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일본어 생방송에 쏠린 관심, 일본 시청자들이 건넨 위로
▲ 니코니코 카미(神) 스튜디오. 비상계엄 설명과 탄핵실황, 모두 이 스튜디오에서 방송했다. |
ⓒ 박철현 |
"한국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어서 긴급방송을 편성할 예정인데 해설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 방송 시청자들도 저와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12월 4일 아침 일본 최대의 라이브 동영상 플랫폼 드완고 '니코니코'의 오츠카 프로듀서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난 한국 대통령 선거 라이브 중계 이후 약 2년 8개월만의 연락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작스레 카톡 알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본인 아내도 X에 갑작스레 '한국 계엄령'이 트렌드 랭킹에 떴다고 화면을 보여준다. 단톡방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잠이 확 달아났다. 윤석열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결의안을 받아들인 새벽 4시 반까지 한숨도 못 잤다.
해제결의안 통과부터 해제까지 약 세 시간동안 팔자에도 없는 법 공부를 했다. 헌법 77조와 계엄법은 달달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해 나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던 나조차 아예 따로 공부를 해야 했으니 보통의 일본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네, 방송 빨리 편성해 보세요. 아마 조만간 탄핵안이 올라갈 거고 아마 통과될 겁니다. 그러니 방송을 한다면 그 전에 해야 할 겁니다."
"탄핵? 예전에 방송했던 박근혜 대통령 그때 그 탄핵 말입니까?"
그는 화들짝 놀랐다. 일본 정치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베테랑 프로듀서조차 실패한 계엄은 즉시 탄핵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방송을 편성했고, 나는 대담 형식을 제안했다. 아마 법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올 텐데 앞에서 언급했듯 내 법지식은 일천했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가 필요했다.
오츠카 프로듀서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바로 쥬오가쿠인대학 법학부장 이헌모 교수에게 연락했다. 이 교수님은 기꺼이 수락했다. 그렇게 12월 5일 동시접속자 1만명에 육박하는 2시간짜리 라이브 대담 "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실패, 이후 전망"이 방송됐다.
▲ 시청자들이 보는 방송화면. 코멘트가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
ⓒ 박철현 |
윤석열 계엄 난동, 일본어로 생중계하니
니코니코 동영상의 라이브는 시청자가 코멘트를 쓰면 메인 화면에 그 코멘트가 바로 뜬다. 이헌모 교수와 나는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 발령 이유에 대해 (물론 한국인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감사원장과 검사 특검, 명태균 구속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 지적하며 이러한 사안들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김건희의 비리가 폭로되고 이는 곧 윤석열 정권에게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니코니코 시청자들 중에는 혐한, 넷우익이 상당수 존재한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그런 성향의 시청자 댓글, 예를 들어 "민주당이 잘못한 거", "미개한 한국인들", "미숙한 민주주의라 역시…", "이래서 연을 끊어야 돼, 절대 상종해선 안 되는 나라.", "단교" 등등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렇게 발령된 비상계엄을 불과 2시간 30분만에 어떻게 해제시켰나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자, 그때까지 아마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상식적(?)인 눈팅족들이 조금씩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와, 이런 자세한 내용 처음 듣는다."
"나도 트위터에서 봤어. 밤에 달려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시민들이 뛰어가서 군인들 막은 게 정말이었구나!"
"얼마 전에 영화 <1987>을 봤는데 딱 그거네. 이건 완전 영화야."
"알기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 일본 공중파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던데 잘 접속한 듯."
"나이스 한국! 응원해!"
"방금 찾아봤는데 외국 언론들도 대단한 민주주의라고 해."
이런 코멘트들이 달리면 이쪽도 힘이 난다. 이헌모 교수와 나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이후 전망, 곧 '탄핵'을 언급하면서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로 기소돼 결국 사형 혹은 무기징역 결말로 끝날 것이라 말했다. 특히 내란죄에는 시효가 없으며 그 예로 1979년 12월 12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한류영화 팬으로 보이는 몇몇 시청자들이 <서울의 봄>을 언급한다.
"전두환이면 <서울의 봄>에 나왔던 전두광 말하는 건가."
"황정민이 연기했던 그 대머리?"
"<서울의 봄> 얼마 전에 봤는데, 아항, 이번 상황이 그때 그거구나. 바로 이해됐어!"
2시간 15분에 걸친 방송이 끝난 후 앙케트를 받았다. 긍정적인 의견도 많았지만 넷우익들의 혐한 코멘트가 여전했기에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내심 50%만 나와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웬걸 '매우 좋았다'가 74%, '좋았다'가 13.0%, '보통'이 9.1%, '매우 좋지 않았다'가 3.9%로 나왔다.(별로 좋지 않았다는 0%)
오츠카 프로듀서는 "한국 관련 방송에서 좋았다 이상이 87%나 나오는 방송은 거의 없었다"며 "조만간 또 한 번 편성해야 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조만간'은 다음날 바로 찾아왔다. 오후에 메시지가 왔다.
윤석열 탄핵안 부결되자 일본인들의 반응
'박상, 탄핵 12월 7일날 하는 거 맞습니까? 지금 아사히에 기사가 떴는데 박 상이 어제 얘기한대로 7일날 한다고 합니다. 당일날 긴급방송을 편성하려고 하는데 혼자라도 괜찮으니 한국 국회 방송을 보면서 해설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12월 7일은 도쿄 우에노에서 집회가 열린다. 취재를 가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방송을 선택했다. 실외집회도 좋지만 한국정치를 잘 모르는 일본인 수천 명에게 한국적 제도 민주주의(의회)와 직접 민주주의(집회)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지 않을까 판단했기 때문이다.
▲ 7일 저녁 일본 도쿄의 번화가 우에노역 부근에서는 한국 유학생들과 일본 시민 약 300여명이 ‘윤석열 즉각 퇴진’ 피켓을 들고 탄핵 가결을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
ⓒ 니시다 타카시 제공 |
운명의 12월 7일 물경 6시간(16시부터 22시까지)에 이르는 마라톤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처음엔 2시간이면 끝나겠지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을 하는 바람에 3시간 이상 사실상의 방송 공백이 발생했다.
그 시간동안 도시락도 까먹고, 아무튼 한국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를 다했다. 롯데그룹 유동성 문제, 비상계엄이 한국경제와 외교에 미치는 영향,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 태영건설 부도 등으로 보는 건설업 경기 문제 등등. 물론 대강의 지식이니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7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부결됐다. 하지만 방송은 대성공이었다. 최대 동시접속자 2만 2천명, 댓글은 2만 1천개가 달렸다. 방송이 끝날 때 수고하셨다라는 코멘트만 수백 개가 달렸다. 방송평가는 '매우 좋았다' 72.8%, '좋았다' 20.6%, '보통' 3.7%, '별로였다' 0%, '좋지 않았다' 2.9%로 집계됐다. 프로듀서는 "좋아요 이상이 93%이상 나온 건 역대급"이라며 "다음 탄핵 때도 부탁한다"고 아예 미리 방송을 편성하려 했다.
▲ 12월 7일 탄핵 실황 방송의 평가. 매우 좋았다가 72.8%, 좋았다가 20.6%로 나왔다. |
ⓒ 박철현 |
사실 7일 방송 도중,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했을 때 너무나 허탈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분노했다. 열이 올랐다. 방송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 때 일본 시청자들의 말에 위로받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국 정치에 대해 잘 몰랐던 그들은 아주 기초적이지만 본질적인 코멘트를 적기 시작했다.
"오늘 안 되면 다시 올리면 되잖아. 탄핵소추안인지 뭔지."
"월간탄핵, 월간탄핵"
"밖에서 하는 콘서트 보니까 윤짱 못 버티겠는데?"
"와, 완전 페스티벌이다. 저기 나도 가보고 싶어!"
나는 이들의 코멘트에 상당히 위로 받았다. 홍사훈 기자가 "탄핵 부결되고 허탈한 마음에 의사당을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2030 젊은 참가자들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했었다. 나는 그 감정을 라이브 방송 도중 일본인 시청자들에게 받았던 셈이다.
▲ 12월 14일 토요일, 도쿄 신주쿠역 남쪽출구에서 윤석열 탄핵촉구 집회가 열린다. |
ⓒ 박철현 |
제대로 된 K-민주주의, 일본 사회에 보여주러 간다
그리고 11일, 오츠카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다. 14일 탄핵 라이브 방송 출연할 수 있죠? 라고. 하지만 이번엔 거절했다. 나 스스로 집회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7일 라이브 중계를 하고 있을 때 우에노 역에서 열린 집회에 300여 명이 참가했고, 그 참여자들 대부분이 2030 유학생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집회에 참여해 본 교민들은 잘 알겠지만 300명이나 모이는, 그것도 젊은 세대가 90%를 차지하는 집회는 거의 없다. 이번엔 그들과 함께 '내란수괴' 윤석열의 탄핵안 가결을 기원하며, 목청껏 외치고 싶다. 혹시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시민들은 12월 14일 16시 30분까지 JR 신주쿠역 남쪽출구앞 광장으로 오길 바란다.
이번엔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시켜, 제대로 된 K-민주주의를 일본 사회에 보여주고 싶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