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숲속 오두막집서 승인 없이 사용
사망을 돕는 캡슐 기기인 ‘사르코(Sarco)’가 23일(현지시각) 스위스 샤프하우젠주의 한 숲속 오두막집에서 사용 승인이 나오지 않는 상태로 가동됐다./AFP 연합뉴스
버튼을 누르면 5분 내로 사망하는 ‘안락사 캡슐’이 현행법 위반 논란 속에 스위스에서 처음 사용됐다. 현지 당국은 관련자들을 체포해 수사에 들어갔다.
24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샤프하우젠주 경찰은 사망을 돕는 캡슐 기기인 ‘사르코(Sarco)’가 전날 오후 샤프하우젠주의 한 숲속 오두막집에서 사용 승인이 나오지 않는 상태로 가동됐다고 밝혔다.
관련 제보를 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해 자살 방조·선동 등의 혐의로 사르코 판매·운영 관련자 여러 명을 체포했다. 사르코를 이용한 60대 미국 여성은 사망했다.
샤프하우젠주 검찰은 검거된 이들을 상대로 형사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사르코 도입을 추진한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 측 대변인은 단체 대표 플로리안 윌렛과 네덜란드 기자 한 명, 스위스인 두 명 등 총 4명이 체포됐으며, 이 중 윌렛 대표만 사망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정확한 검거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사르코를 개발한 호주 출신 의사 필립 니츠케가 기기 안에 들어간 모습. /AP 연합뉴스
사르코는 사람이 안에 들어가 누울 정도 크기의 캡슐이다. 기기를 닫고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뿜어져 나와 5분 내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5년 전 네덜란드에서 개발을 마친 것으로 알려진 사르코는 지난 7월 스위스에서 제품 공개 행사가 열렸다. 스위스가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행사 장소로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를 통해 죽음을 원하는 이들은 먼저 의사에게 정신 능력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 캡슐에 들어가 뚜껑을 닫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과 함께 “죽고 싶으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음성이 재생된다.
버튼을 누르면 30초 이내에 공기 중 산소량이 21%에서 0.05%로 급감한다. 사르코를 개발한 호주 출신 의사 필립 니치케는 “이렇게 낮은 수준의 산소를 두 번 호흡하면 의식을 잃기 전에 방향 감각을 잃고 조정력이 떨어지며 약간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며 “의식이 없는 상태가 5분 정도 유지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니치케는 “일단 버튼을 누르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조력사망은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직접 약물 투여 등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의료인이 약물을 처방하되 환자 스스로 약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분된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사망을 허용해왔다. 작년에도 1200여명이 조력사망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르코에 대해서는 판매·사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난 7월 사르코 공개 행사가 열린 뒤 이 제품의 사용·판매가 현행법에 어긋난다는 해석을 내렸다. 사르코가 안전 관련 법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고 질소 사용을 규정한 화학물질 관련 법률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더 라스트 리조트 측은 스위스에서는 사르코 사용에 법적 장애물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