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보도 근거로 미국이 윤 대통령 지지 표현했다는 주장 확산
‘탄핵세력은 친중반미’, ‘체포 강행시 트럼프 경고’ 근거 따져보니
전문가 “미국은 우방국 정치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표현 안해”
▲ 도널드 트럼프 제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사진=flickr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내비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세력은 '친중반미'이며 불법적인 체포 강행에 대해 미국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 VOA(미국의소리) 보도를 근거로 이러한 주장들이 일부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탄핵세력 친중세력으로 보고 있다?
이상휘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VOA(미국의소리)는 탄핵 주도세력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한국계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며 "VOA 보도는 미국 정부에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비롯한 탄핵 지지 세력을 친중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심각한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홍석준 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탄핵 정국의 판이 뒤집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움직임이 다르다. 미국의 저명인사들과 VOA 같은 매체에선 '탄핵세력이 친중반미 세력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휘 "탄핵 주도세력 '한미동맹 약화 시도'…VOA, 대서특필">(1월7일, 뉴스웍스) 등 일부 언론을 통해 기사화도 됐다.
▲ 10일 이상휘 위원 원내대책회의 발언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유튜브 HEB방송 갈무리
탄핵을 추진한 세력이 친중세력이라는 주장을 넘어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대해 트럼프가 '경고'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진짜뉴스발굴단'은 지난 12일 <미국 정부방송 VOA,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시 트럼프가 경고할 것"> 보도자료를 내고 " VOA가 간판 프로그램 '워싱턴톡'을 통해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헌법을 따르지 않은 것이고 도를 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했다.
'진짜뉴스발굴단'은 "전체적으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한국은 우리에게 필요한 동맹이지만 한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도를 넘었고, 그럴 경우 개입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지난 14일 <미국의 잇단 경고>라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미 국무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VOA 방송에서 윤 대통령 체포 행위에 대해 연이은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하나는 윤 대통령 체포를 트럼프 행정부가 두고 보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다른 하나는 최근 미 FBI가 탈북자와 조선족을 포함한 대북 제제 위반자에 대해 체포 기소하거나, 수배령을 내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 지난 12일 나온 매일신문 기사 갈무리.
이러한 주장도 (1월12일, 매일신문), <김성회 전 다문화비서관, "美 국무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VOA, 尹 대통령 체포 행위 '경고'">(더퍼블릭) 등 일부 언론의 기사를 통해 확산됐다. 보수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이를 받아 미국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명확히 했다는 논거로도 쓰였다.
미 하원의원 현지매체 기고문이 '미국의 시그널'로 둔갑
이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건, 'VOA'(미국의소리)에서 기사를 낸 것이니 미국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VOA는 미국 연방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국제방송처에서 운영하는 국제방송으로, 미국 전쟁홍보처, 국무부, 홍보처 산하에서 운영했을 때도 있지만 현재는 독립된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 VOA에서 기사가 나왔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보수 진영에서 언급된 VOA 기사들은 VOA한국어 방송에서 나온 기사들로 미국판 VOA에선 찾아볼 수 없다.
▲ 지난 7일 나온 VOA한국어 기사.
'탄핵세력은 친중반미' 주장은 지난 7일자 VOA한국어 <영 김 의원 "미한동맹 약화 시도 세력이 '탄핵' 주도…중국 '정보 조작'에 대응해야"> 기사로 시작됐다. 해당 기사는 한국계 영 김 미국 하원의원의 현지 매체 '더 힐' 기고문을 인용한 것이다.
영 김 의원은 기고문에서 "한미동맹은 미국에서 초당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을 포함한 일부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파트너십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이어 "같은 세력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한 언론 보도가 윤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에 집중돼 있지만, 탄핵에 항의하는 한국인들이 서울 중심부인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고 했다.
한 하원의원 개인의 주장이 미국의 공식 입장일 수는 없다. 미주 한인 유권자단체는 영 김 의원 기고에 대해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은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영 김 의원의 망언과 왜곡으로 가득찬 기고문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미국의 시민, 납세자, 유권자들로서 김 의원이 내란수괴 윤석열과 한국의 극렬 극우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했다.
미주민주참여포럼은 "김 의원의 이번 기고문은 그 내용이 사실과 법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일종의 망상과 같아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고 했다. 이어 "예상대로 이번 기고문을 근거로 마치 이것이 미국 의회나 트럼프 당선자의 입장인 것처럼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하는 현재 상황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싱크탱크 전문가 발언 맥락 잘라 미국 입장인 것처럼 사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대해 '경고' 입장을 냈다는 근거는 지난 11일자 VOA한국어 방송 코너인 '워싱턴톡'이다. 제임스 제프리 윌슨센터 중동 석좌와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 안보 석좌가 출연한 방송분이다.
▲ 1월11일자 VOA한국어 방송 코너인 '워싱턴톡' 갈무리. 제프리 석좌가 부정선거 음모론이 선거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방송에서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 석좌는 "만약 공수처가 실제로 물리력을 사용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트럼프가 적어도 '당신들은 헌법을 따르지 않고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 강제 체포가 미국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냐는 진행자 질문에 제프리 석좌는 "동의한다"며 "어떤 극적인 일이 일어나면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을 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 않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출연자는 현재 미국 정부가 아닌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이다. 방송 원본을 찾아보면 이들이 윤 대통령의 체포 자체를 반대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어렵다. 앞선 질문들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잘못됐고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수사 과정을 놓고 '법이 무너졌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과 달리 "법치가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 대목도 있다. 방송을 종합하면, 한국에서 내전 등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에 가깝다.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한을 놓고 제프리 석좌는 "미국은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안정을 원한다"며 "우리는 윤 대통령이 한 행위 중 일부는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지금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신뢰한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좋은 메시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냐는 진행자 질문에 제프리 석좌는 "그렇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때때로 목격하던 일"이라며 "미국의 일반적인 인식은 한미 관계 핵심이 유지되고 우리의 동맹이 안정적인 한 그런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1월11일자 VOA한국어 방송 코너인 '워싱턴톡' 갈무리. 허드슨 석좌가 한국 정치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장과 대비되는 주장이다.
허드슨 석좌는 "우리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절차를 지켜보고 있다"며 "이것은 한국인들이 결정할 문제이고 그들은 투표를 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윤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찬성표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동맹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대해 '경고'했다는 주장과 오히려 상반된 입장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미국은 원래 한국처럼 중요한 우방국의 경우 국내 정치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이나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민주주의 절차가 빨리 복원되길 바란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 의원 개인이나 프라이빗 싱크탱크에 있는 사람들의 발언들을 모아서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하는 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