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살된 200명 중 하마스 10명뿐”···무차별 학살 증언한 이스라엘 군인들

by 민들레 posted Dec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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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252사단 군인들이 넷자림 회랑을 순찰하고 있다. 이스라엘군 제공

10월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252사단 군인들이 넷자림 회랑을 순찰하고 있다. 이스라엘군 제공

“여기에 민간인은 없다. 모두가 테러리스트다.”

14개월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넷자림 회랑에 배치됐던 이스라엘 군인들은 지휘관으로부터 이런 말과 함께 “선을 넘는 자는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백기를 든 비무장 민간인도, 어린아이도 예외는 없었다. 지휘관이 임의로 설정한 경계선, 즉 ‘킬 존’(kill zone·사살 구역)에 다가서는 이들에겐 무차별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그걸 ‘시체 라인’(the line of dead bodies)이라고 불렀다. 총격 이후 시신을 수습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굶주린 개떼들이 몰려온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런 들개들이 출몰하는 곳은 어디든 가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넷자림 회랑에 배치된 252사단 소속 한 군인의 말이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가 18일(현지시간) 넷자림 회랑에 배치됐던 복수의 군인들 증언을 토대로 이곳에서 민간인과 전투원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 남쪽에 있는 넷자림 회랑은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횡단 경계선으로, 동쪽 이스라엘 국경에서 서쪽 해안에 이르기까지 동서로 8㎞에 걸쳐 이어져 있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몇 달간 이 회랑 주변의 건물 600여채를 철거하고 회랑을 7㎞ 너비로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곳에 주둔하는 군 기지를 확장하고 아예 요새화한 것이다. 이 작업은 이스라엘군의 ‘북부 소개령’과 동시에 진행돼, 가자 주민들을 남부로 몰아넣어 북부를 완충지대로 조성하거나, 최소한 장기 주둔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군은 이곳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고 검문소를 설치해 피란민의 북부 귀환을 막는 등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해 왔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현재 진행 중인 휴전 협상에서 넷자림 회랑 철군을 주요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곳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출입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현실은 단순한 ‘통제 구역’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하레츠는 전했다. 가자지구에서 세 차례 교대 근무를 했던 252사단 소속 한 장교는 “사단장은 이곳을 ‘킬 존’으로 지정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예외 없이 총살당했다”고 증언했다.

군인들의 공통적인 증언에 따르면 킬 존 내 무차별 사격 시스템을 설계한 이는 252사단을 이끄는 예후 바흐 준장으로, 해당 부대 소속 한 장교는 “그가 대원들에게 한 첫 연설은 ‘가자지구에 무고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 장교는 “가자지구 내 모든 사람이 곧 테러리스트라는 그의 생각은 그저 의견이 아니라 이곳의 ‘작전 교리’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전역한 같은 사단 소속 또 다른 장교는 “우린 그곳에서 민간인을 죽이고 테러리스트로 간주했다”면서 “이곳 사상자 규모가 부대 간 경쟁이 되면서 99사단이 150명을 사살하면서 다음 부대는 200명을 목표로 했다”고 증언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252사단이 넷자림 회랑에서 200명 이상의 무장세력을 사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완전히 거짓이란 증언도 나왔다. 당시 이 부대에 근무했던 한 군인은 “200명의 사망자 중에서 하마스 대원으로 확인된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25일(현지시간) 촬영된 넷자림 회랑의 모습. 이스라엘군은 회랑을 확장하기 위해 주변 건물들을 철거했다. 이스라엘군 제공

지난 4월25일(현지시간) 촬영된 넷자림 회랑의 모습. 이스라엘군은 회랑을 확장하기 위해 주변 건물들을 철거했다. 이스라엘군 제공

하레츠는 증언한 군인들이 공통적으로 회랑 북쪽과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사살 경계선’을 언급했으나, 그곳에 배치됐던 군인들조차 이 경계선이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공식적인 군사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휘관들이 임의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이른바 ‘킬 존’의 경계가 매일 바뀌었다는 것이다. 일단 그날의 경계선이 정해지면 선을 넘어오는 주민들에 대한 ‘사살 허가’는 필요치 않았다.

이를 알 리 없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접근했고, 이스라엘군의 총격은 어른과 아이, 민간인과 전투원을 가리지 않았다. 한 군인은 무차별 사격 후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하마스와 무관한 16세 소년이었지만, 지휘관으로부터 “선을 넘는 사람은 누구나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라며 “비무장 민간인을 쏘려고 내가 이곳에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99사단 소속으로 이곳에 배치됐던 또 다른 예비군은 “어른 한 명과 어린아이 두 명이 ‘경계선’을 넘는 모습이 드론에 포착됐고, 곧이어 전투 헬리콥터가 그들에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털어놨다. 백기를 흔들며 접근하는 이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탈출한 이스라엘 인질일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한 이가 오히려 부대 내에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곳에 근무했던 한 군인은 이런 무차별 학살 행위가 “아랍인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도 죽이는 일”이라며 “가자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넷자림에서 돌아온 또 다른 군인은 “그곳은 인간의 생명이 가치가 없는 무법 공간이었다”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라고 불렀던 이스라엘 군대가 그곳에서 어떤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지 이제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