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쉽시다!”…중국서 ‘주 4일’ 목소리

by 민들레 posted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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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 수요일, 잘 쉬셨나요? 월·화, 목·금 사이에 낀 황금 같은 수요일 휴일 덕에 올해 첫 주는 상대적으로 가뿐히 지나갔다고 느낀 분들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즈음, 우리와 마찬가지로 1월 1일이 공휴일인 중국에서는 ‘4일 일하고 3일 쉰다’는 검색어가 SNS를 장악했습니다.

숨 가쁜 5일 근무 중 수요일에 한 번 쉼표를 찍으니 너무나 행복했던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주 4일제 시행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한 겁니다.

“월요일은 쉰 다음 날, 화요일은 쉬기 전날, 수요일은 쉬는 날, 목요일은 쉰 다음 날, 금요일은 쉬기 전날...얼마나 좋나요?”

중국 누리꾼의 게시글입니다.

■주당 근로 49시간…일주일에 6일 나오는 중국 직장인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중국 기업 근로자의 평균 주당 근로 시간은 49시간에 달했습니다.

2022년 기준 한국 풀타임 임금근로자의 주당 평균 실근로 시간이 42시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중국 직장인들의 근로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게 느껴지실 겁니다.

중국의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실제로는 주당 5일이 아닌 6일을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직후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씩 주 6일 (주당 48시간) 근무였습니다.

1995년 주 5일 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근로 문화는 1940년대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때로 평균을 따지는 통계보다 개인의 현실은 더 엄혹합니다.

선진적인 근로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대기업에서도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는 뜻의 이른바 ‘996’이 보편화됐을 만큼 근로 시간이 깁니다.

최근 경제 불황으로 기업들이 한 푼이라도 더 영업이익을 늘리려 직원들을 압박하면서 주당 72시간 근로인 ‘996 문화’가 더 공고화되고 있다는 푸념도 들립니다.

중국 유명 이커머스 기업에 다니면서 ‘996 근무’를 하고 있다는 직원 A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금요일 밤에 잠들어 눈 뜨면 일요일 아침, 그러면 또 출근”
 

“저는 보통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을 일하고 토요일에 쉽니다. 다른 팀은 13시간씩 주 6일을 일하기도 합니다. 결국 ‘996’은 최소 조건입니다.“

”금요일 밤에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 아침이 되던걸요. 6개월만 ‘996’을 실행해 보면 몰라볼 정도로 바이오리듬이 파괴됐다는 게 느껴질 겁니다.“

”업무량이 많아서 근무 시간이 길다기보다는 억지로 붙잡는 겁니다. 정말 회사와 집만 있는거죠. 디지털화된 찰리 채플린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A 씨의 아내와 아이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처음 이 회사로 이직할 때만 해도 한 달에 4일 발생하는 휴일을 월말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해 매달 가족을 보러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사를 해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금요일 밤에 퇴근해 잠들고 눈 뜨면 일요일 아침이었다는 A 씨는 지난해 5월 이 회사에 이직한 뒤 지금까지 아이를 세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근로 문화는 중국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데 취업난과 높은 집값만큼이나 큰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주 4일 근무를 촉구하는 SNS 게시글 중에 ‘주 4일 근무할 수 있으면 당장 아이를 10명 낳겠다!’는 글까지 있을 정돕니다.

A 씨는 ‘회사가 직원을 억지로 붙잡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는 걸 감수하며 이렇게까지 회사에 오래 있을 필요가 있는 걸까요?

■”근로자 27%, 근무시간 절반은 빈둥빈둥“…물고기 잡는 직장인들

1987년, 중국 국가과학기술촉진발전연구센터의 근로 시간 단축 연구팀(縮短工時課題組)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주 6일 근무를 채택해 법정 주당 근로 시간이 48시간이었는데, 이 가운데 주당 평균 ‘유효 근로 시간’은 19.2~28.8 시간이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 대비 비율로 따지면 40~60%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조사팀이 정의한 ‘유효 근로 시간’은 생산 중단 등의 이유로 일을 멈춘 시간을 빼고 근무에 투입된 시간 중 실제로 업무에 힘을 쏟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1980년대 중국 근로자들은 몸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의 절반 가까이 됐다는 얘기니, 실제 근무시간이 법정 근로시간보다 길었다면 출근한 뒤 반 이상이 훌쩍 넘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요즘은 좀 다를까요?

2021년 발표된 한 보고서에서도 역시 ‘유효 근로 시간’을 계산했는데, 이 조사에서는 회사에 출근해 있는 시간에서 실제로는 쉬었던 시간을 뺀 것을 유효 근로 시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유효 근로 시간이 50% 이하라고 답한 근로자가 전체의 27%를 차지했고 유효 근로 시간이 76% 이상이라고 답한 근로자는 전체의 33%에 그쳤습니다.

1980년대든 2020년대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사실 회사에 앉아 있다고 계속 일하는 건 아닙니다. 주식 창도 좀 보고, 가끔은 이렇게 기사도 읽고, 오늘 뭐 먹을지 생각도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중국에서는 아예 ‘물고기 잡기(摸魚)’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혼탁한 물에서 고기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손을 더듬어 물고기를 잡고 이익을 취한다는 성어 ‘혼수모어(‌渾水摸魚)’에서 유래됐습니다.

원래는 병법서에서 적의 혼란을 틈타 승리를 쟁취하는 전략을 뜻했는데, 지금은 업무시간에 농땡이를 피우는 직장인들의 ‘월급 루팡’ 행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여러분도 회사에서 물고기 자주 잡으시나요?

‘이러느니 주 4일만 나와서 집중해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국이든 중국이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2030년까지 주 4일제 도입“…언제쯤 이뤄질까
 


결국 핵심은 효율입니다. 근로 시간과 노동 효율 변화 흐름을 보면, 근로 시간이 줄어들어도 효율은 올라갔습니다.

미국은 물론, 동북아 국가인 일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국 사회과학원 여유(旅遊)연구센터 전문가들이 집필해 2018년 발표한 <여가청서: 2017~2018년 중국여가발전보고>는 이 같은 분석을 근거로 2030년 주 4일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중국 노동생산성이 일정 수준에 다다른다는 전제하에 하루에 9시간씩 매주 4일을 근무(주당 36시간)하는 제도 시행이 가능하다“고 보고서는 언급했습니다.

실제 주당 49시간에 달하는 현재의 근로 시간을 25%만 낮춰도 36.75시간이 됩니다. 주 4일제 시행을 위한 조건을 대략 갖출 수 있는 셈입니다.

당장 어떻게 근로 시간을 1/4이나 줄일 수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소개한 유효 근로 시간 조사 결과를 생각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목표도 아닐 것 같습니다.
 

출근길 중국 지하철역 모습. 출퇴근 시간 중국 지하철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사진 출처 : 바이두)

출근길 중국 지하철역 모습. 출퇴근 시간 중국 지하철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사진 출처 : 바이두)


중국 직장인들은 주 4일을 염원하고 있지만, 실제 주4일제 도입을 선포하고 점진적으로나마 시행에 나서고 있는 곳은 여행플랫폼 씨트립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주 4일제 도입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중국 전문가들 상당수는 휴가 사용으로 인한 소비 증진 등 경제 위기 타개 효과를 들고 있습니다.

정작 근로자들은 경제 위기 속 생존을 위해 회사에서 ‘996’이 더 만연해진다고 토로하는데,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명분으로 주4일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근로자들의 일과 삶의 균형, 쉴 권리를 최우선에 두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선행되지 않는 한, 2030년 중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주 4일 근무가 자리 잡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