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도 ‘묻지마 차량 돌진’...올해만 6700건인데 ‘입틀막’ 급급한 이나라

by 민들레 posted Nov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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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한 중국 장쑤성 이싱시 우시공예직업기술학원 앞에 17일 주민들이 몰려 있다. [AP 연합뉴스]

칼부림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한 중국 장쑤성 이싱시 우시공예직업기술학원 앞에 17일 주민들이 몰려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중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인민의 생명과 사회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강조하면서 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서왔지만, 범죄 빈도와 규모는 수그러들 기미가 안보입니다.

특히 지난 11일 광둥성 주하이시에서 일어난 차량 폭주는 공식 발표로만 7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최근 10년래 중국내 묻지마 범죄중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사건 목격자들에 따르면 현장은 온통 핏자국에 피해자들의 신발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실신하는 이들이 속출해 말그대로 아비규환 이었습니다.

피해규모는 달랐지만 이와 유사한 범죄는 최근 일주일간 중국 전역에서 3건이나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16일 장쑤성에 있는 한 전문학교에서는 학교에 불만을 품은 졸업생이 난입해 칼을 휘둘러 8명이 희생됐고, 19일 후난성에서는 초등학교 앞에서 발생한 차량 폭주로 어린이 포함 여러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처럼 올들어 중국에서 묻지마 범죄가 특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데 대해, 그 배경으로 역시 최근 심화된 경기 침체가 자리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사건의 용의자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로 인한 불만과 분노를 무고한 시민들에게 표출했다는 겁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조지 매그너스 교수는 “이상한 사람들의 우발적 행동이 우연히 한꺼번에 겹쳤다기보다, 일종의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中 차량 폭주 올해에만 6700건 넘게 발생

 

지난 19일 중국 후난성 한 초등학교에서 차량 돌진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학생들이 울면서 학교 안으로 뛰어가는 모습.

지난 19일 중국 후난성 한 초등학교에서 차량 돌진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학생들이 울면서 학교 안으로 뛰어가는 모습.

 

매그너스 교수의 지적처럼, 묻지마 범죄의 경우 모방성이 강해 한번 발생하면 유사 사건들이 반복해서 꼬리를 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서울 신림역에서 칼부림 사건 이후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잇따랐고, SNS에 범죄 예고 게시물들도 올라오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는 묻지마 칼부림에서 차량 돌진으로 범죄 빈도가 늘면서 우려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차량을 타고 인파속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칼부림 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베이징, 랴오닝성, 저장성 3곳을 비롯해 10월 산둥성과 우한, 그리고 이달 주하이시 까지 현지 언론들은 올 들어서만 중국 전역에서 6700건이 넘는 크고 작은 묻지마 차량 폭주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어로 칼부림을 뜻하는 ‘칸런’(砍人)에 이어, 차량폭주를 뜻하는 ‘좡런(撞人)’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턴가 하루가 멀다하고 중국 주요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폭력 등 강력 범죄 발생률이 세계 평균보다 훨씬 낮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상할 정도로 묻지마 범죄가 빈발하면서 공공 안전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고, ‘폭력 없는 안전한 나라’라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에도 상처가 난 상황입니다.
 

中경기 장기 침체속...사각지대 놓인 소외계층 정신건강

 

지난 3월 19일 베이징 시내에서 횡단보도에 차량이 돌진한 사건현장. 최소 1명 이상이 숨진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19일 베이징 시내에서 횡단보도에 차량이 돌진한 사건현장. 최소 1명 이상이 숨진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국사회에서는 경제적 실패가 불공평한 구조 및 제도적 요인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현상은 사회 불안과 직결됩니다.

매그너스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밀려난 이들은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느끼게 되고, 부정적 감정이 통제가 안될 경우 폭력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경기침체와 취업난 등에 따른 경제적 압박이 개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커지고 있다” 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의 정신건강 관련 연구기업인 ‘3드립스 사이콜로지’의 새미 웡 소장은 “코로나 펜데믹 전후 수년 동안 정신 보건을 위해 중국 당국은 관련 인프라 투자를 늘려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중국인들이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문제가 있더라도, 치료받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인식 문제 이외에 개인이 목소리를 낼수 있는 창구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드류 톰슨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관계대학원선임연구원은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부족이 소외된 이들로 하여금 폭력에 쉽게 기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맞다” 면서도 “중국은 당이나 정부의 이익보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독립된 법제도가 없어 법원이 신뢰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중국 푸단대 취웨이궈 교수 역시 “가해자들은 불리한 처지에 있었고, 상당수는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며 “(이들은)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달리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고 지적했습니다.

취교수는 최근 자신의 SNS에 당국이 제공하는 상담 지원 등이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겠지만, 지금보다 개인의 권리 보호에 더 집중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해당 게시물은 곧 검열로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지나친 감시 및 검열, 불안도 높여 ‘역효과’ 부를수도

 

지난 3월 10일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이 위치한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출입문을 향해 한 청년이 차량에 탑승해 돌진했다 끌려나가는 모습.

지난 3월 10일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이 위치한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출입문을 향해 한 청년이 차량에 탑승해 돌진했다 끌려나가는 모습.

 

묻지마식 범죄가 워낙 빈발하자, 중국 당국은 올해 들어 특별 대책을 내놨습니다. △가족 △일정수입 △친구·사회와의 접점 △자산 등 4가지가 없는 소위 ‘4무 인원’(4無人員), 또는 △투자실패 △생활실의 △심리불안 △인간관계실패 △정신쇠약 등 5가지에 해당하는 ‘5실인원’(五失人員) 잠재적 위험인물들로 간주해 집중 감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범죄 대응을 위한 어쩔수 없는 조치로 생각되긴 하지만, 이런 변화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그만큼 중국 사회가 불안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보다 더 문제인건 이 같은 접근법이 과연 근본적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라는 겁니다. 광범위하고 빡빡한 감시 및 검열이 오히려 사회 불안도를 확산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당국이 심각한 사안에 대해 공식 발표를 하더라도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만 증폭될 수 있습니다.

최근 묻지마 차량돌진으로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주하이시 사건에서도 당국은 사건과 현장에 대한 보도, 댓글 등을 곧바로 삭제하고 검열 및 통제를 실시했습니다. 일부 관영매체에서만 최소한의 정보만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현장 주변에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려는 시민들의 접근이 금지된 것은 물론, 피해자들이 운송된 병원부터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접근을 막기위한 공안 담당자 등이 배치됐습니다.

결국 사상자 숫자가 공식 발표치 보다 실제로는 더 많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중국 당국은 특히 해외매체들의 현장 및 취재원 접근을 민감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후문 입니다.

이에 대해 드류 톰슨 선임 연구원은 “이런식의 검열은 올해처럼 묻지마식 폭력 사건이 유독 빈발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공포와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더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과연 소외돼 가는 이들의 불만을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 접근방식을 찾지 않는 한 그들의 좌절감이 지도부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는 일도 시간문제가 될지 모릅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