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교내 총기난사에 보호장구 마케팅 활발
10년간 美 230개교서 사건 발생하자
학부모·학생 노린 '공포 마케팅' 이어져
"가격 비싸지만, 효과성 보장 안돼"
미국에서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티나게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 바로 방탄 장비 판매 회사들이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방탄 가방·필통·후드티 등이다.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물건에 방탄 기능을 넣었다는 게 업체들 설명이지만 실제 효과성이 불분명해 불안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공포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10년간 미국 230개 이상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일상 용품에 방탄 기술이 반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에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사상자가 13명이나 발생하며 충격을 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을 위한 다양한 방탄 제품이 개발되자 최근 교육 관련 한 무역박람회에는 방탄 기능이 있는 방탄 가방을 전시하는 부스가 마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방탄 장비 제조업체인 아토믹디펜스가 홍보하는 방탄 가방 사진(사진출처=제품 판매 홈페이지)
방탄 가방은 공포 마케팅을 활용한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힌다. 어린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외형적으로는 유니콘, 공룡 등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있거나 화려한 색상으로 꾸며져 있다. 방탄 장비 제조업체인 아토믹디펜스는 "어린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독점 예술 컬렉션"이라면서 권총은 물론 AR-15, AK-47 소총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사용하는 클립보드나 학생의 수업 자료를 넣는 바인더(파일)도 방탄 제품으로 제작됐다고 업체들은 홍보했다. 총격이 있을 때 이를 방패처럼 활용해 몸을 보호하는 장비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또 종이 한 장 크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필통이나 후드티에 방탄 기능을 담았다고 소개해 이를 직접 구매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일상 용품이 총격을 막아내는 듯한 효과를 낼 것처럼 홍보한다고 NYT는 평가했다.
동시에 교실 내 책상에 별도 레버를 설치해 책상 표면을 수직으로 세워 학생들이 뒤로 숨을 수 있게 제작된다거나 방탄 화이트보드도 개발됐다. 관련 업체들은 직접 AR-15 기관총이나 수류탄 등의 테스트를 거쳤다고 밝히며 학생들이 이를 활용해 숨는 장면을 홍보 영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교실 한 쪽에 접이식 패널을 설치해뒀다가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 이를 잡아당겨 일종의 방탄 보호 공간을 만들어내는 장비도 마련돼 수만달러를 들여 이를 설치하는 미국 학교도 등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미 전역의 학교 안전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케네스 트럼프는 NYT에 "방탄 가방이 있다고 한다면 헬멧이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필요한 것 아니냐"며 "무엇보다 가방을 교실 뒤편에 걸어둘 경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체들이 연방기관인 미 법무연구소의 공식 기술 인증을 받았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연구소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거짓'이라고 밝혔다. 사법 당국이 직접 사용하는 방탄조끼 외 방탄 제품에 대해서는 실험도, 인증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효과성은 보장되지 않아도 공포에 질린 학부모들은 자녀의 안전을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방탄 가방의 가격은 300달러(약 40만원)에 달하고, 방탄 후드티는 450달러, 필통은 185달러로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다. 방탄 제품을 판매하는 터피팩스의 스티브 나레모어 사장은 "사람들이 '대학살을 이용해 돈을 버냐'고 지적하지만, 그저 소화기 제조업체와 비슷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2022년 5월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일주일 만에 수만개의 제품이 판매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랜디 와인가튼 미국교사연맹 회장은 "총기 난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수익화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이 극도로 분개하게 된다"며 "방탄조끼가 아닌 책, 상담사 등으로 우리를 무장하게 해달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