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세 총 부채 약 1545조원
인플레이션·팬데믹 경기침체 영향
근로소득 주는데 집값·물가 급등
대학 등록금도 치솟아 대출 늘어
“빚더미 해결, 명확한 해답 없어”
빚더미에 허덕이는 미국 Z세대(Z제너레이션·젠지) [사진 출처 = 챗GPT]
일명 Z세대(Z제너레이션·젠지)로 불리는 미국 20·30 젊은이들이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면서 자기 집을 사겠다거나 꿈을 좇겠다는 의지의 원동력이 됐던 젊은 층의 아메리칸 드림도 허상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들을 빚더미로 몰아 세운 가장 큰 요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수십 년 만에 최악 수준이라고 평가를 받는 인플레이션 등이 지목됩니다. 미 준비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현재 18~29세 사이 미 젊은 층이 끌어안고 있는 총 부채는 1조1200억달러(약 1545조원)로 추산됩니다. 이는 미 전체 소비자 부채 규모인 17조8000억달러(약 2경4560조원)의 6.3%에 불과하지만,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 젠지는 치솟는 주거 비용과 대학 등록금에 더해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인플레이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최악의 경제 환경에 놓여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앞두고 있는 젠지는 아파트 및 주택 매매, 차량 구입, 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신용조사기관 트랜스유니온에 따르면 22~24세 사이 미 Z세대 소비자는 경기 침체를 겪었던 밀레니얼 세대보다 신용카드·모기지·학자금 대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높은 부채 수준과 연체율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미 20대 초반의 평균 신용카드 밸런스는 2834달러(약 391만원)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했을 때 2013년 같은 나이대였던 밀레니얼 세대가 보유했던 것보다 26% 더 높은 수치입니다. 이처럼 밸런스가 급증한 가운데 카드 이자율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젠지가 이를 갚아나가는 것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막대한 부채로 인한 부담으로 미 젊은 층 사이에서 비관론이 확산하면서 이들이 일하는 방식과 돈을 쓰는 습관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장기화되면 이들의 미래 재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젠지를 연구하는 마시 메리먼 언스트앤영(EY) 문화 인사이트 전략 리더는 “이는 단순히 돈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들이 앞으로 집을 사지 않고 가족을 위한 소비를 줄이게 되면 기업들, 나아가 미국 경제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전했습니다.
이처럼 부채는 늘고 있지만 미 젊은 층은 고령 근로자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트랜스유니온 집계 결과 미 22~24세 연령대 근로자 연 소득은 4만5493달러(약 628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같은 연령대일 때 벌어들인 5만1852달러(약 7155만원)보다 적은 금액입니다. 임금 정체가 장기화된 만큼 젠지의 저축이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올해 8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패밀리달러 매장에서 한 가족이 쇼핑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소득과 저축이 모두 적은 젠지 근로자들은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신용카드에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 젠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더 빠르게 신용카드 부채를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일 치솟는 주거 비용은 젠지의 숨통을 더 조이고 있습니다. 임대든 구매든 미 젠지는 부족한 소득으로 마땅한 거주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 평균 월 임대료는 2019년부터 지난해 사이 약 30%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 평균 주택 가격은 약 40% 급등한 반면, 임금은 20%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가구 4곳 중 3곳이 중간 가격의 주택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거 비용이 연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미 젠지의 저축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가를 구매하거나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위한 저축 등 다른 재정적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높은 주택 가격과 비싼 대출 금리, 부족한 ‘저렴한 주택’ 공급 등이 겹치면서 미 주택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불안한 경제 상황은 이들의 학업과 진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때 대학 졸업장은 더 좋은 직업과 더 높은 임금, 재정적 안정성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등록금 등 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 빚을 떠안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30년간 미 대학 평균 등록금은 68%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2025학년도 공립 4년제 대학 등록금은 2만4920달러(약 3438만원), 사립 대학의 경우 5만8600달러(약 8084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여기에 주거비와 식비 등을 합치면 4년제 대학 학위를 받기 위해 들어가는 총 비용은 40만달러(약 5억5000만원) 수준입니다.
대학 학위를 받기 위해 공립 및 사립 대학의 학생 중 절반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은 3만7850달러(약 5222만원)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 학위를 위한 지출을 투자로 생각하지만, 이로 인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미래를 위한 저축과 자산 관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젠지 등 청년들이 아직 어린 만큼 앞으로 재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이들이 대출에서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앞으로 최소 수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 신용상담협회(NFCC) 브루스 맥클러리 수석부사장은 “젊은 층이 고금리 부채를 떠안는 것은 이들의 미래를 위한 자금 저축에 큰 방해가 되고 있다”며 “빚더미에 올라앉은 젊은 세대가 결국에는 이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아직 ‘어떻게’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