 앱의 매력과 회사의 개인정보 보호 의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것 둘 중 하나”라며 “범죄자에게 안전하다고 해서 정부에게 (텔레그램을) 개방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서 긴급 체포…텔레그램 “플랫폼 소유자에게 남용 책임 묻지 말라”
두로프는 24일 저녁 아레르바이잔에서 개인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오던 중 긴급 체포됐다. 프랑스 검찰은 26일 두로프가 지난달 아동 포르노, 사기, 마약 거래, 자금 세탁과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의 일환으로 구금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당국은 텔레그램이 법 집행 기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이 됐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로프는 현재 구금 상태로, 구금은 28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
텔레그램은 25일 성명을 발표하고 “텔레그램은 유럽연합의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며 “플랫폼이나 그 소유자가 해당 플랫폼의 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두로프가 체포되면서 언론의 자유와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정부 검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두로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FreePavel’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두로프를 옹호하고 있다.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 /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갈무리
독신에 육류·술·커피 하지 않고 정자 기부
두로프는 독신으로 육류, 술, 커피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디언은 “두로프는 항상 검은색 옷을 입는다”며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닮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다 두로프는 지난 7월, 12개국에 정자를 기증한 덕분에 100명 이상의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공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두로프는 러시아를 떠난 이후 텔레그램 엔지니어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는 중이다. NYT는 전직 텔레그램 직원을 인용해 “두로프는 몇 달마다 위치를 옮긴다”고 했다. 두로프는 두바이에 텔레그램 본사를 설립한 이후에도 바르셀로나, 발리, 베를린, 헬싱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간을 보냈다. 두로프는 아랍에미리트(UAE), 프랑스, 카리브해 세인트키츠네비스 등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두로프의 자산은 91억5000달러(약 12조1768억2000만 원)로 추산된다. NYT는 “두로프는 진지한 엔지니어로 돈을 벌거나 범죄 활동을 억제하는 대신 앱의 기능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