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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넘게 두드린 끝에 문제의 그 집 대문이 열렸습니다. 마당에는 배설물을 채운 포대가 가득해서 악취 때문에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어요. 집안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개가 많았고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86마리나 되더라고요. 말 그대로 처참한 현장이었어요.”
-서울 강북구청 관계자
작은 벽돌집에서는 개 수십 마리가 밤낮없이 짖어대고, 주변으로는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이웃들은 “창문도 마음대로 열 수 없다” “신경쇠약이 도져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민원이 쏟아지고 결국 지자체가 나섰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동물을 수집하고 번식시키는 일종의 강박증, 애니멀 호딩의 실제 피해 사례입니다. 애니멀 호딩은 호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치된 동물은 물론이고 공동체 전체에 고통을 주는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구조 현장에서 만난 동물단체 활동가는 “애니멀 호딩에 대응하는 건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넓게 보면 우리 사회를 구조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개st하우스팀은 최근 강북구에서 발생한 호딩 사건의 구조 과정을 지난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동행 취재했습니다. 구조는 서울시와 강북구청·동물단체·동물병원까지 4개 기관이 힘을 보태 이뤄졌습니다. 민관이 참여한 대규모 협업 과정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유사한 호딩 문제 해결에 모델이 될 만합니다.
호더 부부는 12평 집에서 어쩌다 86마리나 되는 개를 키우게 된 걸까요? 이 많은 강아지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위기에서 구조까지 치열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시작은 유기견 보호였지만… 돌봄 없이 무더기로 방치된 강아지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2월. 강북구청 동물보호과에 동시다발로 여러 건의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이웃에서 수십 마리의 개 짖는 소리가 밤낮없이 들린다’ ‘참을 수 없는 악취가 골목에 가득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민원이 제기된 주소지를 찾아가니 12평 남짓한 작은 벽돌집이 있었습니다.
집안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두드려도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웃들의 거센 항의를 경험한 거주자가 공무원이 나타나자 모습을 감춘 거죠. 하지만 담당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환경 개선에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의 안내서를 전달하는 등 거주자와의 소통을 계속 시도했고, 결국 첫 민원이 접수된 지 6개월 만인 지난 5월 마침내 굳게 닫힌 문이 열렸습니다. 20여 차례 방문한 끝에 얻은 수확이었습니다.
직접 확인한 집안은 참혹했습니다. 30대 부부는 비좁은 실내에 자그마치 86마리의 개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채증영상에는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한 개들과 오물로 범벅이 된 실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내심 누군가 도와주길 바랐던 걸까요. 부부는 엄청난 숫자의 개를 돌보게 된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공무원이 채증한 애니멀 호딩 현장 모습. 비좁은 실내에 86마리의 개가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강북구청 제공
시작은 선한 의도였습니다. 소형견 한 마리를 키우던 부부는 한두 마리씩 유기견을 구조해 집에 데려왔다고 합니다. 갈 데 없는 동물을 돕기 위해서였다지만 기초 지식 없이 시작한 돌봄의 결과는 끔찍했죠. 개는 60일의 짧은 임신 기간을 거쳐 최대 10마리의 새끼를 낳고 1년에 2~3차례나 거듭 임신합니다.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키우려면 중성화 수술 혹은 성별 분리가 필수이죠. 하지만 이들 부부는 번식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집은 순식간에 불어난 개들로 가득 찼습니다.
부부의 힘으로는 이 많은 개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집 앞마당과 내부에는 배설물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악취와 짖는 소리가 온 골목에 진동했죠. 현장을 확인한 강북구청은 우선 실내를 둘로 나눠 개들을 암컷과 수컷으로 분리하는 한편, 호더 부부에게 26마리에 대한 사육 포기를 권했습니다.
이는 소유욕이 강해 쉽게 동물을 포기하지 않는 호더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국회에서 발표한 2019년 ‘상생 복지를 위협하는 애니멀호딩, 예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애니멀 호딩은 정신질환인 저장강박의 일종으로, 호더는 소유물을 축적하려는 충동만큼이나 강한 정신적 고통을 소유물을 잃을 때 느낍니다. 실제로 호더 부부는 86마리를 일일이 구분하고 이름을 부를 만큼 개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아끼는 개들을 지자체에 넘기면 안락사될 거라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강북구청은 한번에 86마리 전체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동물단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동행)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일부를 구조해 호더의 신뢰를 확보하면 남은 개들도 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였죠. 그렇게 해서 지난 5월, 86마리 중 26마리가 먼저 구조됐습니다. 구조된 개들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마포 동물복지센터 및 동행 입양센터에서 건강을 회복했고, 10여 마리는 입양처로 향했습니다.
호더 부부는 동물단체와 지자체를 통해 가족을 만난 개들의 근황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부부는 남은 60마리 중 입양 가능성이 낮은 노견·장애견 5마리를 제외한 55마리에 대한 소유권 포기각서에 서명했습니다.
12평 호딩현장 떠나 세상 밖으로…55마리 구조현장
남은 60마리를 구조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강북구청은 서울시에 지원을 요청했고, 서울시 주선으로 동물구조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와 VIP동물병원이 구조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구조를 돕는다고 동물단체나 동물병원이 얻는 이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기꺼이 나선 이유는 반복되는 애니멀호딩 해결의 모범사례를 만들기 위해서였죠. 대부분의 호딩 사건은 호더의 강한 경계심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혹은 대규모 구조에 필요한 민관 협력을 끌어내지 못해 방치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팀장은 “이번 강북 호딩사건을 계기로 민관 협력모델이 만들어지면 다른 지자체가 이를 참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참여 주체들은 역할을 나눴습니다. 강북구는 호더 부부의 정신과 치료를 돕고 거주지 특수 청소를 담당했습니다. 서울시와 VIP동물병원은 60마리의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맡고, 미용학원에서 오염된 털을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동물단체 동자연과 동행은 전 과정을 감독하며 포획과 이송을 돕기로 했죠. 본격 구조 전날엔 개 배설물 청소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강북구 환경미화원들이 개 배설물을 포대에 담아 옮겼는데 2.5t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운 분량이었습니다.
지난 6일, 서울시와 동물단체 연합은 강북구 호딩현장에 대한 2차 구조를 진행했습니다. 대상은 수컷 30마리. 나머지 30마리를 위한 3차 구조는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입니다.
오전 8시 동물단체 활동가 10여명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호더 집 앞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이동장을 조립한 뒤 호더의 집으로 줄줄이 들어가 한 마리씩 개를 안고 나왔습니다. 활동가들은 개들을 이동장에 담은 뒤 성별·나이·체중·접종 이력이 적힌 개체카드도 함께 이동장에 붙였는데요. 이후 치료 및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려면 꼭 필요한 분류 절차입니다.
개들을 실은 구조 차량이 먼저 도착한 곳은 노원구의 애견미용학원입니다. 오염된 털과 발톱을 제거하는 위생 미용을 하기 위해서죠. 현장에는 구조견들을 돕기 위해 10여명의 애견미용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날 미용은 쉽지 않았습니다. 난생처음 감행한 외출에 개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거든요. 장정은(44) 미용학원 원장은 “담당한 개가 미용사를 믿고 의지해야 미용이 가능하다”면서 “이동장에서 스스로 나와 미용사 품에 안길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10여명의 애견 미용사가 호딩 현장 구조견에게 위생 미용을 해주는 모습. 본격적인 수술과 치료에 앞서, 오염된 털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전병준 기자
30분쯤 지나자 개들은 대부분 이동장 밖으로 나와 미용사들의 손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미용사들은 소심한 개들을 달래가며 악취 풍기는 털과 2㎝ 넘게 자란 발톱을 제거했습니다. 닥스훈트 믹스견 ‘왕왕이’를 담당한 김민지(30) 애견미용사는 “동물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 만큼 어려운 동물을 돕고 싶었다”면서 “왕왕이가 5㎏ 소형견인데다 성격이 순해서 미용이 순조로웠다”고 전했습니다. 2시간 뒤 구조견 30마리가 모두 미용과 목욕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중성화 수술입니다. 구조견들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동물복지지원센터 동대문점과 마포점으로 이송됐습니다. 각 지원센터에는 상주하는 수의사가 있어 구조된 동물들에게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구조견들은 간이 건강검진 및 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일부는 지원센터 등에서 현재 임시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구조견 10마리가 서울시 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기초 검진과 중성화 시술을 받는 모습. 전병준 기자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개들을 위해 입양처를 찾고, 애니멀 호딩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구조견들의 입양을 추진하는 한편, 강북구청을 통해 호더 부부를 지속해서 관리·감독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번 구조 작업을 총괄한 배진선 서울시 동물복지시설 팀장은 “구조된 개들은 대부분 6㎏ 남짓한 닥스훈트 믹스로 3살 미만인데다 온순하고 건강하다”면서 “모두 간절하게 입양 문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북구청 담당자는 “호딩 문제는 사후 관리하지 않으면 100% 재발한다. 견주가 개체 수를 늘리지 않도록 지속해서 현장을 방문하고 심리 상담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12평 호딩현장에서 구조된 개들이 가족을 기다립니다. 입양에 관심 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 방법을 확인해주세요.
■애니멀호딩 현장을 벗어난 구조견들이 가족을 기다립니다. 희망하시는 분은 아래로 문의주세요
-서울 동물복지센터 동대문점 ➡️ 02-921-2415
-서울 동물복지센터 마포점 ➡️ 02-2124-2839
-동물구조단체 동행 인스타그램 ➡️ @donghaeng_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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