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마디에 미 의회 임시예산안 재편성 돌입
미 중앙은행 연준도 정책 결정에 트럼프 2.0 논의
세계 각국 정상들 저마다 트럼프와 회동에 기대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워싱턴주 공화당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A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하기까지 한 달이 더 남았지만, 미국 정책 당국자는 물론 전 세계 정상들이 그만 바라보고 있다. 즉위도 하기 전에 이미 ‘세계 황제’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먼저 트럼프 당선인의 입김과 함께 미국 내 정세가 격변하고 있다.
미국 연방 정부의 임시예산안 처리 시한을 하루 앞둔 19일(현지시간) 공화당이 마련한 새 예산안이 연방의회 하원에서 부결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요구가 반영된 예산안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미국 내에서는 연방 정부가 21일부터 일시적 업무정지(셧다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임시예산안 처리 시한(20일)을 코앞에 두고 내년 3월14일을 기한으로 하는 추가 임시예산안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임시예산안을 비판하며 “공화당 의원들이 저지른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일은 미국이 2025년에 부채한도에 도달하도록 한 것”이라면서 “부채한도를 늘리는 것은 좋지 않지만 바이든 정부 때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만약 민주당이 부채한도 문제에 지금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 정부 때인 (내년) 6월에 협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유일한 방법은 ‘민주당 퍼주기’ 없이 부채한도 증액을 결합한 임시예산안뿐이며 그 외는 미국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부채한도는 미국 정부가 차입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해 의회가 설정한 것이다.
지난해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케빈 매카시 당시 하원의장은 연방정부의 채무한도로 인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앞두고 2025년 1월 1일까지는 부채한도 적용을 유예하되, 그때까지는 지출을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늘리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당선인 본인은 물론 그의 강력한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목소리가 이런 분위기 형성에 한몫했다.
머스크 CEO는 전날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런 끔찍한 법안이 통과되는 것보다 셧다운(정부 기능 마비)이 낫다”며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까지 정부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이런 터무니없는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상원 및 하원의원은 2년 내 퇴출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하원 공화당의 새 예산안이 공개되자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미국을 위해 최선의 것을 해야 한다”면서 “오늘밤 이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하원 본회의 표결에서 공화당이 부채한도 폐지를 포함해 마련한 새 임시예산안이 찬성 174표, 반대 235표로 부결됐다.
민주당은 임시예산안과 무관한 부채한도 협상을 연계한 것에 반발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재정 적자 확대에 반대하는 강경파 등 의원 38명이 이탈해 민주당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미 연준 금리인하 발표에도 영향 “트럼프 2.0 메시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AFP] |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날 트럼프 당선인 취임이 한 달 남았지만, 그의 공약이 이미 미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전날 내년 금리인하가 지난 9월 예상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놔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 속도 조절은 인플레이션 둔화의 진전이 멈췄다는 인해 촉발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 연준 관계자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에 대한 가정들을 포함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줄리아 코로나도 매크로폴리시 퍼스펙티브스 대표는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연준의 임무를 언급하며 “(트럼프) 정책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들(연준)의 임무를 위협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면서 그 메시지는 “우리는 더 이상 트럼프 1.0에 있지 않다. 이것이 트럼프 2.0이다. 목표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이 있고 우리는 이보다 앞서가야 한다”라고 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추가 인하가 인플레이션의 추가 진전에 달렸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약속한 변화를 고려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변화를 시사했다고 FT는 풀이했다.
대선 직후에 차기 행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추측”하거나 “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날 연준이 내놓은 수정 경제전망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특히 내년 금리인하 전망치로 지난 9월의 1%포인트 대신 0.5%포인트로 낮췄고,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중간 예측치를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헤지펀드 포인트72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딘 마키는 연준의 이번 변화가 “놀라운 일”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추측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 같은 것을 예측에 포함하지 않았다면 인플레이션을 왜 그렇게 높게 예상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JP모건 전략가들도 “수면 아래서 관세 우려가 연준의 정신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연준 관계자들의 생각에 반영됐는지를 묻는 질의에 “일부가 매우 예비적인 조치를 취했고 경제적 효과에 대한 고도의 조건부 예측치를 자신들의 예측에 포함하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푸틴 등 각국 정상들 트럼프 당선인과 만남 기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국민과 대화 기자회견을 열어 질문에 답하고 있다.[AFP] |
세계 각국 정상들도 취임 한 달여를 앞두고 저마다 트럼프 당선인과 회동을 희망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민과 대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푸틴 대통령은 “언제 그(트럼프)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와 대화한 지 4년도 넘었다”면서 “물론 나는 준비가 됐다. 언제든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대화와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말해왔지만 상대방(우크라이나)이 협상을 거부했다”며 “트럼프를 만나면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트럼프 당선인을 거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은 ‘스트롱 맨’(strong man)이고, 나는 정말로 그가 우리 편에 서 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내게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 역시 트럼프 당선인과 회동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1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임 전 일본 총리와 회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들(일본)이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하자 일본 정부는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다음날인 17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을 중시한다는 취지의 트럼프 차기 대통령 발언을 환영한다”며 “쌍방이 편리한 시기에 회담을 갖고 차분히 의견을 교환하면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16일 저녁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를 만났다.
이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달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뒤 미국에 들러 트럼프 당선인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불발된 사실이 재조명됐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이 12일 자신의 취임식 초대자 명단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대변인으로 임명한 캐롤라인 레빗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초청 사실을 확인하고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동맹뿐만 아니라 우리 적국과 경쟁국의 지도자들과도 열린 대화를 시작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때 이를 목격했다. 이 때문에 그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는 전 세계의 평화로 이어졌다. 그는 누구와도 대화할 의향이 있으며 그는 항상 미국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실제로 참석할지는 미지수지만 만약 성사된다면 이는 미 대통령 취임식에 외국 정상이 참석하는 첫 사례가 된다.
유럽의 ‘스트롱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이달 초 일찌감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로 날아가 트럼프 당선인과 대면한 바 있다.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