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찾는 한국인 700만명 시대, ‘스이카 카드’ 있으면 ‘슝슝슝~’

by 민들레 posted Dec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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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하철 개찰구.

일본 지하철 개찰구.


올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습니다. 지난 10월까지 무려 720만명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에서 가깝고 치안이 잘 갖춰진 데다, 편리한 교통, 맛있는 음식, 볼거리 많은 주요 도시들뿐 아니라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들이 많은 까닭 같습니다. 밥값이나 숙소 등의 가격이 한국과 비슷한 데다, 최근엔 환율마저 100엔당 900원대 초중반 정도로 낮아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본 여행의 필수 아이템으로 불리는 ‘스이카 카드’ 얘기입니다. 스이카는 신용카드 크기의 ‘충전형 선불식 교통카드’입니다. 우리로 치면, 카드형 티머니 같은 겁니다. 도쿄로 여행을 오시면 나리타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열차를 타기 전 하나쯤 구입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지하철 요금 체계가 우리랑 약간 달라서 매번 종이 승차권을 구입하기 번거롭고,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지하철 티켓 문제로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내리면 거의 꼭 들르게 되는 ‘제이알(JR)동일본 여행서비스센터’가 있는데요. 여기서 여권을 보여주고 스이카를 발급받으면 됩니다. 일반 지하철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승차권 자동판매기 중 일부에서도 스이카를 살 수 있지만, 일본이 낯선 분들은 구입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기왕이면 도심에 진입하기 전에 공항 쪽 서비스센터에서 구입하는 게 편리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교통카드 스이카.

일본의 교통카드 스이카.
스이카는 초록색(일반 스이카)과 빨간색(여행자용 웰컴스이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초록색은 첫 구매 때 보증금 500엔을 포함해서 앞으로 지하철 타는 데 필요한 금액만큼 충전 금액을 넣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첫 구매 때 1천엔을 내면 500엔은 보증금이고 실사용은 나머지 500엔만큼 쓸 수 있습니다. 대신 나중에 역 창구나 환불전용 기기에 카드를 반납하면 보증금과 카드에 남은 돈을 환불(수수료 220엔 제외) 받을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 요금 5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생들은 개찰구에 카드를 갖다 대면 ‘삐약’ 소리가 나는데요. 초등학생들 여럿이 개찰구로 들어갈 때는 아주 귀여운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삐약’, ‘삐약’, ‘삐약’, ‘삐약’∼ 여행자용인 빨간색 ‘웰컴 스이카’는 보증금이 없는 대신 환불이 안 됩니다.

일본에서 스이카는 지하철, 기차를 비롯해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쓸 데가 많은데요. 우선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현금카드 처럼 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본도 요즘은 신용카드 결제가 잘 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가져온 신용카드로 결제 안 되는 곳들이 종종 있습니다. 똑같은 한국 카드인데도 어떤 곳에선 되고 다른 곳에선 안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워낙 대중화된 스이카가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해결사 노릇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신용카드 기반에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했다면, 일본에선 교통카드 안에 현금카드 기능을 넣은 셈입니다. 특히 호텔에서 무료 짐 보관소나 빨래방 같은 곳들에서 스이카 카드를 대면 이용이 가능한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일본 지하철 티켓 자동판매기.

일본 지하철 티켓 자동판매기.


스이카가 일본에 도입된 지 올해로 24년이 됐습니다. 2001년 당시만 해도 매번 종이 티켓을 구입해 개찰구에 넣고, 역사로 진입한 다음 티켓을 빼서 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이카가 나오면서 개찰구에 카드를 살짝 대는 것만으로 진출입이 가능하고, 충전 기능까지 더해져 획기적인 편리함을 줬습니다. 카드 터치를 0.2초만에 인식해서 이용자들이 개찰구에 길게 늘어서는 모습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특히 빠른 터치 인식은 한국에도 도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선 지하철 개찰구 카드 인식 속도가 약간 늦어서 자연스럽게 걸어가듯 통과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은 일본 지하철이 한결 나은 것 같습니다.

2003년엔 제이알(JR)서일본에서 스이카와 닮은꼴 ‘이코카’(ICOCA)를 도입했습니다. 이코카는 ‘아이시로 작동하는 카드'(IC Operationg Card)라는 말의 영어 줄임말인데, ‘갈까?’라는 뜻의 일본 간사이 지역 사투리 ‘이코카’라는 뜻도 섞여 있다고 합니다. 2007년에는 수도권 민영철도 등에서 쓸 수 있는 ‘파스모’(PASMO)가 등장해 스이카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파스모는 통과라는 뜻의 ‘파스’(pass)에, ‘더많이’ 라는 뜻의 일본말 ‘모또’, 혹은 영어 ‘모어’(more)를 덧붙인 말이라고 합니다. 스이카, 이코카, 파스모 외에도 전국에 상호 이용가능한 아이시(IC)형 교통카드가 10개에 이릅니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스이카나 파스모를 휴대전화에 저장해 물리적 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지하철 역사 안 모습.

일본 지하철 역사 안 모습.


최근 ‘스이카’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이용객들이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정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한국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자동차가 무정차로 지나가도 자동 결제 되는 것 비슷한데요. 스이카로 이용자 위치 정보를 인식해 자동 진출입하는 방식이 2028년께 도입될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하철 개찰기도 대폭 줄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 개찰기는 1대당 수천만엔, 우리 돈으로 수억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수도권에만 3500대 개찰구가 있다고 하니, 개찰기 교체나 수리 때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또 2028년부터는 스이카로 개인 간 송금을 비롯한 인터넷뱅킹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스이카 이용자가 3500만명 정도인데, 많은 이용자들이 은행 관련 업무까지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은행들은 갓 입국한 외국인들에게 통장이나 신용카드 발급을 매우 까다롭게 하는데, 스이카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스이카 운영업체인 제이알 동일본 쪽에서는 여기서 얻어지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상업시설이나 호텔 사업에서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고, 전혀 새로운 사업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이카’는 왜 ‘스이카’일까요? ‘스이카’는 한국말로 ‘수박’이란 뜻입니다. 카드 오른쪽 상단에 수박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래 이름은 진짜 ‘수박’이랑 별다른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매우 도회적이고 지적인 카드’(Super Urban Intelligent Card)라는 뜻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일본말 ‘스이스이’는 우리말로 ‘슝슝슝~’, ‘착착착∼’, ‘술술∼’이란 뜻으로 시원스럽게 통한다는 정도의 뜻인데요. ‘스이카’를 쓰면 지하철 개찰구에서 이걸 쓰면 막힘없이 ‘스이스이’ 통과한다는 뜻도 담았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