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창업자 두로프와 푸틴의 '검은 커넥션' 벗겨질까?

by 민들레 posted Sep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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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러시아의 텔레그램 사용자들이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를 성인으로 만든 초상화를 앞세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러시아 정부와 갈등을 벌이던 두로프는 이후 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면서 자금지원

2018년 5월 러시아의 텔레그램 사용자들이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를 성인으로 만든 초상화를 앞세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러시아 정부와 갈등을 벌이던 두로프는 이후 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면서 자금지원 도움까지 받았다. photo 뉴시스



올해 초 텔레그램의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는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두바이에 위치한 35층 사무실에서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금까지 그가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사례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당시 인터뷰도 2017년 이후 처음이었다. 기사 내용은 텔레그램 월간 사용자 숫자가 2021년 초의 5억명에서 9억명으로 늘고, 잠재적 투자자들로부터 "3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제안"받고, 기업공개를 통해 수익 창출을 시작할 예정이라는 등 대부분 자기자랑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2007년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로 급성장한 '브콘탁테(VKontakte·VK)를 공동 창업한 인물이다. VK의 인기가 치솟자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2013년 반러시아·반정부를 외치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유로마이단 시위 사태의 여파로 VK에서 손을 떼고, 형제인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그해 8월 텔레그램을 공동 창업했다. 그가 VK를 포기한 표면적 사유는 사뭇 인상적이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크라이나 시위대의 개인 데이터를 넘기고 반정부 인사들의 접속을 차단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과감히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만 보면 두로프는 권위주의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물리치고, 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민주주의 투사'에 가까운 인물이다.

두로프는 진짜 '자유의 투사'일까?

그러나 러시아·세인트키츠네비스·UAE·프랑스 등 4개국 시민권을 보유한 두로프는 조직범죄 활동 공모, 사법집행기관의 협조 요구 불응, 아동 포르노물 유포, 마약 밀매 조장, 무허가 암호 서비스 제공, 유해 콘텐츠 방치 등 여러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얼마전 체포되었다. 나흘간 구금되었다가 출국금지와 1주일 2회 경찰서 출두 등을 조건으로 보석이 허가된 상태다. 모든 혐의가 유죄로 입증되면, 두로프는 최장 2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두로프의 체포가 프랑스·러시아 간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당장 러시아는 두로프의 체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만행이자, 정치적 동기로 이뤄진 결정이라며 프랑스를 비난했다. 가혹하게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것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텔레그램 사태가 보통 일은 아닌 모양이다. 과연 두로프는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시위대 데이터를 넘기라는 러시아 요구를 용감하게 거부한 '민주주의 투사'일까?

작년 4월 27일 자 '와이어드(Wired)'는 텔레그램과 관련된 장문의 르포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러시아 야당인 '러시아자유당(Russia's Libertarian Party)'의 부총재 마리나 마사풀리나(Marina Matsapulina·당시 30세)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불법적 무력침략 전쟁이 시작되던 2022년 2월 24일 오후에 겪었던 괴이한 체험담을 전했다. 그날 마사풀리나를 포함한 소수의 러시아 야당 정치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부 건물 앞에 모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 허가를 공식 요청하러 왔지만 이미 거부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9일째 되는 날, 그녀는 오전 7시경 누군가 아파트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현관으로 나갔지만 겁에 질려 열쇠 구멍으로 밖을 내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마사풀리나가 부랴부랴 7명의 동료들과 비공개 텔레그램 그룹 채팅을 하는 동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마사풀리나는 희망 회로를 돌리며 채팅 창에 "놈들이 설마 여기까지 쳐들어오지는 못하겠지(unlikely to bust it down)"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오전 9시 22분, 결국 침실 문짝이 부서지면서 8명의 남자들이 마사풀리나의 침대를 둘러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경찰관 2명, 총을 휘두르며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는 2인 1조의 특수기동대(SWAT) 팀, 연방보안국(FSB) 요원 2명 등이었다. 이들은 마사풀리나에게 "바닥에 엎드려"라고 명령했다. 경찰은 그녀에게 '허위 폭탄 협박' 이메일을 경찰서에 보낸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무부 수사과로 끌려갔을 때 어느 경찰관이 "체포된 진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정치적 이유' 때문일 거라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리는 당신이 집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떻게?"라고 되물었다.
 

지난 8월 25일 모스크바 프랑스대사관 앞에 두로프 체포에 항의하는 텔레그램 상징 종이비행기들이 널려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5일 모스크바 프랑스대사관 앞에 두로프 체포에 항의하는 텔레그램 상징 종이비행기들이 널려 있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텔레그램 잔혹사

그 경찰관은 FSB가 러시아 국영 통신사의 도움을 받아 반경 1m의 오차로 러시아제 SIM 카드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사풀리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찰관의 말에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 말이야, 침실에서 채팅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잖아요." 이어서 "놈들이 설마 여기까지 쳐들어오지는 못하겠지"라고 그녀가 침대에서 쓴 텔레그램 메시지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그래서 우린 당신이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요." 마사풀리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경찰이 자신의 텔레그램 메시지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충격을 감추려 애썼다. 이틀 후 석방된 마사풀리나는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체포된 날 아침 경찰이 야당과 연줄이 있는 80여명의 가택을 수색하고 20명을 체포해 '폭탄 위협'과 관련된 테러 혐의로 기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며칠 후 마사풀리나는 소지품들을 챙겨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4월 아르메니아에 무사히 도착한 마사풀리나는 트위터(X)를 통해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문제는 경찰이 어떻게 비공개 텔레그램 메시지를 읽었는지였다. 여기에는 2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이스라엘 보안그룹이 만들었다는 '페가수스' 같은 스파이웨어가 그녀의 휴대폰에 설치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고가의 소프트웨어는 고위급 표적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총 회원이 1000명도 안 되는 '듣보잡 야당'의 중간급 간부를 노리고 설치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의 '불쾌한' 가능성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파벨 두로프가 "크렘린의 법적 요청을 준수"하였을 가능성이다. 나중에 텔레그램은 세 번째 가능성을 제시했다. 마사풀리나가 체포된 후 심문을 받기 전 몇 시간 동안, FSB 요원들이 셀레브라이트(Cellebrite) 같은 전화 해킹 도구를 사용해 그녀의 메시지를 빼냈다는 것이다.

마사풀리나 사건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작년 1년 동안 러시아 전역에서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의 텔레그램 계정이 감시 또는 해킹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백 명의 형사 사건에서 텔레그램 메시지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일부 반체제 활동가들이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secret chats)'가 이상하게 작동하여 제3자가 도청하였을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텔레그램이 자랑해온 '철통 같은 엔드투엔드 암호화 기능(ironclad, end-to-end encrypted feature)'을 무색하게 만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줄을 잇자 텔레그램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 텔레그램도 모르는 사이에 스파이웨어나 FSB 정보원이 해킹한 것인지, 실제로는 텔레그램이 모스크바와 은밀하게 협력하고 있는지, 아니면 본질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플랫폼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창립 10년이 지나면서 텔레그램은 10억 사용자를 보유한 세계 최고의 소셜미디어(SNS) 네트워크로 급성장했지만, 정규 직원은 60여명에 불과하다. 메타(구 페이스북)가 6만명 이상, X(구 트위터)가 2000명 이상, 틱톡이 1만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한 것과 대조적이다. 두로프에 의하면 텔레그램은 하나의 '아이디어'다. "지구상 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 두바이에 본사가 위치한 이 플랫폼은 불법 음란물, 지식재산권 침해, 사기, 폭력 등을 배제하겠다는 약속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콘텐츠 검열만 실시한다. 두로프가 "암호화된" 또는 "안전한" 메시징 앱으로 자랑하는 텔레그램은 익명 커뮤니케이션의 피난처로 자리 잡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가 직접 채팅을 '비밀'로 설정해야 한다. 왓츠앱(WhatsApp) 또는 시그널(Signal) 등과 달리, 엔드투엔드 암호화가 디폴트 값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두로프는 사용자 개인정보가 위태롭게 만드는 다른 거대 IT기업들의 반복적 실수를 통해 막대한 반사이익을 누렸다. 일례로 2021년 1월 왓츠앱-페이스북의 데이터 공유를 둘러싼 대소동으로 수백만 명의 유저들이 텔레그램으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두 기업의 데이터 공유로 자신들의 개인정보가 광고 목적 등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두로프는 이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디지털 이동"이라고 불렀다. 사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정부가 요청하는 거의 모든 기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사용자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왼쪽)가 UAE 최고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만나고 있다. photo X

두바이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왼쪽)가 UAE 최고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만나고 있다. photo X



돈이 궁한 순간 러시아 정부와 관계 해빙

마리나 마사풀리나에게 일어난 일은 텔레그램의 공동 창립자인 파벨 두로프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섬뜩하게 닮은꼴이다. 2011년 12월 말썽 많은 러시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당시 VK CEO였던 27세의 두로프는 FSB로부터 야당 단체의 페이지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두로프는 이를 거부하고, 트위터에서 러시아 정부의 이런 요청을 조롱했다. 그러자 곧 SWAT가 그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경찰이 문을 두드렸을 때 두로프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안전한 통신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두로프는 권위주의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이 텔레그램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얼마 후 크렘린궁은 인터넷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고 푸틴의 측근들이 VK를 장악했다. 결국 두로프는 시위 지도자들의 정보 공유를 요구하는 러시아 정부의 압력에 저항하여 VK 지분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하고 4월에 러시아를 떠났다.

이후 10년 이상 그는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리며, 권위주의 정부와 싸우는 자유주의 성전(聖戰)의 투사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마사풀리나가 언급했듯이 텔레그램과 러시아 국가와의 관계는 지난 몇 년 동안 현저한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그 분기점은 2018년으로 파악된다. 당시 텔레그램과 러시아 당국 간의 관계는 최악에 달했다. 그해 4월 러시아 사용자의 암호화 키를 넘기라는 FSB 명령을 거부하자 크렘린은 러시아에서 텔레그램을 금지했고, 통신 규제기관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러시아 인터넷에서 텔레그램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2020년 6월 러시아는 정확한 조건을 공개하지 않은 채 갑자기 "텔레그램과 앱 차단 해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러시아가 텔레그램의 차단을 해제한 이유를 '크렘린의 정보공유 요구를 강제하기 위한 2년간의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일례로 로스콤나드조르는 자체 웹사이트를 포함하여 1600만개 이상의 IP 주소를 차단했지만, 텔레그램의 러시아 내 사용자는 오히려 1000만명에서 3000만명으로 늘었다. 크렘린궁 대변인을 포함한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당시 크렘린궁은 '법원 판결'에 따라 텔레그램 차단 조치가 해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강조하며, "대테러 전쟁과 사적 통신의 권리는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러시아 통신사 인테르팍스는 익명의 '크렘린궁 고위 소식통'을 인용하여 텔레그램이 정보기관에 비밀채팅의 암호 해독 코드를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테러 및 극단주의 관련 요청에 협조했다"고 보도하여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2018년 러시아 정부와의 갈등설에 휩쓸린 와중에도, 두로프는 텔레그램의 '돈벌이 수단' 개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그래서 자체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인 '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TON)'를 만들기로 했다. 로스콤나드조르가 앱을 차단하기 2주 전 텔레그램은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인 17억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후 재앙이 닥쳤다. TON이 출시되기 직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를 등록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텔레그램을 기소하고, 회사가 TON을 위해 지정된 자금을 유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두로프는 1년간 SEC와의 법정 투쟁에서 간신히 이겼지만, 2020년 5월 TON의 종료를 공식 발표했다. 그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아야 하고, 치솟는 텔레그램 서버 비용 등으로 두로프는 엄청난 현금이 필요했다.

러시아 국영은행 도움으로 10억달러 모금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텔레그램과 크렘린궁의 관계가 '기적적으로' 해빙되기 시작한 것이다. TON 프로젝트의 종료가 발표된 직후, 러시아 의회의 친여당 의원 2명이 텔레그램이 위기 상황(테러 사건 등)에서 정부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텔레그램의 금지조치 해제를 제안했다. 이에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러시아에서 러시아의 기술 혁신과 '국가 안보'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화답하여 의원들의 제안에 맞장구를 쳤다. 또한 2018년부터 텔레그램 팀이 "극단주의 선전선동을 탐지·제거하고 전 세계 테러공격을 예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선하는 동시에,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달성하는 묘안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얼마 후 로스콤나드조르는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당시 어느 전문가는 "두로프의 반독재적 명민함"을 칭찬하며, "텔레그램이 푸틴·FSB와의 눈싸움에서 승리했다(won a staring contest)"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먼저 눈을 깜빡였을까? 텔레그램과 로스콤나드조르는 어떤 조건에 합의했을까? 양측 모두 간략한 설명만을 제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규제 당국은 성명을 통해 두로프의 '달라진 태도'를 찬양했고 두로프는 러시아의 텔레그램 사용자들에게 "개인 데이터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푸틴은 1년 후 이 결정을 축하했다. "우리는 텔레그램과 합의에 도달했다.… 모든 것이 잘 작동하고 있다."

2020년 6월에는 크렘린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 국영 은행 VTB가 텔레그램의 자금 조달 협상에 참여했다. 이듬해 1월에는 VTB가 2022년 기준으로 회사 가치가 12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한 텔레그램은 5년 만기 채권을 판매할 것이며, VTB가 채권 판매를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21년 3월까지 텔레그램은 10억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크렘린궁이 텔레그램의 차단 해제를 발표한 지 3주 후, 텔레그램 부사장인 일리야 페레콥스키는 한 콘퍼런스에서 러시아의 IT산업 성장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텔레그램과 힘을 합쳐 미국의 기술지배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드미트리 체르니셴코 부총리도 텔레그램의 "러시아 뿌리"를 언급하며, 텔레그램이 다시 러시아에서 사용되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인권 단체, 야당 활동가, 러시아 독립 언론 등은 한때 원수지간 같았던 텔레그램과 크렘린궁 간의 갑작스러운 데탕트에 흥미와 함께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목에서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두로프는 혹독한 건강 관리법으로 유명하다. 매일 8시간의 수면 후 '예외 없이' 팔굽혀펴기 2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얼음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술·담배·설탕·고기를 먹지 않으며, '명상'을 위해 시간을 아낀다. 하지만 대부분 그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편 그를 둘러싼 '어두운 에피소드'도 있다.

예컨대 2013년 러시아에서 자동차 뺑소니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다. 물론 그는 이를 부인한다. 스위스에서는 자녀에 대한 폭력 혐의로 소송이 제기되어 있다. 가장 수상한 것은 그가 여전히 러시아와 비밀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다. 최근 러시아 독립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4년 '자발적 망명'을 떠난 이후, 2015년에서 2021년 사이 자그마치 50회 이상 러시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 그 기간 동안, 그 숱한 만남들이 왜 필요했고, 그런 자리에서 텔레그램·크렘린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지난 9월 7일 자 뉴욕타임스(NYT)는 어떻게 텔레그램이 범죄자·극단주의자·테러집단들의 놀이터가 되었는지를 상세히 보도하여 경종을 울렸다. NYT는 4개월 동안 1만6000여개의 채널에서 320만여개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텔레그램이 범죄활동·가짜정보·아동학대·테러·인종차별 등을 조장하는 '글로벌 하수구(a global sewer)'가 되었다고 단언했다. NYT에 의하면 텔레그램에 독극물 같은 유독성 콘텐츠가 얼마나 흘러넘치는지를 자세히 폭로한 것은 당시 자사 보도가 처음이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운영하는 1500개의 채널이 전 세계 약 100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 중인 것이 발견되었다. 또 최소 24개 채널에서 무기거래가 버젓이 이뤄졌다. 7만여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최소 22개 채널에서 20개 이상의 국가로 엑스터시(MDMA), 코카인, 헤로인 같은 마약들을 배달한다고 광고했다. 하마스·ISIS 같은 테러집단들은 텔레그램에 온라인 아지트를 구축하여 수많은 팔로어를 확보하고 있다. 하마스에 연루된 40개 이상의 채널을 분석한 결과,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평균 시청률이 최대 10배까지 급증하여 작년 10월에만 4억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뉴욕 경찰청의 대테러 담당자인 레베카 와이너는 텔레그램이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자들이 찾는 가장 인기 있는 장소"라며, "나쁜 놈들은 몽땅 이곳에 모인다"라고 말했다.

초법적·무법적 '글로벌 하수구'

이제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텔레그램의 초법적·무법적 행태에 대해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텔레그램이 주된 표적)이 보다 적극적으로 게시물을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디지털 법안을 추진 중이다. 텔레그램은 10억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사용자 숫자에도 불구하고, 다른 IT기업들과 다르다는 이상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불과 60명의 직원이 마치 스타트업 업체처럼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사법집행 기관의 요청을 무시하기 일쑤다. 정부 기관들이 보내는 이메일은 거의 확인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폭동사건을 조사한 하원 위원회가 15개 인터넷 플랫폼에 정보를 요청했는데, 텔레그램만 응답하지 않았다. 두로프가 금과옥조로 삼는 대목은 "전적으로 사용자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검열되지 않은 정보와 의견에 대한 접근 권한을 항상 제공하는 것"이다. 비록 이것이 권위주의 정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기여한 순기능도 있지만,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불법·탈법 행위를 마음 놓고 저지를 수 있는 은신처(safe haven)로 변질된 역기능이 갈수록 더 커지는 점이 문제다.

현재로선 텔레그램의 진짜 소유주가 크렘린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활동의 금지·해제 과정에 많은 의문점들이 남는다. 크렘린 고위인사가 텔레그램의 '러시아 뿌리'를 언급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텔레그램의 자금조달 과정에서 VTB가 1급 도우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여간 예사롭지 않은 텔레그램·크렘린 간 커넥션 의혹이 앞으로 프랑스 당국의 수사로 밝혀질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