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파산 상태 속 빚독촉 시달려, 술과 담배에 의존..이수나 언니가 생각나"
배우 故김수미의 일기를 엮은 책이 출간됐다.
도서출판 용감한 까치는 12일 김수미의 일기를 엮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김수미가 1983년부터 사망하기 전인 2024년까지 쓴 일기 중 핵심적인 내용만을 담아 구성한 것으로 쉽지만은 않았던 여배우의 삶을 살면서도 가장으로서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생을 갈망했던 내용이 담겨있다.
일기에는 "2년 동안 절망한 채 파산한 상태에서 빚 독촉에 시달렸고 일은 없었다. 오직 의지하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은 술과 담배였다. 매달 몇백의 수입이 됐던 '전원일기'가 폐지됐을 땐 정말로 죽어야겠구나 싶었다", "내 육신과 혼을 다 빼먹고도 뻔뻔스러운 인간들. 쌀이나 축내는 기생충 같은 인간. 도덕성, 책임감, 사람의 도리도 없는 파렴치범. 용서할 수 없다. 내가 너무 가엾다.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또 거짓말...그러나 나는 그저 위로와 사랑이 필요했다"등 김수미의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고통과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한 아들 정명호 씨가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해 온 '나팔꽃 F&B'의 A씨를 횡령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하고, 상대가 맞불 기사를 내겠다고 맞섰을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김수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수미는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져서 어떤 파장이 올지 밥맛도,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 "지난 한 달간 불안, 공포 맘고생은 악몽 그 자체였다. 회사 소송 건으로 기사 터질까 봐 애태웠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에는 나팔꽃 F&B가 회사 대표이던 정씨를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해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고인은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오늘 기사가 터졌다. (중략)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글을 쓰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인의 딸 정모 씨는 "엄마는 나중에 무혐의나 무죄가 되는 문제가 아니라 기사 한 줄이 나는 게 무섭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며 "겉보기와는 달리 엄마가 기사, 댓글에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말년에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다는 김수미는 지난 2월 일기에서 "어젠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포스터 찍고 집에 와서도. 오늘은 또 멀쩡하다. 약들을 좀 줄이자. 이수나 언니가 생각이 난다"라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수나는 '전원일기'에 출연한 배우로 8년전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까지 뇌사 상태로 투병중이라는 근황이 전해진 바 있다.
가족들은 생전 고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홈쇼핑 방송과 관련해 모두 만류했지만, 회사의 압박 탓에 출연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딸 정씨는 "스트레스와 공황장애로 정신적으로 힘드셔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였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해도 에너지 소모가 큰 게 홈쇼핑인데 압박 속에서 하시려니 힘들어했다"고 기억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던 김수미. 그러나 그는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는 "매일 이른 새벽마다 일기장을 펴고 펜을 들었던 김수미의 솔직한 생각이 모두 표현될 수 있도록 교정은 최소한으로만 진행했고, 일기 속 내용을 덜어내거나 자르지 않고 그대로 엮었다"며 "일기 외에도 김수미가 작성한 짤막한 칼럼 원고들, 단편 글을 해당 연도에 모두 함께 구성하고 미디어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던 방송가 이야기를 그대로 실어 사람 김수미를 책에 담고자 했다"고 전했다.
유가족은 "김수미가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수미는 지난 10월 25일 심정지 상태로 자택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향년 75세. 사인은 고혈당 쇼크로 알려졌다.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