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시리아 전역 맹폭…“전략무기 파괴”
휴전 협정 깨고 골란고원 ‘비무장 완충지대’ 침탈
네타냐후 “골란고원, 영원히 이스라엘 땅 될 것”
국제사회 비판 이어져…“시리아 혼란 틈타 침공”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 붕괴 다음날인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탱크가 골란고원 비무장 완충지대에 진입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시리아 독재정권 붕괴에 따른 혼란을 틈타 시리아를 침공하며 영토 확장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과거 휴전협정으로 합의한 양국 간 ‘비무장 완충지대’까지 탱크로 밀고 나가는 한편, 시리아 내 군사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 군대가 국경 완충지대를 떠나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탱크가 국경을 넘어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25㎞ 떨어진 지점까지 침투했다. 로이터는 복수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골란고원 인근 국경 완충지대를 넘어 시리아 카타나 지역까지 진군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타스통신도 이스라엘군 탱크가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21㎞ 떨어진 카타나 남부 마을 인근에 배치된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붕괴 후 시리아에 남아 있는 전략 무기를 파괴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공습을 벌였는데, 공습을 넘어 정권 붕괴 이틀 만에 지상군 투입 소식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스라엘 탱크가 다마스쿠스로 진군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우리 병력은 국경 완충지대에 주둔하고 있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8일 시리아 반군 연합이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고 알아사드 대통령이 러시아로 도피하는 등 독재정권이 몰락하자, 권력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시리아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전역의 무기고와 비행장, 방공망, 화학무기 공장 및 연구소를 공격하는 등 국방 체계 전반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이스라엘군이 48시간 동안 시리아 전역에 250차례 폭격을 단행했다며 “시리아 역사상 가장 맹렬한 공습이었고, 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시설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SOHR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2명이 숨지고 시리아 방공시스템이 무력화됐다.
이스라엘은 알아사드 정권이 보유해온 화학무기 등이 반군의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선제공격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남은 화학무기, 장거리 미사일, 로켓 등 전략무기 시스템을 공격했다”면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스라엘 국민의 안전”이라고 주장했다.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 마을 마즈달 샴스에서 이스라엘군 장갑차가 국경 완충지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권이 붕괴하자마자 이스라엘·시리아 국경 골란고원 비무장 완충지대에 탱크 등 지상군 병력을 투입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며 시리아 영토였던 골란고원을 빼앗아 현재까지 골란고원의 80%를 점령하고 있다. 1973년 재차 전쟁이 벌어지며 이듬해인 1974년 휴전협정을 통해 이 지역에 비무장 완충지대가 설정됐고, 유엔휴전감시군(UNDOF)이 이곳에 주둔해 왔다.
이곳에 이스라엘군이 진입한 것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이는 휴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8일 “이 일대는 1974년 협정에 따라 50년간 완충지대로 정의됐지만 이제 이것이 무너졌다”며 “시리아군이 진지를 포기했다”는 주장을 폈다. 네타냐후 총리는 완충지대에 있는 헤르몬산 정상의 옛 시리아군 진지에도 병력을 파견했다며 이곳 역시 이스라엘군이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골라니여단을 방문해 “어제부터 우리는 4개 전선에서 교전 중”이라며 시리아를 이스라엘의 ‘전선’ 중 하나로 규정했다.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 내 드루즈파 시리아인 마을 5곳에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이동 금지령을 내렸다.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점령지인 마즈달 샴스 마을에선 알아사드 정권 몰락 소식에 시리아 반환을 기대하는 주민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으나, 이런 주민들의 기대와 달리 곧바로 이스라엘군의 전진 배치가 시작된 것이다.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 드루즈파 시리아인 마을 마즈달 샴스에서 주민들이 알아사드 정권 붕괴를 축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일제히 이스라엘군의 군사 행동을 비판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이런 행동은 1974년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며, 완충지대에는 어떤 군사력이나 군사행동도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집트 외교부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권력 공백을 이용해 더 많은 시리아 영토를 점령하고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르단 외교부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영토에 진입해 완충지대를 장악한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고,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계속해서 위반하고 있으며 이는 시리아의 안보와 안정, 영토 회복 기회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란 외교부 역시 “유엔 헌장을 악질적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시리아인들이 체제 전복에 따른 변화에 대처하는 동안 시리아 영토에 대한 시온주의 체제(이스라엘)의 군사적 침공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의 완충지대 장악이 “일시적이어야 한다”며 미국은 1974년 협정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언제까지 철수하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군과 정부는 완충지대 침범이 ‘일시적’이며, 시리아의 혼란으로 인해 자국 국경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 조치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동시에 네타냐후 총리는 9일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골란고원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일부로 남을 것”이라며 영토 확장 야욕을 노골화했다. 이스라엘은 1981년 골란고원 점령지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