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의 왼쪽, 젊고 잘생긴 이 청년의 이름은 올해 31살의 중국인 왕싱입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 <엽문3>에도 등장했고, 중국 드라마 <호요소홍랑 월홍편>, <매괴적고사> 등에도 출연했다고 하는 배우입니다.
위 사진의 오른쪽, 같은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국 배우 왕싱(31)의 모습. 그는 지난 3일 태국으로 들어왔다가 나흘 만에 미얀마에서 구출됐다.(사진출처 : 태국 방콕포스트, 카오솟)
■ 나흘 만에 돌아온 중국인 배우…초점 잃은 눈에 삭발까지
왕싱은 지난 3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태국에서 드라마 제작사를 운영한다는 중국인이 SNS를 통해 그에게 출연을 제의했고,
관련 논의를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낮부터 연락이 끊겼고, 그의 여자 친구가 SNS를 통해 알린 실종 소식이
중국과 태국에 널리 퍼진 겁니다.
심지어 중국 외교부가 "태국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공식 브리핑을 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지난 7일, 왕싱은 미얀마에서 발견돼 태국으로 무사히 넘어왔습니다.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왕싱의 무사 귀환 소식을 직접 알리기도 했습니다.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머리는 삭발됐고, 눈은 초점을 잃었고,
몸에선 폭행을 당한 듯한 흔적마저 발견됐습니다.
미얀마에서 구출된 왕싱이 태국으로 돌아와 경찰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고 있다.(사진출처 : 방콕포스트)
■ "배타고 미얀마로"…무슨 일이 있었나?
방콕포스트와 카오솟 등 태국 매체들이 전한 왕싱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왕 씨는
미얀마의 중국인 범죄 조직에 납치됐던 걸로 추정됩니다.
수완나품 공항에 내리자마자 '드라마 제작진'이라고 밝힌 일행에 의해 차에 태워졌고,
곧바로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 도시인 매솟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출입국사무소가 아닌 배를 타고 미얀마로 건너간 왕 씨,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왕싱을 납치한 이들은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으로 추정된다고
태국 경찰은 전했습니다.
왕싱은 모처에서 보이스피싱에 필요한 메시지를 타이핑하거나
모처로 옮겨진 왕싱은 중국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타이핑하는 걸 훈련받았다고 합니다.
범죄 사기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음성 통화 같은 훈련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중국인 10여 명이 있었는데, 두 번째 옮긴 장소에는 중국인이 50여 명에
달했다는 겁니다. 이곳에서 그는 미얀마 경찰에 구출됐습니다.
구출된 경위나, 왕 씨를 납치한 이들은 어떻게 됐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왕 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11일 새벽, 중국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웨이보를 통해 중국과 태국의 정부와 경찰, 응원해 준 네티즌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습니다.
올해 25살 중국인 모델 양쩌치. 왕 씨도 지난달 태국에 입국한 뒤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사진출처 : 연합뉴스. 중국 SNS)
■ 20대 남성 모델, 20대 여성도 실종?…태국에서 잇따른 중국인 실종
그런데, 왕 씨의 소식이 알려진 뒤 비슷한 수법으로 태국에서 가족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또 SNS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올해 25살의 모델 양쩌치, 가족의 글과 중국·태국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양 씨도 SNS를 통해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태국과 미얀마 접경 도시인 매솟에서 연락이 끊겼다가, 다음 날 눈에 부상을 입은 채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또 한 명의 중국인은 올해 21살의 여성입니다.
그녀도 지난 6일 태국에 도착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중국과 태국 정부가 공항에서부터 CCTV 등을 조사하며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미얀마 내전 상황 취재를 위해 찾았던 태국 서부 미얀마 접경 도시 매솟. 기자가 서 있는 곳이 태국 매솟, 가운데 하천을 두고 다리 건너 왼쪽 광고판이 서 있는 곳이 미얀마 미와야디.(촬영 : KEMIN)
■ 그들은 왜 미얀마로 끌려갔나…"중국 범죄조직 근거지"
무사히 돌아온 왕싱의 연락이 끊겼던 곳은 태국 서부에 있는 도시 매솟입니다. 여전히 실종 상태인 양쩌치의 연락이 끊긴 곳도 이곳으로 추정됩니다.
매솟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얀마 미야와디와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두 도시 사이에는 폭 50미터가 안 돼 보이는 강이 있습니다.
출입국 사무소가 있긴 하지만, 이 강을 통해 밀입국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왕싱이 태국 경찰에 한 진술도 "매솟에 도착한 뒤 강을 건너 미얀마로 갔다"였습니다.
태국 경찰과 태국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 미야와디에는 중국인 사기 범죄 조직들의
근거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피해자들을 감금한 상태에서 훈련을 시킨 뒤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이용한다는 겁니다.
태국과 중국 당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왕싱과 양쩌치 모두
이런 범죄 조직에 납치된 피해자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 중국에 손짓하며 '관광대국 부활' 꿈꾸던 태국…'전전긍긍'
잇따른 중국인 실종 사건에 태국이 속을 썩고 있습니다.
물론 실종된 중국인들을 찾는 게 당장 급한 일이지만, 이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태국에 오는 걸 꺼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태국 관광업계의 큰손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태국은 '관광대국' 부활을 꿈꾸며 특히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첫 시도가 지난해 3월 1일 중국인 관광객 비자 면제 조치였고, 당시 세타 총리가
공항에 직접 나가 첫 비자 면제 중국인 환영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태국 관광체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태국을 찾은 관광객 수는 3천550만 명,
코로나19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673만 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태국 관광업계는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춘절 연휴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잇따른 중국인 실종 사건에 중국인 방문이 감소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주태국 중국대사관도 "고임금 채용 함정 경계" "일자리와 항공권 제공 믿지 말라"는 내용의
주의보까지 내린 상황입니다.
실제로 현지 시각 12일 홍콩의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한 SNS에서
"태국 여행을 취소하는 법"을 검색해 보니 게시물이 38만 건 이상 올라와 있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자오번산은 다음 달 22일 태국 방콕에서 열 예정이었던 공연을 연기했고, 홍콩 가수 천이쉰도 다음 달 방콕 투어 공연을 취소하는 등 연예인들도 중국 방문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습니다.
태국여행사협회는 춘절 연휴 기간 중국인 관광객이 최대 2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는 태국의 관광산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관련 당국에 지시했습니다.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