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쩐해전술' 2탄 ◆
[그래픽=매경DB]
올해 경제 성장률 5%에 빨간불이 들어온 중국. 지난달 말 부터 연거푸 부양책을 쏟아내며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대규모 유동성 공급책을 예고한데 이어, 8일에는 2000억위안(약 38조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가 발표됐습니다.
그럼에도 증시 반응이 영 신통치 않자, 인민은행은 다시 10일 5000억 위안(95조원)규모의 스와프 플랫폼을 개설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중국 재정부는 당초 일정을 앞당겨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정부 부채 해소 등을 위해 2조7000억위안(약 516조원)의 재정 지원안을 발표했습니다.
부동산·내수 침체 속에 인민은행이 통화정책 조정에 나선 만큼 공공투자 확대 등 재정정책이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이런 부양책들이 중국 경제 전반에 실질적 회복을 가져올수 있을지 의구심이 여전히 많습니다.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광화경영대학원 교수 등 전문가들은 근본 문제인 부동산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은 단발성 자금으로 효과를 보기란 한계가 있으며, 단기간 해결이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현재 중국은 부동산, 디플레이션, 인구 등 크게 3가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에 따른 경기 하방 압력에 일본의 소위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죠.
부동산 대기업 60% 적자...주택 착공면적 20여년 전으로 후퇴
최근 파산한 중국 부동산 업체 헝다가 허베이성 스자좡에 짓다가 공사를 중단한 한 아파트 단지.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성장 동력 역할을 오랜기간 해왔습니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과도한 부채와 규제가 뒤섞이면서 골칫거리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소비 심리는 위축됐고 가계와 기업 모두 지출을 줄이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최근 중국 당국자들의 연이은 경기 부양 발언 배경에는 계속되는 부동산 시황 악화로 경기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 점이 자리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간 결산에서 중국 부동산 대기업 158개사중 무려 88개사(약 60%)가 최종 손익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당국이 그동안 금융완화와 함께 지방정부로 하여금 미분양주택을 매입하게 하는 등 조치를 실시해왔다고 하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셈입니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 문제 개선되지 않으면서 지난 7월 기준 중국의 주택 착공 면적은 전년동기대비 25% 가량 급감해 2003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사무실 등 상업용 부동산 시황도 악화일로 입니다.
中 , IMF “미분양 주택처리 등에 1조弗 투입” 권고했지만 거부
중국 베이징 인민대 대학생들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정부가 미분양 주택 처리에 “1조 달러 이상의 공적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공적 자금은 미리 판매된 주택을 완성하거나, 집을 구매한 이들에게 보상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말합니다.
IMF는 2027년 중국의 성장률이 3.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부동산 문제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해결 할 것을 권고 했지만 중국 당국은 거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방정부의 재정 악화로 더 과감한 대책을 내놓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일본의 경우 거품 붕괴후 1990년대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융완화를 실시했지만 부실채권 처리와 구조개혁에 실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20년’ 이라고 불리는 기나긴 침체를 겪었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지금의 중국도 부실채권 처리속도가 더딥니다. 지방 정부 ‘그림자 채무’의 뇌관인 지방정부융자기구의 구제 및 재편도 늦었습니다. 아직도 중국의 지방정부는 지방채 발행을 늘려 당장의 자금문제 해결에만 골몰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금융완화를 통해 대출을 늘린다 한들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생산, 설비투자도 정체되면서 청년 실업률(대학생 제외)이 다시 18.8%(8월기준)로 치솟은 상태 입니다. 고용불안이 높게 지속되는 한 본격적인 내수 회복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중국 경기가 회복세를 띄더라도 또 성장률 저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되는 이유 입니다.
빵 한개 300원 ‘초저가’ 우후죽순...中청년·서민 ‘디플레 마인드’ 확산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3위안짜리 뷔페 식당 난청샹(南城香). 이 프랜차이즈는 최근 1년새 베이징에만 수십 곳의 지점을 냈다. [매경DB]
내수 부진에 소비·고용 둔화가 겹치면서 중국 경제에 드리워진 디플레이션 그림자도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짠물 소비’가 확산되면서 언제부턴가 3위안(약 550원)짜리 아침 식사, 2위안(약 350원)짜리 빵집, 10위안(약 1750원)짜리 미용실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올해 초 이 같은 초저가 소비 열풍이 ‘반짝 인기’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인기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태가 이렇자 중국에 진출한 피자헛, 맥도날드 등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초저가 메뉴 출시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부동산 침체와 고용 불안 등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짠물 소비는 특히 높은 실업률 직격탄을 맞고 있는 청년 층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알리바바 같은 곳에서는 상품 단가가 떨어지고, MZ세대가 애용하는 샤오훙수, 더우인(중국판 틱톡) 등 SNS는 직구 구매나 염가 상품 프로모션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죠. 이번 중추절 연휴 기간 중국 여행객 1인당 지출액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1.6% 느는 데 그쳤습니다.
중국이 석권중인 전기 자동차(EV)의 경우에도 중국내 수요 정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딜러와 판매점들 간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에 소매가격이 제조사의 최저 출하가격을 밑도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전세계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중국에서는 청년과 서민들 사이 디플레 마인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일본형 불황’ 부르는 최대 뇌관 저출산·고령화
[그래픽=매경DB]
부동산, 디플레이션과 함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 잠재력 잠식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입니다.
중국 국가보건위원회(NHC)추산에 따르면 2020년 1.3이었던 중국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0으로 떨어졌습니다. 올해 중국은 한국에 이어 세계 주요국 중 합계출산율 1.0이 붕괴되는 2번째 나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총인구에서 생산연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69%를 피크로 2023년 63%로 낮아졌고, 2050년에는 50%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한국처럼 혼인율이 출산율과 직결되는데, 혼인율 하락세가 한국 보다도 가파르다는 점에서 잠재적으로 한국 보다 더 낮은 출산율을 기록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은 선진국 문턱은 넘어선 뒤 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중국은 아직 갈길이 멉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중국의 현재 1인당 GDP는 1만3000달러 수준 입니다. “부유해지기 전에 늙어버렸다”는 ‘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탄식이 엄살이 아닌 셈입니다.
중국은 4년 후 노인 인구가 3억명을 넘어서고 2050년이면 5억명에 육박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세계 최대 ‘노인대국’이 될 전망입니다. 중국 체제 특성상 이민 등 젊은 외부인력 유입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구 급감은 부동산 수요 감소를 부추켜 안그래도 장기 침체중인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를 가속화 시킬 수 있습니다. 이미 주택 취득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도 장기 감소 추세에 접어든 상태 입니다. 중국의 앞날에 최대 복병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아닌 인구라는 말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폴 크루그먼 “中, 버블 붕괴후 日보다 더 심각할 것”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3중전회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기대와 달리 3중전회에서 당국의 통제 강화 이외에 경제 구조개혁과 관련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 등이 나오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지난 1월 뉴욕타임즈를 통해 “중국이 일본과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을 뿐 아니라,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근거는 비대한 부동산, 수요부족에 따른 불규형한 경제구조와 인구문제로 인한 성장동력 약화 였습니다.
특히, 그는 중국의 상황이 더 안좋다고 보는 이유로 최첨단 기술 영역에서 1990년대 당시 일본과 비교했을때 중국이 아직 상당히 뒤처져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했지만, 산업 구조 전환에 실패해 성장 둔화에 직면해 있다”며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중국이 경제 둔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경제 성장이 둔화 된 이후에도 사회적 결속력을 유지했지만, 중국이 사회 불안 없이 둔화되는 경제를 내부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는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 혼란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군사적으로 무모한 행동을 벌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한국 등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 전략을 추진하며 중국과의 경제 관계 재조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이 안고 있는 위험요소를 감안한다면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든 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속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할 경우 수요·공급 모두에서 세계 경제가 받을 악영향은 매우 클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 교수도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중국 경제의 부진을 고소해하지 말자.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