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침공 대신 서서히 포위·봉쇄해 美·日 개입 차단 의도
중국군이 지난해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대만을 포위·봉쇄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11월 30일부터 6박 7일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와 괌을 경유하며 마셜제도·투발루·팔라우 등 남태평양 도서국을 순방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었다. 중국군은 2022년 8월 당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2023년 4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로스앤젤레스(LA) 회동 등을 이유로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라이 총통 취임, 10월 라이 총통의 건국기념일(쌍십절) 연설 등을 문제 삼아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군의 지난 연말 훈련은 과거 4차례 훈련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무엇보다 중국군은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하면서 과거와 달리 이를 전혀 공포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 국영 언론매체조차 이 훈련을 보도하지 않았다. 선전·선동에 주력해온 중국이 이 훈련을 은밀하게 실시한 것은 상당한 함의(含意)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8월 7일(현지 시간)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소속 항공기들이 대만 해협 일대에서 합동 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
은밀한 최대 규모 훈련, 트럼프 의식했나
또 중국군이 이번 훈련에 동원한 함정 수는 역대 최대 규모이며, 훈련 범위 또한 대만 인근 해역이 아닌 제1다오롄(島鏈·Island Chain)으로 확대됐다. 제1다오롄은 일본 열도-난사이제도-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중국 연안에서 1000㎞ 떨어진 지역이다(지도 참조). 제르성 대만 국방부 정보참모 차장(중장)은 “당시 중국군의 훈련 범위는 1000㎞에 달했다”며 “중국군이 훈련에 동원한 함정도 90척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고 밝혔다. 토머스 섀턱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중국군의 당시 훈련 범위가 한반도 남쪽과 일본 서쪽에서부터 대만해협 중간선 남단까지 이어지고 대만 동쪽 해역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중국 연안에서 1000㎞ 떨어진 제1다오롄(Island Chain)과 2000㎞ 떨어진 제2다오롄. [위키피디아] |
중국군이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하면서 이를 떠들썩하게 공포하지 않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한 대중(對中)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를 놓고 트럼프 2기 정부와 표면적으론 현상 유지 또는 평화적인 대화 진행을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해군 함정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훈련 범위도 대폭 확대한 것은 트럼프 2기 정부에 자국군의 능력이 트럼프 1기 정부 시절과 다르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군이 훈련 범위를 제1다오롄까지 확대한 것은 이른바 ‘아나콘다 전략’에 따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뱀인 아나콘다는 먹이를 칭칭 감은 뒤 서서히 조여서 죽인다. 중국은 대만을 전면 침공하는 대신 포위·봉쇄해 대만이 항복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식량·에너지 등 필수 물자 봉쇄 가능성
중국은 대만을 전면 침공할 경우 미국과 일본이 대규모 병력, 무기 등을 대만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이에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전략으로 제1다오롄까지 제해권과 제공권을 확보해 대만을 포위·봉쇄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섀턱 연구원은 “대만 동쪽 해역은 미국 등 다른 국가가 대만에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라며 “중국군 훈련의 목적은 더 복잡하고 대규모인 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는 능력을 외부에 과시해 유사시 중국의 봉쇄를 뚫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외국에 알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대만은 식량이나 에너지 등 필수 물자를 충분히 비축하지 못했다. 실제로 대만은 전력 생산의 40%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대만의 현재 LNG 재고는 10일 분량에 불과하며, LNG가 해상으로 운송되기 때문에 해상 봉쇄에 매우 취약하다. 대만 문제 전문가인 딘 카랄레카스 영국 센트럴랭커셔대 연구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 침략과 달리 식량, 에너지 등 필수 물자를 봉쇄하는 방식으로 대만을 공격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군은 ‘아나콘다 전략’에 따라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자 새해 벽두부터 세계 최초인 드론 항공모함까지 건조해 시운항에 들어갔다. 드론 항공모함은 무인기(드론)를 전자식으로 발사할 수 있는 장치인 전자기식 사출기(캐터펄트)를 탑재한 4만t급 강습상륙함 쓰촨함이다. 쓰촨함은 첫 번째 076형 강습상륙함으로 지난해 12월 29일 건조가 완료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쓰촨함은 강습상륙함으로선 세계 최초로 캐터펄트와 착륙장치를 탑재했다는 것이다. 캐터펄트는 중국이 시범항해 중인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함에만 설치된 최신 장비다. 헬리콥터뿐 아니라 고정익 항공기와 드론이 모두 이착륙 가능한 신개념 강습상륙함이다.
중국 군사전문가 쑹중핑은 “076형은 헬리콥터나 수직 이착륙기를 주로 탑재하는 전통 강습상륙함과 달리 유인 전투기와 드론을 모두 발사할 수 있다”며 “적재량과 타격 범위가 크게 확장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해협에서 인민해방군의 작전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앞으로 2~3년 안에 쓰촨함 같은 076형 강습상륙함을 3~4척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국이 특유의 통일전선전술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2025년 신년사에서 “양안(중국과 대만) 동포는 한 가족이자 일가친척으로 누구도 우리의 혈맥과 친척의 정을 가를 수 없고, 누구도 조국 통일의 역사적 대세를 막을 수 없다”며 핏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은 역사의 필연”이라면서 군사적으로 압박했던 것과 달리 양안이 한 가족이라고 강조한 것은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이다.
통일전선전술이란 주로 공산당이 적을 물리치기 어렵거나 시기가 성숙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우호세력을 확보해 적을 안에서부터 약화하는 방법을 뜻한다. 공산당이 항일전쟁 과정에서 국민당과 연대한 국공합작이 대표 사례다. 마오쩌둥은 1939년 통일전선전술을 무력투쟁, 당 건설과 함께 중국공산당이 혁명에서 적을 물리친 3대 법보(法寶)라고 강조한 바 있다. 법보는 도교 세계관에서 요괴나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신묘한 무기를 뜻한다.
연예인까지 동원하는 통일전선전술
중국이 친중파인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을 자국에 초청해 극진하게 환대한 것도 교묘한 통일전선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마 전 총통은 지난해 말 9일간 일정으로 대만 청년 대표들을 이끌고 얼음 축제로 유명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해협양안청년빙설제’ 행사에 참석했고, 쓰촨성 청두 판다박물관 등도 방문했다. 마 전 총통은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 총통에 대해 “양안이 다시금 평화 발전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속히 ‘항중해대’(抗中害台: 중국에 항거하고 대만을 해친다) 같은 막다른 노선을 포기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대만 정치인과 경제인을 비롯해 언론인, 학자 등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공작도 벌이고 있다.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MAC)가 새해 벽두부터 중국 언론매체 ‘해협도보(海峽導報)’ 기자의 대만 주재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 것도 중국 정부의 통일전선전술에 가담했다는 이유에서다.
홍콩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류더화(유덕화)가 지난해 11월 대만 콘서트에서 ‘중국인’이라는 제목의 중국 ‘국뽕’ 노래를 부른 것도 중국 정부의 ‘공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류더화는 중국공산당 위성단체로 알려진 중국영화인협회 부회장에 선출되는 등 대표적인 친중 연예인이다. 중국은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아나콘다 전략과 통일전선전술로 대만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